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탄생 - 한 아이의 유년기를 통해 보는 한국 남자의 정체성 형성 과정
전인권 지음 / 푸른숲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참 재미있는 책이다
확실히 우리나라 사람이 쓴 책은 훨씬 더 실감있게 느껴진다
문화의 차이란 시간이 갈수록 거부할 수 없는 큰 힘인 것 같다

한국 남자란 어떤 종족인가?
한국 남자를 동양 남자라고 치환시킬 수 있을까?
저자의 분석을 빌리면 단순히 유교 문화에서 성장한 남자라고 말할 수 없는 독특한 시점이 있다
같은 유교 문화권에 한자를 쓰는 중국이나 일본과는 또 다르다는 얘기다
이런 걸 보면 유럽과 미국을 단순히 서양이라고 분류하는 게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분류인지 알 만 하다
민족성이란 이처럼 타자와 구분되는 거의 본질적인 특징 같다

나는 이 책의 저자와 세대가 다르다
그 보다는 훨씬 더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권위에 함몰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나 역시 권위주의 환경에서 자랐다
지금 아이들은 나 보다 훨씬 더 개방적인 환경에서 클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의미의 자유와 평등은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요원한 문제 같다
개개인은 수평적일지라도 사회를 관통하는 주요 원리가 아직은 권위주의이기 때문이다

"동굴 속의 황제"는 권위주의에 사로잡힌 우리 모두에게 참으로 적절한 비유다
윤리 교과서에서 인용한 베이컨의 이 철학 용어를 그 때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동굴 속의 황제에 걸맞는 예시를 묻는 윤리 문제를 늘 틀렸던 것 같다
아마 단순히 우상이라고 외웠을 것이다
그렇지만 진짜 의미는 몰랐다
우상이라니? 동굴 속의 황제 하고 우상하고 무슨 의미가 있어?
사실은 그 우상이란 뜻 자체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왜냐면 우상이란 단어를 일상 생활에서 흔히 쓰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에 흔히 등장하는 우상은 늘 관념적으로 이해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제서야 그 의미를 제대로 알겠다
동굴 속의 황제 근성은 허위나 위선 의식과도 통한다
일상 생활에서 내가 화를 쉽게 내는 이유도 바로 이 황제 근성 때문이다
모든 일은 내 위주로 풀려야 하므로 장애물이 생기는 걸 용납하지 못한다
내 의견은 무조건 옳기 때문에 타인의 비평을 비난과 동일시 여겨 견디지 못한다
의견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 같지만, 그것은 대외적인 것일 뿐 실상 내 마음에서는 내 생각이 옳다고 믿는다
나는 지적 우상에 사로잡혀 내가 믿고 추구하는 것이 타인의 것보다 우월하다고 확신하고 있다
나만 옳다는 이 독선적이고 위험한 생각은, 실상 우리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다
오직 하나의 진리 뿐이라는 이 명제가 곧 권위주의를 나타내는 말이 아니겠는가?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은 참으로 한국적이고 눈물겹다고 할 수 있다
다른 문화권에서도 모성은 늘 신화로 덧칠되어 있지만, 우리에게 어머니란 거의 절대적인 존재다
권력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자식을 위해 전 삶을 던질 수 있을 만큼 희생적이고 절대적인 애정을 보인다는 얘기다
저자는 아들이 어머니를 성적으로 독차지 한다고 지적했다
다 커서도 여탕에 목욕을 시키러 다니는 아줌마들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자식이 태어나면 남편은 뒷전으로 밀린다
그리고 여자는 온갖 사랑과 정성을 아들에게 쏟는다
아들과 어머니의 이 밀착된 관계는 나이가 들어서도 흔들리지 않고 고부 갈등을 낳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요즘은 여자들이 자아 찾기에 나서면서 자식에게 매달리는 면이 많이 줄긴 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대한민국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는 기형적이기까지 하다
과거 역사를 돌이켜 보면 여자가 한 집안의 며느리로 들어가서 기를 펴는 것은 순전히 아들을 낳았을 때 뿐이다
그 집안의 대를 이었다는 명분과 함께 노후를 의탁할 근거가 마련된다
자신의 미래를 맡긴다는 의미에서 보면 어머니들의 딸 차별은 당연하게 보인다
그런데 오늘날의 자식들은 더 이상 노후 보험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
여자들 역시 경제력이 생기면서 아들이나 남편에 대한 의존도가 줄고 있다
여전히 한국 어머니들은 자식의 출세를 자아 실현과 동일시 하긴 하지만, (그래서 그 출세 방편인 교육에 열을 올리지만) 사회가 다원화 되면서 이 분위기도 변하리라 기대해 본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한국 사회에서 아버지란 참으로 대단하면서도 불쌍한 양면적인 존재다
60년대는 특히 그랬겠지만, 부권이란 거의 절대적인 권위였다
저자의 고백처럼 감히 도전할 수 없는 성역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아버지가 전적으로 가정 경졔를 도맡아 오기도 했고, 가문의 계승이라는 관념적인 측면에서도 그랬다
권위를 세우는 대신 자식과의 친밀함이 줄어 드는 건 필연적인 수순이다
아버지는 워낙 높은 존재였기 때문에 가족에서 소외되어 갔다
오늘날 고개 숙인 남자들의 현실은 그들의 가엾은 처지를 잘 반영한다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가족 내에서도 소외되는 이 땅의 가장들이 갈 곳은 많지 않다
요즘 같은 탈권위 시대에 더 이상 가부장제는 의미가 없다
아버지, 혹은 가장이라는 무거운 짐을 계속 매고 있어 봤자 알아 주는 사람은 없다
아버지들이 평등한 관계로 내려서지 않으면 그들은 돈 버는 기계의 운명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권위주의의 대안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지적했다는 점이다
기득권층은 흔히 권위가 사라지면 무질서가 온다고 걱정한다
그러나 권위주의 대신 쌍방간의 자유로운 의사 소통이 그 자리를 차지하면 된다
일방적인 관계는 닫힌 사회의 특징이고 폭력성과 경직성이 수반될 수 밖에 없다
요즘 같은 개방화 시대에 권위주의는 어울리지 않는 지배 원리다
과거 학교가 폭력의 온실이었다는 것은 권위주의와도 연관이 깊다
교사들에 의한 폭력 생산을 교육의 일부로 당연시 했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
(그런데 학생들끼리의 교내 폭력은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공과 사를 구분하라는 말이 사실은 사를 완전히 무시하고 공적인 부분에만 신경쓰라는 의미임을 밣히는 저자의 필력이 놀랍다
정말 공과 사의 구분을 확실히 한다면, 회사일을 위해 가정을 팽개치는 어리석은 짓은 안 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그야말로 공이 사를 완전히 대신하는 전체주의 사회였다
요즘은 사적 영역이 제 위치를 찾아가고 있지만 아직도 요원하다
저자는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열린 사회를 원하지만 과연 이러한 쌍방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언제쯤 제대로 시행될지 모르겠다

책을 읽고 느낀 점은, 일단 나부터 동굴 속의 황제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지적 우상에 사로잡혀 무조건 내 의견만이 절대선이라 믿는 어리석음에서 탈피하자
그리고 다양성을 인정하자
가치 기준이란 절대적이지 않다
나에게 옳은 것도 남에게는 그를 수 있음을 받아 들여야 한다
더불어 쌍방간의 수평 관계를 인정하자
우월 의식을 갖는 것은 그만큼 자존감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저자는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이 부족하므로 남의 의견을 수용하지 못하고 비평에 민감하다고 했는데, 내가 당당하고 떳떳하다면 그만큼 포용력이 생길 것이다

아이를 키우게 된다면 그 다양성의 원리를 가르치고 싶다
더불어 권위란 결국은 극복해야 할 대상임을 강조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부터 부모의 권위를 포기해야 할 것이다
나는 비록 권위주의 교육을 받았지만, 사회는 갈수록 탈권위화 되어 가고,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인간을 원한다
현대 사회에 적응하려면 권위주의형 인간에서 탈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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