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 [초특가판]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1
피터 웨버 감독, 스칼렛 요한슨 외 출연 / 기타 (DVD) / 2004년 10월
평점 :
품절


소설을 안 본 사람은 과연 이 영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배우들의 연기에 숨어 있는 행간을 읽는다는 건 보통 힘든 일이 아닐 것이다 너무 지루하고 생략이 많은 영화다 소설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재현하기는 했는데 주인공의 심리 묘사는 거의 안 됐다고 보면 된다 그나마 나는 소설을 먼저 읽었기 때문에 지금 저건 저 뜻으로 한 얘기야, 이렇게 이해할 수 있었지만 영화만 본 사람에게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영화일 것 같다


감독은 왜 영화를 밋밋하게 만들었을까? 음악도 좀 많이 넣고 주인공 그리트의 심리 상태 표현도 더 많이 했으면 좋았을텐데. 내가 보기에는 소설 자체가 영화화 되기 어려운 내용 같다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쓴 소설이라 사건 보다는 심리 묘사가 훨씬 많기 때문에 영화에서 보여주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다 은희경의 쓴 "새의 선물" 을 단만극으로 만든 걸 본 적이 있는데 어쩜 저렇게까지 재미없게 만들 수 있을까? 신기할 정도였다 소설로 쓸 때는 재밌던 것이 영화로 바뀌면 참 지루해진다 역시 영화는 심리 묘사 보다는 사건 위주로 가는 게 훨씬 재밌다


그리트 역을 맡은 요한슨인가 하는 여배우는 잘 어울리는 것 같으면서도 좀 답답했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에 나올 때부터 별로 마음에 안 들었다 남들은 연기 잘 한다고 하는데, 연기를 떠나서 뭔가 속에 할 말이 많은데 참고 있는 듯한, 속을 알 수 없는 답답함이 있어서 싫다 이 영화에서도 그랬다 속시원하게 좀 털어 놓으면 좋으련만, 관객에게 도대체 자기 마음을 보여 주지 않는다 대체 어떻게 그녀 속을 짐작하겠냐고요!! 오히려 베르메르 역을 맡은 남자 배우가 훨씬 잘 어울렸다 소설에서도 베르메르는 말이 없고 속을 알 수 없는 답답한 사람으로 나온다 하녀로 들어온 그리트를 좋아하는 것 같으면서도 스킨쉽도 없고 따뜻한 말 한 마디 건네는 법이 없으며 그리트가 도둑으로 몰렸을 때조차 도와주지 않을 정도로 그리트에 대한 감정을 절제한다 소설에서 그는 자기 그림에만 몰두하는, 그래서 주위 사람들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 전형적인 예술가로 나온다


베르메르의 딸 코넬리아가 그리트를 질투해 어머니의 보석을 훔쳐 자기 방에 숨겨 놓은 후 그녀를 도둑으로 몬 사건이 발생한다 영화에서는 그리트가 베르메르에게 도와 달라는 눈빛을 보내자 베르메르가 온 방을 뒤져 보석을 찾아내지만 소설에서 베르메르는 외면한다 그게 더 일관성이 있다 베르메르는 그리트의 총명함을 좋아하고 물감 만드는 일을 시킬 정도로 그녀가 자기 예술을 이해한다고 인정하지만, (아내는 그의 화실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한다) 절대 그녀를 보호해 주지 않는다 아내 몰래 물감 만드는 일을 시킬 때도 집안일 때문에 바쁜 그리트에게 니가 알아서 시간을 쪼개라는 식이다


영화에서는 잘 표현되지 않았지만 그리트는 베르메르의 예술 세계를 동경한다 자기가 하는 일은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너무나 일상적이고 하찮은 일인데 반해, 베르메르가 그림을 그리는 것은 이 세상일과는 떨어져 있는 천상의 것으로 느낀다 부잣집 주인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아니라 예술에 대한 동경으로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그리트는 남자로서 베르메르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림과 같은 고귀한 일을 하는 예술가로서의 베르메르를 사모했던 것이다 반면 베르메르의 아내는 남편의 예술 세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그녀는 그리트를 질투해 저 애는 그림은 커녕 글자도 읽지 못한다고 비난하지만, 예술에 대한 이해는 단순히 교육만 가지고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어느 정도는 안목이 길러지겠지만 기본적인 감각이나 안목은 타고나는 건지도 모른다 그리트가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다면, 베르메르 같은 화가와 결혼했다면 그녀는 훨씬 행복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현명하게도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푸줏간집 아들과 결혼해 일상의 행복을 느끼고 살아간다 소설을 읽을 때 혹시 그리트가 베르메르에게 반해 자기와 결혼하고자 하는 피터를 버리고 베르메르에게 매달리면 어쩌나 걱정했다 주인과 하녀의 관계에서 상처받는 건 약자 뿐이다 더구나 베르메르는 자기 예술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남자다 그를 믿고 자신의 인생을 맡긴다는 건 파멸의 지름길이리라 소설에서 그리트는 영리하고 똑똑한 아가씨로 나오는데, 역시 그녀는 선택도 현명하게 잘 한다 베르메르 집을 나와 피터와 결혼한 것이다


영화보다 소설이 한 10배는 낫다 소설은 정말 재밌다 그리트의 심리 상태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그녀에게 동화되고 만다 그런데 영화는 감정의 생략이 너무 많아 관객이 제대로 몰입되지 못한다 다만 17세기 네덜란드 일상은 잘 보여준다 베르메르의 다른 그림들도 써비스로 보여 줬음 좋았을텐데 그게 아쉽다 베르메르 그림은 일상의 평화로움과 아름다움을 잘 보여 준다 그 따뜻하고 놀라운 색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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