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녀 혁명 - 아이 없이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
메들린 케인 지음, 이한중 옮김 / 북키앙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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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들을 이기주의자로 몰아 세운다면, 아이를 낳은 사람의 이기심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과연 아이를 낳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국가 발전에 이바지 하고 인류의 영속성을 이어 가려는 고귀한 사명감 때문에 출산을 결정하는 것인가?

사회 구성원을 키워 다음 세대를 안정화 시키는 가정의 노력을 폄훼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무자녀 가정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서는 안 될 것이다

아이를 낳고 안 낳고는 전적으로 개인의 신념과 가치관에 달린 문제이므로 스스로에게 선택권을 줘야만 한다

더불어 여성과 모성애의 관계는 남성과 부성애의 관계 수준으로 좀 떨어뜨릴 필요가 있다

실제로 아이를 낳고 기르는 어머니의 권리는 사회적으로 크게 인정하지 않으면서 (즉 남자의 성씨를 따른다거나 친권이 아버지에게 있는 것 등), 정작 출산과 양육에 따른 의무감은 온통 어머니에게 부과하는 우리 사회의 모순에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생각만큼 혁명적이거나 주장이 강한 책은 아니다

"무자녀 혁명"이라는 책 제목만큼 충격적인 책은 아니다

아마도 저자 자신이 늦은 나이에 출산을 경험한 어머니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더욱 중립적이고 올바른 시각을 제시한다

늦은 나이에 결혼해 아이를 간절히 희망했기 때문에 아이가 주는 기쁨을 충분히 알고 있는 저자는, 가정에서 아이의 역할을 과소평가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무자녀 여성들을 편견없이 바라 보자고 제안한다

이제 무자녀 가정은 동성애 커플처럼 보호받아야 할 소수 세력이 됐다

실제로 2001년 현재 미국 가임기 여성의 53%가 아이를 갖기 않는 상태일 정도로 수적으로 증가했지만, 여전히 그들은 주류가 아니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힐 수가 없는 처지인 것이다

 

저자는 아이가 없는 상태를 세 가지로 분류한다

먼저 스스로 선택한 사람들이다

childless 대신 chuldfree라는 용어를 쓴 저자는 종교적, 환경적, 확신 등으로 다시 나눌 수 있다

종교적인 경우야 수녀들을 떠올리면 되고, 확신에 의한 경우라면 아이를 천성적으로 싫어하는 사람들이 해당된다

그런데 재밌는 건 환경적인 이유를 아이를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다

출산률 저하가 국가 경쟁력을 악화시킨다고 걱정하지만 여전히 전세계적으로 보면 인구는 포화 상태다

아프리카를 생각하면 간단하다

그들은 인구를 줄이는 것이 자원을 보다 많이 나눠 가지는 길이라고 믿는다

환경의 개념이 전 세계적으로 확대된 셈이다

 

확신에 의해 아이를 안 갖는 사람들은 모성 신화와 부딪치게 된다

우리 사회는 모성이 본능임을 끊임없이 강조해 왔다

아이를 원하지 않는 여자는 뭔가 잘못된 거라는 편견이 널리 퍼져 있다

그러나 쥐 실험을 통해 새끼를 키우고자 하는 모성 유전자가 없는 쥐들도 발견된다고 한다

즉 모든 여성이 다 아이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이 이성을 사랑하지만 동성에게서만 애정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듯, 대부분이 자신의 아이를 원하지만 그렇지 않는 소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중요한 건 타고난 정서를 도덕적으로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아이를 못 낳는 불임 여성의 사례들은 눈물겹다

워낙 입양이 활발한 나라라 불임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줄은 미처 몰랐다

3세계 국가에서까지 고아들을 데려다 키우는 사람들이라 불임이면 간단히 입양을 결정하는 분위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들 역시 자기를 닮은 2세에 대한 욕구가 매우 강한 평범한 정서를 가진 사람임을 알게 됐다

불임 시술에 들어가는 엄청난 경제적, 감정적, 시간적 노력들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대부분은 10년 가까이 고통을 맛본 후에야 비로소 포기를 한다

그리고 주변 아이들에게 눈을 돌린다

나는 아이에 대한 욕구가 약한 사람이라 만약 나나 파트너가 불임이라면 담담하게 받아 들일 것 같다

그렇지만 실제로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이 함부로 얘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입양도 활발하고 대를 잇는다는 생각이 약한 미국에서도 불임 부부의 고통이 이 정도라면, 불임 정도가 아니라 아들 못 낳는 것을 칠거지악의 으뜸으로 여기던 우리 나라는 어떨지 알 만 하다

아들을 못 낳아도 쫒겨 날 판인데, 아예 임신 자체를 못한다면 그녀는 정상적인 여자로 간주되지 못할 것이다

혈통의 순수함을 강조해 입양을 매우 꺼리는 (그래서 고아 수출국이 된) 우리 정서상 불임으로 판정나면 다른 대안 없이 상실감 속에서 평생을 보내야 할 가능성이 크다

 

요즘은 어쩌다 보니 무자녀의 길을 선택한 사람들도 늘고 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사회적 성취를 위해 출산을 늦추다 보니 임신하기 힘들어 지는 경우가 많다

경제적 이유 때문에 출산을 미루는 경우도 있다

요즘은 DINK 족이 늘어 양육에 드는 비용을 스스로에게 투자하고자 한다

 

무자녀 가정에는 이처럼 많은 사연이 숨겨져 있다

단순히 그들을 이기적이다고 몰아 세울 수 없다

오히려 아무 준비 없이 부모가 된 후 아이들을 팽개쳐 두는 것 보다는, 과연 내가 부모 노릇을 하기에 적합한가를 먼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사회는 점점 다양해지고 구성원들의 욕구를 가능한 많이 수용하는 쪽으로 흐르는 것 같다

과거와 같은 획일적인 잣대로 무자녀 가정의 이기주의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마치 인종차별이나 남녀차별 등과도 비슷한 문제다

각자의 선택을 존중해 줄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는 바다

좀 더 많은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성숙해졌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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