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의 덫
장하준 지음 / 부키 / 2004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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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리 걷어차기" 가 너무 어려워서 이 책도 조금 긴장했는데 한국 신문에 한글로 발표한 글이라서 그런지 쉽고 평이하다
처음부터 책으로 쓴 게 아니라 신문 등에 에세이 형식으로 쓴 거라 구체적인 자료 제시가 없어 오히려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객관성도 좀 떨어지는 것 같기는 하다
계속 읽다 보니 한 가지 자료가 계속 근거로 이용되는 걸 알 수 있다
좀 더 다양한 자료를 제시했더라면 훨씬 신뢰가 갔을텐데 나중에는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의외로 저자는 국가의 개입을 긍정적인 쪽으로 본다
전작에서도 충분히 주장한 거지만 유럽이 선진국이 된 원인은 보호 무역에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시대가 달라졌는데 여전히 우리도 보호 무역으로 승부해야 하는 걸까?
저자는 세계화가 비단 21세기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고 하지만, 저자가 세계화 됐다고 주장하는 19세기와 21세기의 세계화는 명백히 다르다고 본다
그렇지만 무조건 미국 추종하는 것이 세계화가 아니라는 말에는 깊이 공감하는 바다
미국이 세계 유일의 강대국인 것은 사실이지만, 정치적 힘이 크다고 모든 것이 다 우월할 수는 없다고 본다
반미도 문제지만 친미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데올로기에 경도되면 나라를 말아 먹은 조선 시대 유학자들과 다를 게 뭐가 있겠는가?
보다 실리적이고 넓은 눈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만이 아닌 다양한 세계를 접하고 관심 분야를 넓혀야 하며, 무엇보다 미국을 절대시 하는 그 태도부터 바꿔야 할 것이다

박정희 정부의 근대화 공적을 인정하는 저자의 평가는 나도 동의한다
독재자가 근대화를 일으킨 경우는 드물고, 어쨌든 그 덕분에 비약적으로 발전한 건 사실이니까
한 사람에게 모든 영광을 돌릴 수는 없겠지만, 또 살인적인 노동 환경을 감수한 우리 국민들의 노고도 잊어서는 안 되겠지만 어떤 일이든지 지도자가 대표로 칭찬받는 법이다
잘못되도 대표로 욕 먹는 것처럼 말이다
저자는 경제 구조가 취약한 우리나라가 미국 등의 압력에 굴복해 무조건 시장을 개방하면 일방적으로 당할 거라고 걱정한다
경제에 대해 문외한이라 뭐가 옳은 건지는 모르겠으나 무조건 미국 따라가는 게 최선이라고 믿는 일부 지식인들 보다는 훨씬 주체적으로 보인다

저자는 노무현 정부 역시 진보주의로 공격을 받지만 실상 진보적인 정책은 거의 없다고 본다
여전히 보수주의자의 맥을 이어 자유 무역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실상이 그렇다면 기득권층의 노무현 흔들기는 정권 뺏기 위한 쇼에 불과할 것이다
본질을 안다는 것은 왜 이렇게 힘든지!!
저자는 재벌 역시 우리 경제에 많이 기여했다고 본다
문어발식 확장이나 내부 투자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어느 사회나 특수성이 있기 마련이니까 뭐라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쨌든 노동 환경의 유연성 운운하면서 정리 해고를 당연시 하는 이 분위기는 빨리 사라져야 할 것이다
복지 정책도 제대로 안 돼 있으면서 선진국 따라 한다고 무조건 거리로 내몰면 가엾은 국민들은 어디로 간단 말인가?
결국 회사에서 쫓겨난 직장인들이 소자본으로 창업한 점포들이 망하면서 불경기가 계속 되고 국민들 삶은 더욱 피폐해지고 있다

외국인 투자도 저자에 따르면 경기 회복에 도움이 안 된다고 한다
외국인 주주들은 대체로 나이가 많아 안정성을 중시하므로 기업이 투자하는 걸 싫어한다
고위험 고수익 보다는 배당이 적어도 안정적인 수익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외국인 주주의 비율이 높아질수록 기업은 투자 대신 현상 유지만 추구하고, 경기는 더욱 침체된다
그래서 청년 실업이 생기는 걸까?
또 주주들은 이익에 냉정하기 때문에 손해날 것 같으면 바로 자본을 빼기 때문에 재벌 그룹처럼 서로 도와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안정된 선진국 경제에는 어떨지 모르지만 우리처럼 성장해야 할 개도국에는 맞지 않는 체제라는 얘기다

그러고 보면 대우나 삼성처럼 무조건 정부가 공적 자금으로 살린 후 외국 기업에 헐값으로 넘기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인지 모르겠다
정부가 갖고 있으면 큰일날 것처럼 구는 언론의 시각이 문제라고 진단한다
왜 부실 기업에 국민의 세금을 쏟아 부어야 하냐고 비판하지만, 거기에 딸린 사원들과 그 식구들, 또 하청업체까지 생각하면 공적 자금의 적절한 투자는 불가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살린 기업을 외국 기업에 싼 값에 급하게 넘긴 후 마치 구조 조정을 제대로 했다거나 다국적 기업이 대세라는 식으로 편하게 생각하면 우리에게 손해라고 한다
아무리 자본에는 국적이 없다고 해도 기업을 운영하는 중심 경영진의 국적은 분명하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아직까지는 세계화 보다 국가주의가 우세한 모양이다

저자는 노동자와 경영진의 대타협을 제시한다
왠지 말 뿐인 관념적인 해결책 같긴 하지만 이론 자체는 좋다
노동자에게 안정된 고용 환경을 보장하는 대신, 경영진의 경영권도 인정해 주는 식으로 말이다
재벌의 존재 의의와 특권을 인정하는 대신 그들도 사회적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국민의 감시도 달게 받는다
글쎄, 과연 가능한 얘기일까?
솔직히 지배 세력의 기득권은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면서 빈부 격차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즉 잘사는 사람들에 대한 근거없는 분노를 가진다면 그 사람은 공산주의 국가로 이민가야 한다
그런데 개인의 이기심과 능력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공산주의는 이미 실패로 판명이 나서 이민갈 나라도 없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결국 생산력을 증대시키는 유일한 경제 원리가 자본주의 뿐이라는 결론이 나니, 어쩌겠는가?
좀 배가 아프지만 부자들을 인정하는 수 밖에
그렇지만 함께 사는 사회이므로, 또 갈수록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 생존권을 중시하는 쪽으로 발전하므로 부자들이 사회적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도록 압력을 가할 필요는 있다
지배 계층이라고 군대 면제되는 식의 관행은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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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4-12-07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하준씨 책 읽으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올해가 가기 전에 한번 꼭 읽어보고 리뷰에 동참하고 싶네요.

marine 2004-12-07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읽기 쉽구요, 전작인 "사다리 걷어차기" 는 어려워요 전 일단 도표나 그래프 많이 나오면 머리가 딱 굳더라구요 "사다리 걷어차기" 는 본인이 영어로 쓴 걸 다른 사람이 다시 번역해서 그런지 읽기가 좀 어려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