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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용에 대하여
마이클 왈쩌 지음, 송재우 옮김 / 미토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관용이란 무엇인가?
흔히 중용의 도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 보다 적극적이고 전투적인 개념이라는 느낌이 든다
제목을 그럴싸 하게 번역하지 않고 원저 그대로 딱딱하게 번역한 것부터 만만치 않은 책임을 보여준다
겨우 200페이지 짜리인데도 내용이 녹녹치 않다
강의록을 출간한 거라고 그런지 문체가 건조하고 어렵다
상당한 집중을 요한다
어제 졸면서 봤더니 무슨 내용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그래서 요약하면서 읽으니까 좀 낫다
역시 집중이 중요하다
홍세화 책에서 처음 들은 톨레랑스의 진짜 뜻을 알게 된 기분이다
그 때는 단순히 타인에게 관대하게 대하는 태도 정도로만 알았는데 진정한 의미의 톨레랑스란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적극적이고 심지어 전투적인 개념이기도 하다
우리야 단일 민족 국가로 오래 살아 와서 특별히 부각된 적이 없지만, 소수 민족이나 이민자 문제는 유럽에서 심각한 것 같다
당장 미국만 해도 전형적인 다민족 국가가 아닌가?
새뮤얼 헌팅턴은 이들에 대해 지나친 관용이 미국의 약화를 가져왔다고 비판하지만, 저자의 책을 읽으면 지배 계층의 억압 논리라는 생각이 든다
평화로운 공존을 위한 적극적 의미의 관용은 내전이나 전쟁을 막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저자 역시 유태인이지만 소수 민족의 정체성 유지는 늘 심각한 문제였다
사실 나는 이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사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개인으로서의 관용은 용인되지만 집단으로서의 관용은 억압하는 것이 국가 유지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민족 국가는 종교나 혈연으로 구성된 단체의 자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예가 프랑스다
프랑스는 이민자 사회이면서도 동화가 워낙 잘 되서 특별히 그런 느낌을 주지 않는다
프랑스는 공화주의라는 하나의 이념으로 뭉치기 위해 소수 민족들이 집단으로 권리 행사하는 것을 저지한다
대신 개인으로서의 차이는 얼마든지 용인해 준다
사실 이것이야말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 아닐까?
로마 제국이 세금만 내면 각 민족의 자치성을 보장해 준 것처럼 말이다
물론 현대 국가는 집단의 자치성은 인정하지 않지만 말이다
혹시 조선도 중국과 공존하기 위한 관용의 형태로써 사대주의를 표방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중국이 조선에게 관용을 베푼 것이다
이처럼 관용은 권력 관계가 내제되어 있다
관용을 베푸는 쪽은 힘이 있는 쪽이고 관용을 받는 쪽은 힘이 약한 쪽이다
지배 계층은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 약자들에게 차이를 인정해 준다
다양한 양식의 관용이 존재하지만 평화로운 상태를 유지하지 않는다면 과감히 배제해야 한다
다민족 국가가 연방제에서는 집단을 대상으로 관용을 베푼다
이 집단은 자치권을 갖고 있고 집단에 속한 개인에게 배타적인 권리를 행사해 이탈자를 응징한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집단이 개인을 억압하는 권력으로 작용하므로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결론이 난다
그러나 다수에게 차별받지 않고 권리를 주장하려면 집단으로 대항하는 게 효율적일 수 있다
뭐가 옳은지 모르겠다
완벽한 동화가 옳은지, 아니면 민족 정체성을 유지하는 게 옳은지...
관용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허용하지는 않는다
민주주의 게임에 경쟁자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방해꾼은 추방해야 한다
즉 나와 다른 타자의 존재는 인정하지만, 룰 자체를 깨는 사람까지 받아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므로 비인도주의적인 관습도 당연히 비관용의 대상이다
이슬람의 여성 차별이 대표적인 경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