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위한 과학
토머스 루이스 외 지음, 김한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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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얼마 전 감동하면서 읽은 스티븐 핑커의 "빈 서판"과 완전히 대립되는 책이다

정 반대의 주장이군, 이렇게 생각했는데 맨 뒤의 각주를 보니 아예 그의 책에 나오는 이론들을 인용하면서 잘못됐다는 코멘트를 달았다

우정이나 예술, 사랑 등의 가치를 단순한 화학 작용, 혹은 권력 관계 등으로 파악한 핑커의 진화 심리학은 변연계의 진정한 기능인 감정과 애착을 무시한 잘못된 이론이라는 것이다

어떤 것을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다

그렇지만 단 하나의 주장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만큼 우리의 뇌나 정신 세계가 단순하지 않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세 명의 정신과 의사이자 교수들이 쓴 이 책은 변연계의 기능에 주목한다

흔히 연수는 생명 현상에 관계된 일을 하고, 대뇌 신피질은 추상적 사고에 작용하며, 변연계는 감정을 담당한다고 알려졌다

저자들은 포유류에게만 변연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즉 새나 물고기, 악어 등은 부모 자식간의 애착 관계가 없고,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것의 진위는 동물학자들에게 물어 봐야 할 것 같다)

그에 비해 포유류는 변연계가 있기 때문에 감정을 느낄 수 있고 애착 관계도 형성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개와 주인의 관계다

보신탕을 먹는 사람들은 잡아 먹기 위한 가축으로서 개를 키운다고 하지만, 보편적으로 개나 고양이 등을 기르는 까닭은 정을 주고 받기 위해서다

그래서 개나 고양이를 가축이 아닌, 애완 동물이나 반려 동물이라는 용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개와 사람의 애착 관계를 잘 설명해 주는 예가 있다

개에게 공을 던지면 금방 물어 오고 주인의 손에 뺏으려고 한다

만약 주인이 공을 개에게 줘 버리면 개는 그 공에 대해 별 관심을 갖지 않는다

말하자면 주인과 놀기 위해서 공을 탐내는 것이지, 공 자체를 원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나 역시 개를 키우기 때문에 이런 현상을 자주 경험한다)

즉 개는 사람과 정서를 공유할 감정적인 능력이 있다

 

저자들은 지금까지 사회나 과학이 신피질의 사고 능력에만 관심을 보여 왔으나, 인간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서는 변연계의 감정 능력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부모 자식 간의 애착 관계다

저자들은 아이를 독립적으로 키우기 위해 부모로부터 떼어 놓는 미국의 교육 방식을 통렬하게 비판하는데, 아기를 다른 방에서 재우는 것부터 베이비시터에게 맞기고 직장에 나가는 워킹맘까지 다양한 사례들이 등장한다

사실 부모 자식 간의 감정 교류나 함께 있는 시간의 절대량 따위는 굳이 논증하지 않아도 누구나 공감하는 얘기다

그런데 그 반대의 경우에 대해서도 당위성이 인정되는가는 별개의 문제라고 본다

즉 어머니가 직장에 나가서 아이가 혼자 클 경우, 그 아이가 자라 반드시 애정 결핍의 문제를 갖는가에 누가 그렇다고 100% 자신할 것인가?

또 어머니가 24시간 아이의 양육을 전담한다고 해서, 베이비시터와 자란 아이에 비해 감정적으로 월등히 우월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부모와의 애착을 중요시 하는 건 이해할 수 있으나, 어머니가 직장을 포기하고 아이의 양육을 전담해야 올바르게 자랄 수 있다는 극단적인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수많은 변수들 때문에 절대 그럴 수 없다고 본다) 부모에게 자신의 인생이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어머니란 아이의 양육만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다

스티븐 핑커는 여기에 대해, 유전적 특징과 단독 경험을 강조해 부모의 양육 태도는 큰 영향을 못 미친다고 주장한다

어쨌든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는 과정에는 수많은 변수과 원인 인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한 가지 가설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흔히 자기계발서를 읽으면 자극을 받아 확 달라질 거라고 믿는다

저자들은 왜 이것이 불가능한지를 과학적으로 논증한다

우리의 신경계는 수많은 경험을 통해 특정 방식으로 판단하는 회로가 형성되어 있다

같은 일을 당해도 반응하는 것이 제각각이듯, 어떻게 인지하느냐는 각자의 프로그램에 달려 있다

정신과 의사들이 어렸을 때의 강렬한 경험과 같은 (성폭력이나 왕따 경험 등) 외부 인자를 찾기 위해 애쓰지만, 실상 중요한 것은 내제적인 가치라고 한다

그것은 너무나 오랫동안 정교하게 다듬어진 프로그램이라, 본인 스스로도 인지하기 어려울 뿐더러 (마치 공기의 존재를 모르고 살듯) 정신과 의사의 몇 시간 진료 따위로 쉽게 바뀔 수 없는 문제임을 지적한다

그러므로 진정한 심리 치료를 하려면 적어도 몇 년의 세월이 필요한데 (즉 내제적 가치를 바꾸려면) 보험회사들은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탄한다

또 의사나 환자 역시 그것들이 단 몇 번의 치료로 해결될 거라는 환상을 버리라고 한다

이 지적에는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수십년 동안 외부의 사건을 인지하고 판단해 온 문제 해결 시스템이 일순간의 충고나 치료 따위로 바뀔 수 있다면, 저자의 말처럼 처음부터 병이라 진단하지도 않을 것이다

인지 시스템을 바꾸려면 장기간의 끈질긴 노력이 필요하다

어쩌면 그것은 삶의 근간을 뒤흔드는 끔찍한 사건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뉴런은 끊임없이 반복하면 경로를 바꿀 수 있는 가변적인 것이라고 희망을 준다

(앤서니 라빈스의 책들은, 그런 의미에서 다른 자기계발서 보다 훨씬 훌륭하다 그는 끊임없는 반복을 통한 신경회로의 변화를 제안한다)

 

번역은 "사랑을 위한 과학"이라고 멋지게 했지만, 원제목인 "A General Theory of Love"가 훨씬 잘 어울린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이란, 연애와 다른 개념이다

흔히 남녀간의 순간적인 연애 감정을 사랑이라 착각하기 쉬운데, 저자들이 말하는 love란 오랜 시간의 감정 교류를 통해 서로에게 상호작용 할 수 있는 attachment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남녀 관계에 국한되지 않고, 부모 자식간, 친구간 등 다양한 범위로 확대될 수 있다

회사에 애착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아주 어리석은 짓인데, 인간과 달리 회사는 감정을 갖지 않는다

그러므로 아무리 자신을 희생해 가며 일을 해도 어느 순간 해고할 수 있다

스타를 동경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그를 사랑하고 동경해도 브라운관의 스타와는 어떤 애착 관계도 형성할 수 없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나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다

 

저자들의 인간 중심주의에 상당 부분 동의한다

특히 환자를 질병 중심으로 볼 게 아니라, 애착 관계를 먼저 형성하라는 충고는 무척 유용하다

(대체 의학이나 민간 요법 등이 효과의 검증 여부와 상관없이 특정 위치를 점하는 것도, 환자 중심적 자세 때문이라고 한다 플라시보 효과도 이런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 돈이나 명예 등 외부적인 가치보다 가족간의 사랑, 친구간의 우정,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 등 내적인 가치에 중심을 두라는 말도 깊이 공감하는 바다

그렇지만 모든 것을 이 관점으로 볼 수는 없다

스티븐 핑커가 지적하듯, 우리의 유전자는 도덕적으로 무장하지 않았으므로 바람직한 방향이 반드시 인간의 본성에 적합한 것은 아니다

결국 상황에 맞는 취사 선택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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