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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생과 사의 수수께끼에 도전하다 - 다치바나 다카시의 암과 생명에 관한 지적 탐구
다치바나 다카시.NHK스페셜 취재팀 지음, 이규원 옮김, 명승권 감수 / 청어람미디어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내가 좋아하는 일본의 저널리스트 다치바나씨가 이번에는 암에 관한 책을 냈다.
기자가 쓴 책이라면 어쩐지 전문성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어 (한 두번 실망한 게 아니다) 잘 안 읽는데 다치바나씨의 책이라면 믿음이 갔다.
본인이 방광암에 걸려 수술을 한 후에 쓴 책이라 더욱 진정성이 느껴진다.
사실 나는 학교에서 암에 관해 배우기도 했지만 일상에서 흔히 접하지 않아서인지 큰 관심은 없었다.
그저 막연히 유전자 이상으로 걸리는 병이겠거니 생각해 왔다.
그런데 할머니와 엄마가 연달아 폐암과 위암에 걸리고 보니, 더군다나 할머니가 항암 치료를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로 갈등에 휩싸이게 되고 보니 암이 얼마나 심각하고 무서운 병인지 마음에 확 와 닿았다.
다치바나씨와 가까웠던 저널리스트가 폐암으로 죽었기 때문에 책에 폐암에 대한 내용이 자세히 나온다.
폐암이라면 담배 피우는 사람이나 생기는 병인 줄 알았는데 할머니는 평생 술 담배는 입에 댄 적도 없는 분이라 진단이 나왔을 때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미 양쪽 폐에 큰 덩어리가 발견되어 뇌나 다른 부위에 전이는 안 됐지만 수술은 불가능할 뿐더러, 할머니는 소세소성암이었기 때문에 항암 치료 밖에 없다고 했다.
그 때 할머니 연세가 만으로 85세.
만약 다른 사람이 그 나이에 폐암에 걸렸다고 한다면 살 만큼 살았으니 크게 억울할 것은 없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내 가족이 당하고 보니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었고 편안히 죽겠다는 할머니의 의지를 강력하게 꺾고 본인으 반대에도 불구하고 항암 치료를 시작했다.
치료가 시작되기 전에는 기침이 너무 심해 잠을 들 수가 없을 정도였는데 치료를 시작한 후부터는 기침도 줄고 호전되는 느낌이 들어 희망을 갖게 됐다.
주치의 말로는 치료를 하지 않으면 2~3개월 안에 돌아가시고 치료를 하면 2~3년 정도 더 사실 수 있다고 해서 그 말에 희망을 가졌던 것 같다.
그러나 결국 할머니는 잠깐 좋아지는 것 같더니 치료를 시작한지 8개월 만에 돌아가셨다.
나는 의사이면서도 할머니의 병세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내가 원하는 쪽으로 해석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어리석은 기대였던지...
이 책에 보면 항암제가 절대 근치 요법이 될 수 없음이 잘 설명되어 있다.
소아 백혈병 같은 경우는 예외겠지만 대체적으로 암은 완벽하게 나을 수 없다고 한다.
왜냐면 그것은 유전자의 문제이기 때문에 나이가 들면 세포 분열시 DNA 복제시 오류가 축적되어 변이가 생기는 암은, 다세포 생물의 숙명이라고 했다.
즉 나이가 들면 암 발생 확률은 당연히 올라 갈 수 밖에 없다.
그런데 할머니가 건강 검진을 했을 때 내과 의사가, 지금까지 암에 걸리지 않고 잘 살아 왔으면 이 연세에 암에 걸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했는데 대체 무슨 의미로 했던 말일까?
암이야 말로 젊어서는 생기기가 어렵고 나이가 들수록 생길 가능성이 높은 질환인데 말이다.
근치가 어렵다면 연명 치료에 불과한 항암제에 매달리기 보다는 고통을 완화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임종을 준비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는 말에도 동의한다.
현대의학이 이런 부분들을 소홀히 하기 때문에 대체요법이 들어설 여지를 주는 것 같다.
암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등에 대해 쉽고 비교적 정확하게 설명한 책이다.
더불어 나 역시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의학과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인데도 관심을 가진 후 책을 보면서 연구해 이렇게 훌륭한 저서를 내놓는 걸 보면 다치바나씨의 지적 능력에 감탄할 뿐더러, 지식 획득에 책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왜 그가 문학 대신 과학 등과 같은 논픽션에 가치를 두는지 새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