환경 위기의 진실
잭 M. 홀랜더 지음, 박석순 옮김 / 에코리브르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잠 안 올 때는 얼른 책을 집어 들어야 하는데 12시 넘어서부터 읽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4시까지 읽는 게 당연하구나
책은 350 페이지 정도 되고, 대기 오염 같은 부분은 어려웠다
하여간 나는 과학에 관련된 부분은 약하다
꼼꼼하게 읽지 못한 부분도 있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는 아주 동의하는 바다
역자 역시 이 책의 관점에 100% 지지를 보내고 있다


역자 후기에서 현실을 무시한 환경 제일주의자들에게 무인도 가서 살아 보라고 말한다는 농담이 실렸는데 좀 과격하기는 하지만 문명의 혜택을 인정하지 않고 한쪽면만을 강조하는 극단주의자들은 고생 좀 시킬 필요가 있다
나 역시 막연하게나마 저자의 주장처럼 생각해 왔다
저자처럼 딱 내놓을 증거는 없었지만 심리적으로는 결국 과학이 환경을 구할 거라고 믿어 왔다
인류가 이뤄낸 풍요와 진보는 아무리 비판적으로 본다 해도 분명히 놀라울 정도로 획기적이고 파격적이다
일단 평균 수명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인간은 끊임없이 발전해 왔다고 단언할 수 있다
저자가 말하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인간은 발전해 왔고, 결국 환경 문제 역시 과거보다 훨씬 현명하게 해결하리라 믿는 것이다
환경 낙관론주의라고 할까?
그렇다고 저자가 환경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만약 환경의 중요성을 무시하고 잘 되고 있다는 식의 낙관론만 펼친다면, 이 책은 저자가 비판하는 환경 비관론자들의 오류를 똑같이 반복하는 꼴이 될 것이다
왜냐면 저자는 이들이 정치적인 이해 관계와 얽혀서 지나치게 부정적인 쪽만을 강조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과학자들이 진실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아주 재밌는 비유가 있다
지하철에서 불이 나면 "불이야" 를 큰소리로 외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대피소로 안내하는 것이 나은가?
문제의 심각성을 과장하는 것 보다는 문제의 실태를 정확히 알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흔히 자동차 등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가 온실 효과를 일으켜 지구 온난화 현상을 가중시킨다고 알고 있다
남극의 빙하를 녹여 해수면이 상승하면 일본이나 방글라데시 등이 잠길 것이라는 끔찍한 얘기도 흔히 들어왔다
그런데 저자는 지구는 빙하기와 간빙기가 반복해 왔다는 것을 지적한다
즉 기후는 산업화와 상관없이 변해 왔다는 것이다
기후를 분석하고 이해할 수는 있지만, 예측하기는 힘들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는 기후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우리는 자연 변화에 대해 적응해 왔고, 해수면 상승으로 침수 지역이 늘어나는 것은 산업화의 결과이기 보다는 자연 변화의 일종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
그러므로 산업화를 환경 오염과 관련지어 무조건 비난하는 행위는 옳지 않다
오히려 과학이 환경 오염을 청정 상태로 돌려 놓을 것이다

바로 여기에 이 책의 핵심이 있다
저자는 가난과 자유의 박탈이 환경 오염을 가속화 시킨다고 지적한다
제 3세계 국가에서 환경 오염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아마존 삼림 훼손이 아무리 지구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해도 먹고 살아야 하는 브라질 농민들은 계속 벌채를 하고 거기에 화전을 일굴 것이다
중국이나 인도 같은 개도국들 역시 공장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를 정화시킬 여력이 없다
일단 먹고 살기도 바쁜데 환경까지 신경쓸 여유가 없는 것이다
어찌 보면 깨끗한 물을 먹고 청정한 공기를 마시는 등의 행위는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한 선진국 주민들에게서나 가능한 욕구인지도 모른다
저자는 깨끗한 환경에 대한 욕구가 커지면 시장 경제의 원리에 따라 수요가 생기므로 돈이 더 들더라도 정화 기술을 사용한 제품을 구입할 것이라 말한다
얼마 전에 읽은 로하스 개념과 같은 얘기다
우리나라의 웰빙과 비교되는 이 개념은 친환경주의를 표방하는데, 좀 비싸고 품질이 떨어지더라도 환경에 도움이 되는 제품을 구매한다
자기 건강을 먼저 생각하고 어찌 보면 사치스럽기까지 한 웰빙과는 달리, 로하스는 사회 전체, 즉 환경을 우선으로 하는 이타적인 개념이라고 한다
가난하면, 즉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당장 생명에 지장을 주지 않는 환경은 생각할 여유가 없게 된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환경을 걱정한다면 산업화로 지구가 곧 망할 거라는 과장된 비관론 대신, 제 3세계의 가난을 어떻게 퇴치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여기서 세계화의 진정한 의의가 대두된다
저자는 3세계 국가들이 세계 무역에 동참할수록 가난에서 보다 빨리 벗어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토지당 수확량의 증가로 멜서스의 인구론과는 달리 현대는 아무리 인구가 늘어도 충분히 먹을 수 있는 곡식을 생산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수확량이 편중되어 1세계에서는 비만이 사회 문제가 되는 반면, 여전히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국가들은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므로 이 나라들이 세계 경제에 편입되어 원활한 곡식 이동이 일어날 때 기아를 면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유엔에서는 농업 기술이나 유전자 변형을 통한 우수한 품종들을 3세계에 공급하고 있다
아프리카 국가들이 기아에 허덕이는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내전과 같은 정치적 문제에 있다
저자는 3세계가 가난에서 벗어나도록 원조를 아끼지 않는 것이 환경 위기 극복의 진정한 해결책이라 믿는다
이것은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 역시 산업화에 성공하기 전까지는 환경에 눈돌릴 여유가 없었다
엘리자베스 비숍이 쓴 "한국과 이웃나라들" 을 읽어 보면 구한말 서울의 끔찍한 환경오염 실태에 대해 잘 묘사되어 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가 짧은 시간 내에 산업화에 성공한 것은 꽤나 놀라운 일이고 박정희의 근대화를 과소 평가할 수 없게 된다
저자는 가난과 함께 독재 역시 환경오염의 근본적인 적이라고 규정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개발독재로 산업화에 성공했다
어떤 면에서든 박정희 정권의 근대화는 가난 극복이라는 업적을 이룩했고 평가받아야 마땅하지만, 독재과 파시즘의 흔적은 청산해야 할 대상이다
정권의 부도덕성과 경제 개발의 업적을 분리해서 평가할 수는 없을까?
나는 박정희 시대의 산업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요즘 부는 박정희 향수에 동조할 수는 없다
개발 독재를 통해 경제 개발을 할 수 밖에 없던 것이 그 시대의 한계였던 만큼 결국 독재는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닐까?
그런데도 여전히 박정희 향수에 젖어 독재 정권을 미화시키는 일부 언론의 행태를 이해할 수 없다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가 필수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생각하면 경제가 우선이고 민주주의는 먹고 살만 해야 가능한 문제 같은데, 실은 사회가 전체적으로 발전해야 진정한 의미의 가난 극복이 가능하다고 한다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어 교육을 받고 일을 할 수 있게 되면 가족의 생산력이 높아지고, 자연스레 출산율도 줄어 들게 되므로 인구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선진국에서는 출산율 저하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제기되고 있지만, 여전히 3세계의 높은 출산율은 해당 국가의 기아를 악화시키고 있다
1인당 국민 생산량이 증가하면 출산율은 자연스럽게 감소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전체 인구 역시 안정 곡선을 그릴 수 있게 된다
정치가 민주주의로 바뀌어야 내전과 같은 인재를 막을 수 있고 끔찍한 기아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저자가 누누히 강조하지만 곡식 생산력 자체가 부족한 것은 절대 아니다
정치 불안정에 따른 내전 등으로 먹을 곡식이 사라지지만 않으면 지금 같은 끔찍한 기아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또 민주주의를 통한 국민의 정치 의식 함양은 깨끗한 환경을 정부와 기업에 요구할 수 있게 만든다
환경 문제 역시 수요자인 국민들이 공급자에게 친환경적 제품 구입이나 불매 운동 등을 통해 요구하는 시장 경제 원리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도덕적 당위 여부를 떠나 현실은 가난과 환경 오염의 상관관계를 명백하게 보여 준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환경 오염은 절대로 해결될 수 없고, 돈 많은 선진국만이 환경을 쾌적하게 만들 능력이 있다
그러므로 산업화를 통한 가난의 해결이 환경 보다 우선이다
적어도 기아에 허덕이는 3세계 국가에서는 그렇다
환경 문제는 전지구적 문제이므로 1세계는 3세계의 가난 퇴치와 민주주의를 위해 원조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지나친 비관론은 본질을 왜곡시킬 위험이 있으므로 자연 현상을 해석할 때는 정치적 의도를 배제하고 신중해야 한다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다
한 국가의 재난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므로 해당 국가의 역량을 초과할 경우는 전세계가 함께 책임을 나눠 가져야 한다
이러한 세계주의적 관점이 단순히 인도적인 측면에 국한되는 줄 알았는데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걸 보면, 세계화는 거부할 수 없는 흐름임이 분명하다

전기와 휘발유를 섞어서 가는 하이브리드 자동차나 석유 매존량이 생각보다 풍부하다는 사실 등은 흥미로웠다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현재 자동차의 1/8 수준으로 대기오염을 떨어뜨릴 수 있는데 좀 더 기술이 발전하면 완전한 전기 자동차가 개발되어 배기가스 자체가 사라지게 된다
환경 오염 측면에서 보면 그야말로 꿈의 자동차가 아닐 수 없다
더군다나 유한 자원인 석유 대신 전기로 움직이니 자원 고갈 측면에서도 획기적인 발전이 이뤄지는 셈이다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상용화 되면 인류는 환경 문제 해결에 한발짝 다가서게 될 것이다
산업화에 필수적인 석유가 곧 고갈될 거라는 위기 의식이 팽배해 있지만, 시추 기술이 발전하면서 전체 매장량은 줄더라도 이용 가능한 석유는 증가하므로 충분한 양을 확보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근본적으로는 유한 자원이긴 하지만 70년대의 오일 쇼크 등은 중동 국가의 정치적 쇼에 불과했다
풍력 에너지나 태양열 에너지 등을 개발하고 있지만 생산성이 워낙 낮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 가장 합리적인 대책은 원자력 에너지라고 본다
체르노빌 사고나 핵폭탄 때문에 사람들은 원자력에 대한 두려움에 떨고 있으나 저자는 이것이 과장된 불안이라고 단언한다
위험이 따르지 않은 일은 단 하나도 없고, 원자력 발전 사고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이를 폐기시켜야 한다면 자동차 사고 위험 때문에 차를 타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도 성립한다고 역설한다

환경 문제를 단순한 비관론이 아닌 근본적인 원인과 대책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는 크다
어차피 인류는 현재의 풍요를 포기할 수는 없다
깨끗한 공기를 마시기 위해 에어컨이나 자동차를 포기할 수 있을까?
환경을 위해 전보다 불편한 생활로 가는 것은 누구도 원치 않을 것이다
심지어 환경 극단주의자들까지 근본적인 불편은 참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풍요를 억제하는 대신 부를 더욱 확대하여 환경 문제에 재투자 한다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또 환경은 전지구적 문제이므로 3세계가 가난과 독재로부터 벗어나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결국 인류가 풍요로워질수록 더욱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 속에서 살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또한 자연 변화의 많은 부분은 예측하기 힘들기 때문에 변화에 적응할 수는 있으나 현재와 같은 지나친 비관론은 바람직하지 않다
환경과 풍요, 민주주의를 연결시킨 저자의 분석이 놀랍다
혹시 이 책을 읽고 선진국의 오만이라고 비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 사람에게는 역자 후기의 날카로운 일침이 어울릴 것 같다
"극단적인 환경주의자는 무인도로 보내 문명 혜택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끼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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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07-02-14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별이 3개죠?

marine 2007-02-14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난한 정도는 별 세 개를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