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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행복한 중독 - 아이다에서 서푼짜리 오페라까지
이용숙 지음 / 예담 / 2003년 9월
평점 :
품절
일단 분량으로 사람을 압도하는 책이다
오페라 입문서로서는 부담스러운 500페이지 짜리 책이라 선뜻 손이 안 간다
그렇지만 전체적인 내용은 아주 평이하고 (사실 그래서 좀 불만이다), 삽입된 많은 사진들이 올 컬러라 보는 즐거움이 있다
또 100편의 오페라를 소개한다는 야심찬 계획으로 출판된 책이라, 새로운 오페라를 알아 가는 즐거움이 있다
실제로 유명 오페라 공연을 본 적은 없다
학교 다닐 때 우리나라 극단이 연출하는 몇몇 오페라를 본 적은 있지만, 특별한 감동은 없었다
오히려 높게만 질러 대는 성악가들의 음색이 귀에 거슬린다고 느꼈을 정도다
연극에서도 느낀 거지만, 영화와는 다르게 비현실적이고 과장된 전개가 선뜻 호감이 안 가는 장르였다
다시 오페라에 관심을 가진 까닭은, 예술의 세계에 대해 새롭게 눈뜬 것도 있지만, TV 매체의 힘이 크다
장예모가 연출하는 투란도트의 특별석 가격이 100만원인데, 일본인 관광객이 싹쓰리 했다는 식의 선정성 보도들 때문에 약간의 동경이 생겼다
대체 얼마나 훌륭한 무대인데 한 장에 100만원 씩이나 주고 가는 걸까?
문화적 허영심이 불쑥 솟아오르는 기분이었다
조수미나 신영옥 등의 활약상을 소개하는 월간 "객석"을 읽으면서 그녀들이 출연하는 오페라의 이름을 주어 듣기도 했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는 기사는, 조수미가 밤의 여왕으로 출연했던 "마술피리"에 관한 내용이었다
신영옥은 "리골레토"의 질다 역에 자주 캐스팅 된다는 기사도 기억이 난다
그 외에 "나비 부인"이라던가, "아이다" 같은 오페라는 음악 시간에 비디오로 감상했다
그러니까 어디서 주어 들은 건 꽤 있었던 셈이다
예술의 세계란 아는 만큼 느낄 수 있다는 말을 충실히 따르기 위해 오페라 입문서를 집어 들었다
집에 모셔다 놓은 클래식 CD 100 장 모음집 같은 엄청난 분량의 음악들을 선택하는 기준이 필요하기도 했다
뭘 좀 알아야 제대로 들릴 게 아닌가?
저자의 말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흔히 공연되는 오페라는 대략 2-30편인데, 실제로는 500 여편의 오페라가 공연된다고 한다
확실히 오페라는 서구 문화이고, 우리에게는 아직 대중적이지 않는 모양이다
저자는 100편의 오페라를 소개했는데, 다양한 오페라를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다만 워낙 많은 내용을 한꺼번에 소개하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내용은 부실하다
다음에는 좀 더 자세한 해설이 들어간 책을 읽어 봐야겠다
오페라는 연극과 달리 노래를 최우선으로 하는 장르인지라 줄거리가 황당무계한 것이 많다
비현실적이고 단조롭고 엉뚱한 내용들이 자주 등장한다
모짜르트의 "마술피리"는 자라스트로가 데리고 가 버린 딸을 밤의 여왕이 찾는 내용이고, "사랑의 묘약"은 사랑에 빠지는 약을 파는 약장수 이야기다
"카르멘"은 집시 이야기고, "후궁 탈출"은 터키로 끌려 간 연인을 찾아 오는 내용이다
줄거리가 간단하고 비슷한 게 많아 100편이나 되는 오페라를 한꺼번에 읽다 보니, 그 내용이 그것인 듯한 착각이 생긴다
솔직히 제대로 구분을 못하겠다
아무래도 CD로 음악을 듣고, 직접 오페라 공연장을 찾아 가야 할 모양이다
인상적인 내용은 오페라가 18-19세기에 대중 매체의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다
오페라라고 하면, 클래식 음악과 더불어 대중 문화와 구별되는 고급 문화로 인식되는데, 과거에는 서민들의 오락거리였던 모양이다
지겹도록 먹고, 뒹굴뒹굴 놀다가 더 이상 할 게 없으면 오페라 극장으로 간다는 괴테의 말이 당시 오페라의 현실을 잘 보여 준다
그러므로 오페라 작곡가들 역시 가능하면 대중의 취향에 맞춰 원전을 재밌게 각색하기 위해 애를 썼다고 한다
오페라의 대가 푸치니의 경우, 유행의 최첨단을 달리는 사람이라, 대중의 속성을 금방 파악하고 최고의 지위를 누릴 수 있었다
TV나 출판물이 없던 시절, 돈을 가진 부르주아 시민들이 특별한 오락거리를 갖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귀족들은 사냥을 최고의 오락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어찌 보면 오페라는 경제력과 함께 성장한 부르주아 시민들 덕택에 성장한 장르라고 할 수도 있다
바그너는 척박한 독일 오페라계의 혜성과 같은 존재였다
이탈리아 오페라에 눌려 있던 독일 오페라는 바그너의 등장으로 단번에 중심지로 떠오를 수 있었다
바그너라면 니체와 정신적 교류를 하고, 히틀러를 찬양한 사람이라고 기억하는데 반유태주의자에다 민족주의자이긴 했지만 오페라사에는 엄청난 영향을 끼친 모양이다
흔히 알려진 것만 해도 "니벨룽의 반지". "탄호이저", "트리스탄과 이졸데" 등이 있다
베르디나 푸치니, 모짜르트 등도 우리 귀에 익숙한 많은 오페라들을 만들었다
반면 유명한 베토벤은 "피델리오" 단 한 편을 남겼을 뿐이다
그는 오페라를 수준 낮은 장르로 인식했다고 한다
풍부한 성량과 기교를 요하는 장르이기 때문에 유명 성악가들이 계속 겹치기 출연을 하는지라, 식상한 면이 없지 않다고 한다
특히 연기적 요소보다는 음악성을 우선시 하므로 20대 주인공 역을 50대의 뚱뚱한 성악가가 맡는 경우도 흔한지라 (루치아노 파바로티처럼), 오페라를 처음 접하는 관객은 몰입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저자는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우리나라 극단이 연출하는 오페라를 먼저 관람하라고 권한다
특히 학생들이 공연하는 작품들은 실제 극 내용과 비슷한 또래들이라 연극적인 요소가 훨씬 풍부하다는 것이다
문화적 허영심 떄문에 값비싼 오페라 좌석표를 들고 앉아서 졸기 보다는, 영화 한 편 보는 기분으로 젊은 극단의 오페라 공연을 찾는 것이 훨씬 문화적이교 교양있는 행동 같다
예술이란 우리 생각보다 훨씬 가볍고 가까이 있는 건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가 찾아 보려고 애쓰지 않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