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의 탄생
니겔 로스펠스 지음, 이한중 옮김 / 지호 / 2003년 8월
평점 :
품절


새벽 1시에 일어나서 읽은 책이다
세 시간 동안 300페이지를 읽었으니까 비교적 빨리 본 셈이다
일찍 보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하리하라의 생물학 까페"처럼 내용이 아주 쉽거나, 아니면 이 책처럼 지루해서 대충 읽거나 둘 중 하나다
"동물원의 탄생"이 아니라 차라리 "칼 하겐베크 일대기"라고 제목을 붙이는 게 낫겠다
동물원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생겼는지, 서양에서 동물원이 주는 의미는 무엇인지, 실제 야생 동물을 포획하는 과정은 어땠는지 등등에 관해 알고 싶었는데 궁금증의 절반 밖에 못 푼 기분이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겐바크 얘기만 한다
물론 그가 근대 동물원 탄생에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말이다

사실 동물원에 가면 이중적인 느낌이 든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어쩌면 평생 못 보는 밀림 속의 동물들을 관람하는 신기한 감정과 우리 안에 들어 있는 동물들을 학대한다는 감정이 교차한다
사자나 기린, 침팬지, 하마 등등을 보는 건 좋은데 과연 동물원 환경이 그 안에 갇힌 동물들에게 우호적인가는 확신할 수 없다
우호적이라는 개념 자체도 인간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므로 엄격한 의미로 따지자면 동물원은 아무리 미화를 해도 동물 학대에 가까울 것이다
그래도 요즘은 환경주의 개념이 확대되면서 좀 더 나아졌다
이제 울타리에 가두기 보다는 해자를 판 후 보다 넓은 공간에서 동물들을 수용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그것도 부유한 국가의 대도시 동물원에나 해당되는 얘기지, 광주만 해도 여전히 열악하기는 마찬가지다
동물들을 자연적으로 수용할 경제적 능력이 없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일정 기준에 못 미치는 동물원은 인가를 안 내 준다면, 지방 사람들의 문화 체험을 박탈하는 것이 될 것이다
동물원에 가서 신기한 동물들에 열광하는 어린이들을 생각해 보라

하겐바크는 19세기 후반에 부업으로 동물 사업을 시작했는데, 대를 이어 오늘날까지 독일에서 큰 동물원을 운영하고 있다
하겐바크가 운영한 동물 사업의 내용은 다양하다 못해 엽기적이기까지 하다
동물을 잡아 전시하는 것부터 시작해 서커스, 동물 도매업, 심지어 사람쇼까지 동물을 잡아서 돈 벌 수 있는 건 다 한 셈이다
다른 건 다 그렇다 쳐도 어떻게 사람쇼 할 생각을 다 했을까?
지금 생각하면 그저 엽기라고 밖에 안 느껴지는데, 당시에는 인류학회의 지원까지 받았다고 한다
19세기 말이면 독일이 한창 식민지를 늘려 갈 때다
유럽인들은 식민지인들을 문명화 시킨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고, 사람쇼는 이것에 대한 증거물이었다
아프리카에서 동물을 잡아다 유럽 동물원에 파는 사업이 지지부진해지자, 하겐바크는 새로운 사업을 구상한다
놀랍게도 그것은 원주민들을 데려다가 전시하는 것이었다
TV나 영화가 없던 시절에 이들의 삶은 대단히 이국적으로 비쳤을 것이다
하겐바크는 이들이 자신들의 생활 터전을 유럽으로 옮겨 그저 관객에게 보여 줄 따름이라고 하면서, 절대 비인간적이지 않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인류학적 연구를 한답시고 아무 꺼리낌없이 나체 사진을 찍어 대는 행위가 과연 인간적이라 할 수 있을까?
골반 검사를 한다는 명목으로 생식기를 비교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자행됐다
스튜디오에서 나체 사진을 찍는 원주민 여자들을 보면서 과연 그들이 어떤 느낌이었을지 상상이 안 간다
인류학자들은 직접 아프리카나 아시아로 갈 필요없이 유럽으로 온 그들을 편하게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하겐바크가 복잡한 일을 대신 해 주기 때문에 학자들은 그를 치켜 세웠고, 그들의 권위를 이용해 하겐바크는 자기 사업을 더욱 확장시켰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짓을 인류 발전에 이바지 한다는 자부심까지 가지고 자행했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하긴 그 전에는 아프리카인들을 잡아다 노예로 부리는 처지였으니, 그나마 돈 주고 전시하는 건 좀 나아졌다고 해야 할까?)

아프리카 동물들을 포획하는 과정은 야만 그 자체다
누가 그들을 문명인이라고 칭했던가?
새끼 코끼리 한 마리를 얻기 위해 어른 코끼리 수십 마리를 죽이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
다섯 마리의 새끼 코끼리를 잡으려고 60마리의 성인 코끼리를 죽이는 게 예사였다고 한다
그나마 절반 정도는 유럽까지 가다가 죽어 버렸다
오늘날 대부분의 아프리카 동물들이 멸종 위기에 처한 것은 당연하게 보인다
심지어 555마리의 코끼리를 죽인 사냥꾼도 있다고 한다
이 숫자를 부끄러워 하는 게 아니라 능력의 척도로 여긴다는 사실도 놀랍다
숌부르크라는 사냥꾼은 죽은 코끼리 시체 위에서 자전거를 타는 엽기적인 사진을 출판했다
죽은 어미 코끼리 옆에서 외로이 서 있는 아기 코끼리 점보의 사진도 사냥 능력을 증명하는 증거물로 제시했다
그는 사냥꾼이야 말로 진정한 동물의 친구이고, 동물 보호를 주장하는 이들을 감상주의자로 몰아 세웠는데 대체 어떻게 이런 논리가 가능한지 모르겠다
사냥꾼들이 동물의 친구라고?
살인자를 친구라 명명하나 보지?

제일 인상깊은 대목은 자연적으로 꾸미는 현재의 동물원 역시 동물들에게는 절대 자연스럽지 않다는 지적이었다
하겐바크를 비웃지만 도대체 우리가 그 보다 나은 게 뭐가 있는가?
20세기 사람들은 울타리를 거북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치웠을 따름이다
즉 울타리에 가두나 해저를 파서 풀어 놓으나 갇혀 있는 동물들에게는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의미다
요즘 유행하는 해양 동물 공원 역시 끔찍하게 남획되고 있다
열대어를 잡기 위해 필리핀의 한 바다에서는 독약을 살포하기까지 한다
관상용으로 즐기기 위해 그들을 멸종 위기로 몰아 넣어도 괜찮은 걸까?
채식주의자들은 생명의 존엄성을 내세워 육식을 거부하지만, 차라리 육식은 먹기 위해서라는 정당한 목적이 있는 행위다
타당한 이유도 없이 그저 눈으로 즐기기 위해 동물들을 이런 식으로 학살하는 것이 정말 옳은 일일까?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연을 다스릴 권리를 주었으나 그들을 보호하는 책임도 뒤따른다는 사실을 이제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사라져 가는 동물들을 더 이상 보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인간의 존엄성이 민족과 성별을 뛰어넘어 모든 인류에게 적용되듯, 이제 생명의 존엄성도 지구상에 숨쉬고 사는 모든 생명체에게 똑같이 주어져야 할 것이다
인간이 위대하다고?
위대하다는 개체가 함께 사는 동료들을 이렇게 끔찍하게 학살할까?
동물들의 생명의 존엄성에 대해 보다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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