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일의 피카소 - 예술과 사랑을 열정으로 불사른 생애
김원일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4년 4월
평점 :
품절


책 두께에 기가 질렸는데 의외로 술술 넘어가고 재밌다 저자가 소설가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그림이 많아서 생각만큼 분량이 많지 않아서인가? 원래 그림책은 그림이 한 면씩 차지하니까 읽는데 시간이 덜 걸리는 것도 있지만 저자가 참 글을 맛깔스럽게 잘 쓰는 것 같다 해설을 한 서울대 교수는 저자의 생각이 잘 드러나 있지 않다고 했지만, 내가 보기엔 미술사가가 아니기 때문에 정확성을 기하려고 애쓴 측면도 있고 또 전기 같으면서도 자신의 경험이나 한국의 실정들을 잘 첨부해서 퍽 흥미롭다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 때문에 한 번에 읽는 나 같은 사람은 좀 힘들지만, 시간 여유를 갖고 읽으면 아주 재밌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피카소라는 화가 자체가 너무너무 매혹적이다!! 피카소 하면 "아비뇽의 아가씨들" 과 "게르니카" 정도 밖에 몰랐기 때문에 도무지 감동할 수가 없었다 해설한 교수도 통탄하는 바지만,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작품 자체 보다는 에피소드들이 더 많이 알려졌다고 해야 하나? 여자 편력이 심하고 살아서부터 거장으로 인정받았다는 정도 밖에는 몰랐다 그런데 왠걸, 그의 작품들을 접해 보니 이건 정말 장난이 아니다 저자 역시 감탄하는 바지만, 예술가들은 나름의 방식이 있는데 피카소는 그야말로 모든 방식을 다 망라했다 그것도 한 시기에 한 방식으로 그리는 게 아니라, 같은 시기에 여러 방식으로 그린 것이다 화가라면 모든 방식으로 다 그려야 하는 거 아닌가? 혹은 그냥 그리면 되지, 형식이 중요한가? 이렇게 가볍게 생각했는데 저자가 적절한 예를 들어 준다 아마 자기 역시 소설을 쓰는 예술가라 더욱 잘 알 것이다 지식인의 고뇌를 그리는 최인훈에게 농촌 노동자의 삶에 대해 쓰라고 하면 안 되는 것이고, 또 서민들 얘기를 쓰는 소설가에게 지식인에 대해 쓰라고 하면 실례라는 것이다 전 생애를 거쳐 서서히 변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동시대에 전혀 다른 양식을 병행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 등의 창작 행위는 자신을 드러내는 아주 내밀한 의식일진대, 전혀 상이한 방식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한다는 건 몹시 어려울 것이다 입체주의로 그리면서도 사실주의를 동시에 추구한 피카소, 혹은 신고전주의와 초현실주의를 넘나드는 피카소! 덕분에 변절자라는 비판도 들었지만 형식이 내용을 결정하는 대부분의 화가들과는 달리 피카소는 내용이 형식을 결정하는 천재였다 일정한 형식에 구애받지 않은 것이다 그의 그림들을 보면서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어린 시절에 라파엘로처럼 그릴 수 있었다는 말이 빈말이 아닌 것 같다 사실주의 화풍으로 정교하게 그린 그림들을 보면 아무리 형식 파괴를 추구한다 해도 역시 기본을 잘하는 사람이 다 잘한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이른바 청색 시대의 작품들은 신비로운 느낌도 든다 고갱 그림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두운 파란색이 주는 느낌이 자못 신비롭다 친구인 카사헤마스가 여자 때문에 자살한 후 그린 "인생" 이란 그림이 퍽 마음에 든다 카사헤마스의 표정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멋진 그림이다 솔직히 나 같은 그림의 문외한들에게는 이런 구체적인 그림들이 훨씬 마음에 와 닿는다 입체주의 그림들은 솔직히 큰 감동은 없다 미술사적 의의는 알겠는데 나에게는 좋은지 어떤지는 모르겠다 특히 "아비뇽의 아가씨들" 이나 "게르니카" 등은 워낙 유명하니까 그런가 보다 할 뿐이다 큐비즘이 뭘 의미하는지는 알 것 같다 각을 지우면서 2차원의 세계에서 3차원을 표현하려는 시도라는 느낌은 든다 입체파의 선구자인 피카소와 브라크가 왜 세잔을 존경했는지도 알 것 같다 대상의 형태를 원뿔이나 각 사이로 숨겨 버리는 그 시도 자체가 놀랍다 이런 게 바로 혁신인가? 제일 마음에 드는 그림은 "해변을 달리는 여인들" 이다 나는 이런 강렬한 색체와 뚜렷한 형태의 그림이 좋다 마치 마네의 그림처럼 말이다 피카소는 인물들의 손발을 유난히 크게 그린다 풍만함을 넘어서 거대하다는 느낌도 든다 상투적인 표현으로 무한한 생명력이라고 해야 하나?

피카소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육신과 가난한 정신의 세계를 추구했다
돈 걱정 안 하고 편하게 그림을 그려야 하니까 예술가는 돈이 많아야 한다는 말이 뻔뻔하게 들리지 않는 것은, 그가 그만큼 치열하게 예술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하기사 화가들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건데, 고흐나 고갱처럼 평생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기왕이면 피카소처럼 제대로 대접받고 원하는 그림을 맘껏 그리는 게 더 멋진 거 아닌가?
더구나 그는 이미 30대부터 대가로 대접받았던 행운아다
당대에 인정받는 것만 해도 축복받은 일인데 (대중이 시대를 앞서가는 천재에게 보조를 맞춰춘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젊어서부터 그 진가를 인정받았으니, 그는 얼마나 행복한 화가인가!!
이미 30대 때 그의 그림은 파리에서 가장 비싼 값으로 거래됐다
당시 그의 경쟁자는 12세 연상인 색체의 대가 마티스였다
얼굴색이 반반으로 나뉜 여자의 초상화를 본 기억이 난다
워낙 유명해 미술책에 실렸던 것 같다
그처럼 마티스는 색을 자유자재로 썼고 피카소는 형태의 파괴를 즐겼다
특히 피카소는 공간 분할을 통해 여러 관점에서 대상을 표현했다
피카소는 마티스를 유일한 경쟁자로 생각했다니, 마티스도 보통 인물은 아닌가 보다

피카소가 공산주의였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더 충격인 것은 6.25 때 양민 학살을 그렸다고 알려진 "한국에서의 학살" 이 사실은 미군의 북한 인민 학살을 그린 거란 사실이다
얼마나 충격적이던지!!
요즘에서야 미군이나 국군의 양민 학살이 표면 위로 드러나 논의되고 있지만, 사실 학살하면 공산주의자와 동의어 아닌가?
이게 내가 받은 교육이었는데, 실은 미군도 북한 점령하면서 사람들을 학살했다는 것이다
북한 괴뢰군으로부터 한국을 지켜준 자유민주주의 수호자 미국이 학살을 자행했다니, 믿을 수가 없다
한 때 우리나라에서 이 그림의 소개가 금지됐을 정도니 확실히 미군의 학살을 비난하긴 한 건가 보다
이에 따른 저자의 설명이 더 마음에 든다
평양을 직접 방문해서 학살 사진들을 봤는데 미군이 직접 개인한 장면은 없고 대부분이 국군이나 반공주의자에 의한 학살이었다고 한다
아마 이게 맞는 설명일 것이다
미군이든 중공군이든 남의 나라 내전에 원정와서 굳이 주민들 한꺼번에 죽이는 수고를 하진 않았을 것이다
보나마나 그들을 등에 업고 권력 깨나 얻어 보려던 내지인들의 소행일 것이다
어쨌든 피카소가 공산주의자였고 반미주의자였으며 한국의 내전에 미국이 개입한 걸 비판했다고 하니 충격적이다

피카소는 성적 에너지가 넘치는 남자였다
92세까지 산 걸 보면 일단 대단히 건강했을 것이고 건강한 남자가 성욕이 왕성한 건 당연할 것이다
젊었을 때 사진을 보니 잘 생긴 건 아니지만 인상이 무척 강렬하다
눈이 부리부리 하고 윤곽이 뚜렷한 게 카리스마가 있었을 것 같다
오래 같이 산 여자만 해서 7명인데 정식으로 결혼한 여자는 올가와 늘그막의 자클린느 뿐이었다
자클린느는 무려 45세 연하였다
젊어서부터 워낙 거장으로 받들여지던 탓도 있겠지만 여하튼 젊은 여자와 사랑을 나눌 만큼 그의 정력이나 매력이 대단했던 것 같다
우리나라의 김흥수 화백이 생각난다
자클린느는 불임이었고 피카소를 헌신적으로 받드는 동양 여자 타입이었다
그녀는 27세의 나이로 72세의 피카소를 만나 함께 살았다
이미 결혼에 한 번 실패해서였을까?
아무리 그가 거장이라 할지라도 20대 여자가 70대 남자랑 산다는 건 참...
아버지 뻘도 아니고 완전히 할아버지 아닌가?
60대 영조에게 시집오던 열 다섯 살의 정순왕후가 생각난다
권력을 갖는다는 건 이렇게 행복한 일인가?
어쨌든 이 헌신적인 젊은 아내는 피카소가 죽은 뒤 자녀들의 재산 싸움에 휘말려 자살하고 말았다니, 돈이나 권력 때문에 피카소랑 살았던 건 아닌 게 분명하다

능력만 되면 피카소처럼 결혼 생활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는 한 여자와 10년 이상 살지 않았고 결혼도 않하고 동거만 했다
질릴만 하면 새 여자가 나타나 그의 뮤즈가 되어 준 것이다
그것도 나이가 들수록 더욱 젊은 여자가 나타난다
40대에 만난 마리 테레즈는 겨우 17세였다!!
워낙 그림에만 몰두해서 그런지 피카소는 자식들에게 좋은 아버지가 아니었다
파트너에게는 말할 것도 없지만 말이다
그래서 늙그막에 배다른 그의 자식들은 아버지 유산만 노리고 있다고 피카소는 슬퍼한다
사회적으로 워낙 인정받고 또 자신의 예술적 재능이 여기저기서 분출하는 천재였던지라 주위 사람들에게 관심을 나눠 주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그야말로 진정한 개인주의자고 자아 정체성을 확실하게 표현한 사람이랄까?
근검절약형이었던 피카소는 파트너들에게도 꽤 인색했다
사실 이 점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나 역시 내가 소비적이지 않기 때문에 타인에게도 내식대로 대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인색하다는 평을 듣는다
그렇다고 인정이 없어서 그런 건 절대 아니다
내 기준으로 보면 사치고 낭비이기 때문에 선뜻 돈을 안 쓰는 것이다
피카소도 올가나 마리 등의 사치를 혐오했다
돈은 많지만 소비적이지 않았던 피카소는 대신 조국 스페인의 민주화 등을 위해서는 선뜻 거금을 내놓는다

한 때 귀족들과 어울리며 사교계를 드나들기도 하지만 예술혼으로 불타던 피카소에게 이런 가식적인 삶은 어울리지 않았을 게 뻔하다
기질이 틀리다고 해야 하나?
만약 피카소가 세속적인 성공에 젖어들었다면 위대한 화가가 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자신의 작품값을 철저하게 받아 내는 경제 관념이 뚜렷했던 것과는 별개로, 그는 그림에만 치열하게 매달린다
사실 이거야 말로 가장 바람직한 예술가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세속적인 성공도 하고 예술적으로도 치열하게 사는 삶!!
90세가 넘어서도 작품 활동을 멈추지 않던 그 정열은 놀라움을 넘어서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일이 곧 휴식이고 쉬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는 그의 열정은 정말 대단하다
이미 30대에 입체주의를 완성한 후 거기에 머물지 않고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한다
마르지 않는 창작열이라고 할까?
로시니는 젊어서 오페라로 번 돈으로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며 편안하게 살았다
머리 아픈 오페라 작곡을 더 이상 하지 않은 것이다
일단 성공하고 나면 더 나은 작품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나 혹은 창작의 괴로움 때문에 더 이상 매달리고 싶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젊은 나이에 은퇴하는지도 모른다
반면 피카소는 그리는 것이 곧 행복이고 여가였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새로운 형태로 그린다
도자기, 무대 예술, 판화, 조각 등등 그가 손대지 않은 시각 예술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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