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없는 의사회 - 인도주의의 꽃
엘리어트 레이턴 지음, 박은영 옮김, 그렉 로크 사진 / 우물이있는집 / 2003년 6월
평점 :
절판


옛날부터 관심을 갖던 단체인데 이제서야 읽게 됐다
내가 생각하는 "국경 없는 의사회" 란 완벽한 능력을 가진 멋진 사람이 도덕성까지 훌륭해 인도주의 이상을 실천하게 만드는 장소였다
사실 이런 착각은 나만 하는 게 아니라 선진국에서도 흔히 갖는 위선이다
학살이 일어난 곳에 대한 진정한 이해나 안타까움은 뒤로 한 채, 자신이 도덕성을 증명하기 위해 생색용으로 쓰이곤 한다
물론 이 곳에 근무하는 이들은 그렇지 않지만, 정부 관료들은 그들을 내세워 자신들이 3세계에 대한 도덕적 의무를 다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정말 해야 할 지원은 회피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들 역시 이런 도덕적 위선을 가장 경계하고, 자신들의 정부가 3세계에 대한 영향력을 높이기 위한 도구로 쓰지 않을까 늘 걱정한다

과연 나라면 이 곳에서 일할 수 있을까?
젊은 날의 짧은 모험이라면 모를까, 몇년씩 머물기는 힘들 것이다
단 하루의 봉사도 못하는 주제에 아프리카까지 날아가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까지 봉사 활동을 할 수 있을까?
하긴 양로원이나 고아원 찾는 것 보다는 더 스릴있고 멋지다는 어설픈 겉멋 때문에 갈 수도 있겠다
어쨌든 몇 년씩 장기적으로 근무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혹시 경력에 도움이 된다면 모를까, 즉 자신에게 실제적인 이익이 없다면 편한 생활은 고사하고 생명의 위협마저 느끼는 그 곳에 누가 지원하겠는가?
그런 의미로 본다면 MSF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보통 사람은 아닌 게 분명하다
그들이 이뤄낸 결과가 미미하다 할지라도 그 가치를 함부로 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자신들이 영웅으로 숭배되는 것도 싫어한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매스컴은 늘 자극적인 소재를 원하기 때문에 한 번 매스컴을 타고 나면 그들은 박애 정신의 화신으로 둔갑해 버린다
그것은 실로 무거운 멍에이며 MSF에 지원하는 이들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어찌 보면 그들 자신을 기만하는 행위일 수도 있다
단순히 모험이 좋아서, 무료한 일상이 싫어서, 약간의 도덕적 우월감 때문에, 혹은 직장을 잡기 어려워서 등 다양한 이유로 MSF에 지원했고 그 동기들은 모두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그들 표현대로 MSF가 어떤 활동을 하든, 아무 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에 개인적인 공명심 때문에 아프리카로 날아 왔다고 해도 그 곳 일이 일상의 안락함을 포기하는, 명백한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기 때문에 절대 동기 자체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

자국에서 편안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의 학살 현장으로 날아간 이들의 심정도 이해가 된다
그러고 보면 인간은 참으로 영적인 존재 같다
물질적으로 부유하고 편하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신적인 가치가 만족될 때 비로소 인간은 진정한 행복을 느낀다
어찌 보면 돈을 벌려고 애쓰고 경쟁에서 이기려고 아둥바둥 하는 것도 물질적인 편안함 그 자체 보다는 남보다 우월하다는 승리감을 맛보기 위함인지도 모른다
저자의 지적처럼 현대 사회는 인간 소외가 심각하다
나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직장에 다니는 것이 아니라, 회사의 이익을 위해 그저 부속품으로 일할 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의 존엄성이라든가 주체성이 강조되지만, 실상은 대중이라는 거대한 무리 속에 묻힐 뿐 개인의 가치를 찾기란 갈수록 어려워진다
MSF에 지원하는 사람들은 부속품이 아닌 주도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 기꺼이 아프리카로 날아 온다
일상은 힘들지만 자국의 편안한 삶에서는 느끼지 못한 자부심과 주체성을 맛보는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의 삶에 큰 도움을 준다는 것을 직접 옆에서 느낄 때 그 희열감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 것이다
아마도 그런 이유로 그들은 계약 기간이 끝난 후에도 다시 MSF로 돌아올 것이다
실제로 자국에 돌아가면 친구들과 어울리기 힘들다고 한다
아프리카 난민들의 참상을 보지 못한 친구들과 이야기 주제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대화가 원활하지 않고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이미 그들의 가치관이 바뀌어 버린 이상, 물질과 부를 기준으로 평가하는 사회에서 어울려 살기 힘들 것이다 

학살에 대한 통찰력 있는 고찰도 좋았다
복수가 먼저이고 화해는 그 다음이라는 표어를 보면, 폭력성은 인간의 기본적인 속성이 아닌가 싶다
르완다 내전시 후투족은 투치족을 죽이기 위해 무덤이 아직 비어있다고 선동한다
국영 라디오 방송에서 이런 멘트를 내보낼 수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2차 대전 당시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을 생각하면 비단 후진국의 문제라고 넘어갈 일도 아닌 것 같다
소수에 대한 집단의 폭력성은 인간의 내밀한 속성일지도 모른다
거창하게 국가나 민족을 따질 것도 없다
학교에서 흔히 벌어지는 왕따 현상도 넓게 보면 소수 민족 학살과 일맥상통한다

이 책의 미덕은 MSF의 좋은 점만 떠벌여 책 팔려고 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저자가 교수 출신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MSF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가감없이 발언한다
어쩌면 자신들의 문제점과 고민을 솔직히 드러내는 MSF 자체의 건강성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들의 지원 때문에 군벌은 활력을 얻어 전쟁을 연장한다고 한다
난민촌이 있어야 국제 원조가 이뤄지므로 없는 난민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난민촌에 숨어 들어 다음 전쟁을 준비하는 식으로 난민을 전쟁 도구로 이용하는 상황이니, 오히려 MSF 같은 국제 기구가 전쟁을 연장시킨다는 회의도 들만 하다
그렇지만 고민하는 새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의료 시설의 부족으로 죽어 간다
그들은 고민하는 대신 행동한다
UN 같은 국제기국들이 자국의 영향력 증대를 비롯, 여러가지 제반 사항들을 고민하는 대신 즉각적인 구조 활동을 펼치는 이런 정신이 MSF를 건강하게 유지시키는 것 같다

대중 매체에 대한 홍보도 이 단체의 고민 중 하나다
비단 MSF 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모든 NGO들의 문제점일 것이다
사람들의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서는 매체 홍보가 필수적이지만 매스 미디어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기사를 원한다
그들 역시 하나의 사업인 만큼 최대의 이익 창출을 위해 보다 극적인 기사거리를 찾기 때문에 기금 모금을 위해서 대중 매체의 힘을 빌려야 하는 단체들은 어쩔 수 없이 과장 섞인 홍보를 하기 마련이다
그 과정에서 단체의 본질이 흐려지기 마련이다
난민촌의 실상을 정확히 전달하는 사람 대신, 보다 자극적이고 극적으로 포장된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이 더 선호되는 현실은 씁쓰름 하지만, 감수해야 할 부분 같다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이상 NGO 역시 돈 없이는 움직일 수 없고 대중의 관심을 촉구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매스 미디어인 이상, 일정 부분의 과장이나 포장 등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어쨌든 안 하는 것 보다는 하는 게 낫기 때문이다

슈바이처처럼 전 생애를 봉사에 바칠 수는 없지만, 내 도움이 필요로 하는 곳에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다면 행동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의의가 있지 않을까?
또 자율성과 주체성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다
물질적인 부나 성공에 매달리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고 오히려 더 충만된 삶을 살 수도 있다
부와 성공은 경쟁을 통해 패배자가 생기기 마련인 제로섬 게임이다
그러므로 함께 나눠도 줄지 않는 자원, 즉 인간의 존엄성이나 봉사 정신, 혹은 주체성, 자발성 등의 내적 가치를 얻기 위해 애써야 할 것이다
성인들은 이런 원리를 깨닫고 자신의 삶 속에서 실천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나는 가진 게 참 많다
나는 극빈층도 아니고 무엇보다 확실한 직업을 가졌다
자기 발전을 위해 애쓰는 건 좋지만, 남보다 앞서기 위해 안절부절 하는 것은 스스로를 갉아 먹는 행위다
평가 기준을 다른 곳에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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