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혁명
존 로빈스 지음, 안의정 옮김 / 시공사 / 200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런 책을 접할 때마다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가 없다

패러다임의 변화는 늘 가치관의 혼란을 불러 일으킨다

웰빙 열풍이 불면서 운동을 중요시 하고 유기농 야채를 먹는 채식주의자가 되야 한다는 주장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여기에 한 발 더 나아가 육식이 건강을 망칠 것이라는 극단적인 주장까지도 자연스럽게 통용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심지어 육식이 지구를 멸망시킬 것이라고 경고한다

정말 그럴까?

 

차를 타는 대신 가까운 거리는 걷고, 칼로리가 높은 패스트 푸드 섭취를 줄이는 대신 야채를 많이 먹으라는 기본적인 명제는 동의한다

사실 우리는 지나치게 편하고 풍족해진 탓에 생명에 위협을 받고 있다

사무직에 종사하는 오너 드라이버라면 주차장에서 사무실까지의 거리 외에는 거의 걷지 않을 것이다

대신 맥도널드나 T.G.I.F. 같은 패밀리 레스토랑을 즐기는 신세대라면 그는 틀림없이 넘쳐 나는 칼로리를 배나 허리에 저장하고 다닐 것이다

요즘처럼 음식이 넘쳐 나는 시대에 적정 체중을 유지하면서 건강을 지키는 유일한 길은, 전통적인 식단으로 돌아가는 길 뿐이라고 생각한다

식욕을 억제하지 않고도 살이 찌지 않기 위해서는 채식을 즐길 수 밖에 없다

또 자동차를 멀리 하고 가까운 거리는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하는 것이 현명하다

굳이 수십만원을 피트니스 클럽에 갖다 바치지 않아도, 자동차가 주는 편안함을 포기한다면 얼마든지 날씬한 체형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기본적인 전제들에는 동의하지만, 그 이상의 논의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어쩌면 아직까지 내 가치관 정립이 안 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환경을 살리고 동물들을 인도주의적으로 대하기 위해서 채식주의자가 되라고 외치는데, 환경주의자가 곧 채식주의자인가에 대한 확신이 없다

또 유전자 변형 식물에 대한 강한 불신을 드러내지만, 그의 주장들을 모두 받아 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쨌든 인류가 기아로부터 벗어난 가장 큰 이유는 화학 비료와 품종 개량 덕이 아닌가?

전체적인 이익 대신 부분에 집착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과연 저자의 주장대로 모든 곡물에 유기농 기법을 도입하고 자연 그대로에 맡겨 둔다면 요즘 같은 생산량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 우유와 달걀의 폐해를 주장하는 대목에서도 강한 거부감이 들었다

완전한 채식주의자라는 신념에 따라 안 먹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이 식품 자체가 우리 몸에 피해를 준다는 식의 극단적인 주장은 도저히 수용할 수가 없다

우유나 달걀은 영양학적으로 완전 식품에 가깝다고 여겨져 왔다

그런데 단순히 이것이 낙농업자들의 로비 탓이었다는 식으로 넘길 수 있는 문제인가?

기존의 학설을 뒤엎으려면 보다 분명하고 확실한 근거와 많은 자료들을 제시해야 하는데, 저자는 그저 관념에 의존해 몇몇 사례들을 나열하고 있을 뿐이다

칼슘 섭취가 적은 사람이 오히려 골절 위험이 낮다는 도표에서는 솔직히 할 말을 잃었다

저자가 정말로 이런 주장을 독자에게 납득시키고자 한다면 이 조사가 얼마나 많은 표본 집단을 대상으로 했는지, 변수 통제는 어떻게 했는지, 가설과 결론에 어느 정도의 상관 관계가 있는지 등 수많은 고려 사항들을 다 언급해야 할 것이다

즉 학술적인 책임감이 뒤따라야 한다는 얘기다

 

가축들의 끔찍한 사육 환경에 대한 성토는 깊이 공감한다

흔히 서양인들은 우리나라의 보신 문화를 경멸하는데, 만약 개를 가축에 포함시킨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들 역시 가축에 대해서는 끔찍할 정도로 잔인하게 대한다

소나 돼지는 잡아 먹으면서 왜 개는 안 되냐는 주장은, 개를 가축의 범위에 넣는다면 문화적 상대성으로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

브릿지 바르도가 채식주의자라면 그녀의 비판은 일관성이 있다

만약 그녀가 육식을 하면서 한국의 보신 문화를 야만적이라고 비판한다면, 그녀는 자기 모순에 빠진 셈이다

 

동물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걸 보면 확실히 도덕 관념은 진보하는 것 같다

백년 전만 해도 버젓이 노예제가 시행됐는데 이제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평등하다는 개념을 당연시 하고, 수천년 동안 약자였던 여성에게도 남성과 똑같은 투표권을 준다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대명제가 받아들여지자, 이제는 그 개념을 동물에게까지 확장시킨다

어쩌면 이 세기가 끝나기 전에 동물들 역시 인간에 준하는, 생명의 존엄성을 존중받을 날이 올지도 모른다

육식을 즐기는 사람에게도 가축 사육의 열악한 환경은 분노할만 하다

언젠가 한 박물관 앞에서 자연 체험의 일부로 곰 두 마리를 우리에 가둬 놓은 걸 본 적이 있다

아직 새끼인데도 우리가 비좁아 보이는데, 과연 저들이 자라게 되면 얼마나 끔찍할지 상상이 갔다

동물 학대라고 분노했는데, 가축이라고 해서 다를 건 없다

저자가 자세히 기술한 축사 환경은 말 그대로 움쩍달싹도 할 수 없는 최소한의 공간이다

닭 같은 겨우 수백마리를 한 우리에 집어 넣으면 날개를 못 펴는 건 물론이고 스트레스를 받아 서로를 쪼게 되므로, 심지어 부리까지 잘라 버린다고 한다

송아지는 부드러운 육질을 위해 운동을 못하도록 체인을 감아 놓는다

돼지들이 좁은 축사에서 배설물과 한 덩어리가 되야 함은 물론이고 너무 좁은 나머지 서로의 꼬리를 물기 때문에 단미까지 한다고 한다

 

체중 증가를 위해 지나치게 사료를 먹이고 운동을 못하게 하므로 대부분의 가축들은 심장병에 걸린다

이들에게 먹이는 항생제가 사람에게 축적됨은 물론이다

도살할 때 전기봉을 쓰는데 한 번에 죽지 않는 경우는 숨이 붙어 있는 상태로 가죽을 벗기고 사지를 절단한다

돼지 같은 경우는 항문에 쇠꼬챙이를 집어 넣어 던진다고 한다

사진까지 실린 설명들을 읽으며 우리가 단지 그들을 먹는다는 이유만으로 생명의 존엄성을 이런 식으로 훼손시켜도 되는지 부끄러워졌다

이미 유럽에서는 공장식 축산제가 금지되어 좁은 우리에 가두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제하고, 죽지 않은 상태에서 도살하는 것도 금지됐다고 한다

그들이 외치는 동물 보호가 단순한 구호에 불과하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야생 동물만 보호되야 하는 게 아니라, 가축들 역시 최소한의 존엄성을 유지하고 살 권리가 있다는 얘기다

 

개를 먹는 것은 분노하면서 왜 돼지나 소, 닭등이 끔찍한 환경에서 사육되는 것에는 무심하냐는 저자의 비판에 깊이 공감하는 바다

사실 나도 우리의 보신 문화를 혐오하긴 했지만, 가축들이 그런 환경에서 사육되고 도살되는지는 미처 몰랐다

저자는 고기 먹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밝힌다

그가 비판하는 것은 목축업자들과 맥도널드 같은 자본가다

가축에게 최소한의 환경도 제공하지 않은 채 광고의 이미지를 이용해 돈을 버는 그들의 뻔뻔함을 비난한다

저자 같은 환경주의자들이 힘을 합친 덕에 맥도널드는 닭에게 좀 더 넓은 평수의 계사를 제공하기로 했다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다

사실 내가 패스트푸드를 안 먹는 까닭은 지나친 칼로리 과잉 때문이었다

정크 푸드라는 명칭답게 영양소는 적으면서 칼로리는 많은 햄버거 등이 콜레스테롤을 높히는 등 몸에 좋은 게 없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음식의 영양학적 가치를 떠나 이렇게 끔찍한 환경에서 기른 가축으로 햄버거를 만든다면, 윤리적인 측면에서도 불매 운동을 벌일 만 하다

이제 맥도널드 같은 패스트 푸드 기업들은 가축에게 좀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해야 살아 남을 수 있을 것이다

소비자들이 생명의 존엄성에 눈을 떴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문제는 남는다

가축들의 고통에 공감을 느낀다면, 햄버거 뿐 아니라 계란과 우유 등도 먹지 않아야 할 것이다

가축 그 자체를 먹는 건 아니지만, 역시 우유와 달걀을 얻기 위해 소와 닭 등은 좁은 우리에서 고달픈 삶을 살아야 한다

양식장에서 항생제로 길러지는 생선은 또 어쩌란 말인가?

결국 동물들이 갖는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저자처럼 완전한 채식주의자, 즉 배전이 되야 한다는 결론이 난다

음식에 대한 욕구를 떠나서 동물성 단백질을 전혀 섭취하지 않는 게 과연 저자의 주장처럼 오히려 건강에 이롭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심지어 저자는 꿀도 벌을 가둬 키워 얻는 것이라고 제한을 두려 하는데, 참 난감하다

(다행히 난 꿀은 싫어한다)

먹이 사슬이라는 자연의 법칙 면에서 봐도 우리가 육식을 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부당한 일은 아니다

다만 그들의 존엄성을 지켜 주면서 생태계가 파괴되지 않을 정도의 도덕적 의무를 병행하는 게 중요할 것이다

신이 인간에게 동물을 다스릴 권한을 줬다고 하지만, 그들을 마음대로 짓밟고 멸종시키라고 한 것은 아니라는 저자의 지적에 공감한다

 

나는 완전한 채식주의자는 될 수 없고, 또 도덕적으로나 환경적으로도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범위를 좀 더 확장시켜 동물에게, 또 가축에게도 적용될 수 있기를 바란다

보다 생태적인 사육 환경을 제공하고 (영국이나 스웨덴처럼 공장식 축사를 금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도살할 때도 최소한의 고통으로 끝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는 바다

더불어 맥도널드로 대표되는 축산 자본 역시 환경과 가축들을 위해 보다 많은 기여를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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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머슴 2005-12-03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유와 달걀의 폐해를 주장하는 대목에서도 강한 거부감이 들었다-
-칼슘 섭취가 적은 사람이 오히려 골절 위험이 낮다는 도표에서는 솔직히 할 말을 잃었다-
-동물성 단백질을 전혀 섭취하지 않는 게 과연 저자의 주장처럼 오히려 건강에 이롭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선생이 지적하신 이 3가지는 부연설명이 빠졌지만 사실입니다. 이 부분은 선생께서 무지하시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marine 2005-12-03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로운 패러다임을 도입할 때는 기존의 학설을 뒤집을 수 있는 결정적이고 과학적인 근거가 필요합니다 현재 의학책에서는 위의 세 가지 주장을 그르다고 봅니다 댓글 쓰신 분께서 기존의 학설을 부정하시려면, 기존 학자들을 납득시킬 수 있는 정확한 근거를 대는 게 먼저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