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 문학
마종기 손명세 정과리 이병훈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5월
평점 :
품절


정말 재미없게 읽은 책이다
여러 명이 쓰면 꼭 이게 문제다
전체적인 일관성이 없고 수준이 떨어지는 글도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책은 좀 심하다
여러 필자들의 글을 모을 때는 어느 정도 통일성을 가지고 하나의 주제로 수렴될 수 있어야 하는데 의학과 문학을 소재로 했다는 걸 제외하면 비슷한 점을 찾을 수가 없다
차라리 몇몇 사람들만 선발해서 좀 더 많은 분량을 할당해 깊이있는 분석을 했다면 훨씬 좋았을 것 같다
의학과 문학의 결합이라는 보기 드문 시도를 했다는 점은 높이 사지만, 중구난방 식의 편집은 문제가 있다
편견일수도 있지만 전문적인 글쓰기를 안 하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전체적인 수준도 낮은 편이다
개인적인 얘기를 풀어내는 에세이 형식을 탈피하긴 했지만, 의학과 문학의 상관관계라는 거대한 담론을 펼치기에는 아직은 저자들의 실력이 부족한 듯 싶다

그러나 시도 자체는 가히 혁명적이라 할 만 하다
언젠가 "비블리오 테라피" 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비블리오는 그리스어로 책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책으로 심리 치료를 한다는 얘기다
요즘 음악 치료니, 색깔 치료니, 향기 요법이니 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심리 치료를 시도하지만 책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발상은 참 신선했다
비블리오 테라피가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이제 의사들도 인문학적 소양을 갖출 필요성이 생긴다
사실 의사들은 지나치게 자연과학 쪽으로 치우쳐 있다
비단 의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공계쪽 전부가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의학은 인간의 몸을 다루고 치료 과정에서 환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다른 어떤 자연과학 학문보다도 더 많은 인문학적 교양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책에서도 이 점을 중요시 한다
많은 부분을 검사나 의료 기계에 의존하고 있지만 치료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가 알려 주는 정보이다
이 정보를 문진을 통해 충분히 습득하기 위해서는 환자와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매우 중요할 것이다
그런데 의사들은 실제로 이 기술이 매우 서툴다
대중매체에서 흔히 그려지는 부정적인 이미지의 의사는 차갑고 냉정해서 환자의 고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기계적인 인간으로 나오는데, 상당 부분은 의사들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고 본다
저자들도 지적하는 바지만 대체의학이나 한의학 쪽으로 관심이 가는 까닭은 왠지 그 사람들은 전인적인 치료를 할 것 같고 보다 인간적으로 병에 대한 접근을 할 것 같은 느낌이 강하다
실제적인 치료율을 떠나서 대체의학이나 한의학이 검사나 기계에 의존하는 대신, 전체적이고 인간적인 치료를 한다는 느낌을 받는 이유에 대해 의사들은 한 번쯤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제일 인상적인 글은 질병의 개별성을 강조한 어떤 교수의 글이었다
병원에 가면 환자는 통증을 호소하며 자신의 괴로움을 토로한다
그런데 의사들은 그저 수많은 환자 중 하나로 생각하고 그 질병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즉 환자는 질병을 개별적으로 인식하는데 비해, 의사는 보편적으로 대할 뿐이다
사실 의사가 모든 환자의 질병에 대해 개별적인 관심을 갖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의사 역시 봉사와 사랑을 실천하는 성자가 아니고 일을 해서 먹고 사는 하나의 직업인인 이상 매일 매일 해야 하는 일, 즉 치료과정에 항상 특별한 관심을 유지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더구나 매일 매일 듣는 환자들의 불평이 얼마나 지겹겠는가
그들의 무관심과 일상적인 접근이 이해는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는 인간의 생명이라는 대체할 수 없는 가장 고귀한 것을 다루는 직업이므로 다른 어떤 직업보다도 직업 윤리가 투철하고 엄격해야 한다고 믿는다
환자들의 고통을 공감하고 그들을 이해한다는 의미에서도 의사의 인문학적 소양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미 미국에서는 1970년대부터 의과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또 일반 학부에서 기본적인 소양을 갖춘 사람을 선발해 4년간 의학 교육을 시키는 대학원 제도를 통해 의사의 인문학적 자질을 장려한다
우리나라 의과 대학은 2년간의 예과 제도를 가지고 있지만 실제적인 인문학적 지식의 습득은 미미한 편이다
미국 의과대학은 대학원 입학을 위한 필수 학점에 문학을 포함시키고 있다
생물이나 화학 등 일반적인 과학 과목보다 문학에 더 많은 점수를 부여함으로써 가능하면 인문학적 지식을 갖춘 사람을 선발하려고 노력한다
인문학적 지식이 많다고 해서 인간적인 의사가 되는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균형감각을 갖춘 의사는 될 수 있을 것 같다
또 의사가 지역 사회의 리더 역할을 하려면 글쓰기 훈련도 해야 하고 인문학적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우리나라는 연세대학교에서 본과 과정에 문학 수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예과도 아닌 본과에서 문학을 가르친다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변화라고 생각한다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접목은 비단 의학과 문학에 국한된 일은 아닐 것이다
갈수록 스페셜리스트 보다는 전체를 아우를 수 있고 비젼을 제시할 수 있는 제너럴리스트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만큼 자기 전공 분야에만 몰두하는 것은 우물 안 개구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보다 많은 학문들의 교류가 필요할 것이다
의학은 자연과학 중에서도 특히 인문학과의 접목이 많이 필요한 학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학에서부터 기본적인 인문학 지식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
보다 넓은 시각을 가진 의사를 양성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의외로 의사 출신 작가들이 많다
제일 유명한 사람은 러시아의 작가 안톤 체호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쓴 마거릿 미첼도 의과 대학을 중퇴한 전적이 있다
달과 6펜스, 인간의 굴레 등을 쓴 영국의 서머셋 몸도 일반의였고, 광인일기나 아큐정전으로 유명한 루쉰도 일본의 한 의과대학을 중퇴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의학과 문학의 만남은 아주 낯설거나 이질적인 것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인간의 생로병사를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만큼 누구보다 인간에 대한 애정과 깊은 이해가 가능할 것 같다
그런 의미로 보면 의사 출신 작가들의 등장은 무척 반가운 일이다
마이클 크라이튼이나 로빈 쿡처럼 우리나라에도 의사 출신 작가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안톤 체호프 같은 대문호가 나온다면 더 바랄 게 없을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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