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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덴티티 - 할인행사
제임스 맨골드 감독, 존 쿠삭 출연 / 소니픽쳐스 / 2004년 1월
평점 :
품절
정말 재밌는 영화다 흥미진진 하고 긴장감 장난 아니다 영화 보면서 너무 긴장해 손에 땀을 쥘 정도였다 혼자 불꺼놓고 노트북으로 보는데 정말 오싹했다 시나리오도 좋고 무엇보다 배우들 연기가 정말 좋았다 메이킹 필름 보니까 창녀로 나온 여주인공이 오디션에 뽑힌 신인이던데 정말 잘 하더라 존 쿠색은 처음 보는 배우지만 명성에 걸맞게 정신분열증의 심리 상태를 잘 표현했다 메이킹 필름에서 여주인공이 존 쿠색과 같이 연기하는 게 너무 흥분돼서 잠을 못 잘 정도였다고 말한다 한술 더떠 왜 키스신이 없냐고 감독에게 만들어 달라고 떼를 썼으며 쿠색을 덮치는 장난도 쳤다고 한다 정말 헐리우드 배우들은 솔직하고 대담하다 과연 우리나라 여배우 중에 대놓고 남자 배우랑 키스씬 만들어 달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까?
마지막 반전은 좀 황당한 면도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 꼬마애가 모든 살인을 저질렀다는 게 말이 안 돼지만 모든 것이 정신분열자의 머릿속에서 일어난 살인이라고 생각하면 독특한 구성이라 할 수 있겠다 이제 할리우드 영화는 정신분열 쪽으로 가는 건가? 어찌 보면 "나비효과" 와 비슷한 맥락의 영화다 앞뒤 사건들을 끼워 맞추느라 몇 번을 생각했었다 한참 만에 정리가 될 정도로 복잡하다 시나리오 작가의 구성력이 놀랍다 특히 마지막에 "창녀에게 새 삶은 필요없어" 라는 대사와 함께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이 압권이다 머릿속에서 살인자가 반성하지 않고 남은 한 사람까지 죽이는 순간, 현실에서도 범인은 자신을 사형에서 구원해 준 정신과 의사를 죽이고 만다 결국 정신분열증은 치료받을 수 없다는 말일까?
다중인격자의 살인이 처벌받지 않는 것은 그가 범죄를 저지를 때는 자기 인격이 아니었다는데 근거가 있다 전혀 다른 사람이 살인을 한 것이므로 현재의 범인을 죽이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요즘처럼 범죄자 여부를 떠나서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시대이므로 가능한 얘기지, 한 세기 전의 사람이 들었으면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내 안에 전혀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다중 인격자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살인자들과의 인터뷰" 를 읽어 보면 연쇄 살인범들은 정상인과 전혀 다른 사고 구조를 가졌다 그들은 살인을 할 때 두렵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쾌락을 느낀다 몰래 포르노 비디오를 빌려 볼 때의 짜릿함 같은 걸 사람을 죽임으로써 느끼는 것이다 어떤 미친 놈은 죽인 여자들의 목을 따서 자기 침대 밑에 넣어 둔 후 자극을 느끼고 싶을 때마다 꺼내 봤다고 한다 또 어떤 놈은 살인 충동을 억제하기 위해 충동이 생길 때마다 목욕을 했는데 어떤 날은 목욕 까운을 입은 채 뛰쳐 나가 살인을 저지르기도 했다고 한다 한 마디로 평범한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뇌 구조를 가진 것이다
모텔에서 한 명 한 명 죽을 때마다 대체 누가 범인일까 무척 궁금했다 투숙객 중에 범인이 있지 않나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제 3의 인물이 있을 것 같았다 그 모텔이 인디언들의 무덤이었다는 전설을 이용해 누군가가 죽은 자의 원혼을 가장해 살인을 저지르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김전일 만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스토리다 경찰에게 호송되어 온 살인범이 범인이 아닌 줄은 알고 있었다 그가 범인이면 사건이 너무 금방 해결되기 때문이다 역시 그 놈은 처음에 살해된다 그런데 실은 그 경찰이 같은 살인범이었다는 설정이 기막힐 정도로 놀라웠다 경찰이랍시고 살인범을 호송하던 그 놈이 실은 경찰을 죽인 후 같이 연행되던 살인범을 호송하는 것처럼 꾸민 것이다 논리적으로 안 맞는 부분도 있지만 어쨌든 발상 자체는 기가 막힌다
맨 처음에 죽은 여배우 목이 드럼 세탁기 안에서 돌고 있을 때 정말 섬뜩했다 냉동고에서 얼어 있는 시신 발견할 때도 오싹했다 살인자들은 어떻게 저 공포감을 이기고 사람 죽이는 걸 즐길 수 있을까? 결국 죄책감이나 두려움도 다 인간 스스로 만들어 낸 창조물이 아닌가 싶다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말이 이럴 때 해당되는 걸까? 세상을 보는 관점의 차이, 혹은 사물을 인지하는 인식의 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