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의 기술 1 로버트 그린의 권력술 시리즈 3
로버트 그린 지음, 강미경 옮김 / 이마고 / 2002년 8월
평점 :
품절


제목이 멋있어서 읽고 싶던 책인데, 막상 고르고 보니 분량이 만만치 않다

700페이지 남짓 되는 분량이라 (미국 책들은 대체적으로 엄청난 분량을 자랑한다 힐러리 자서전도 분량이 너무 많아 두 권으로 분책했다고 한다) 며칠에 걸쳐 나눠 읽었다

다행히 쉬운 내용이라 술술 읽을 수 있었다

 

이성을 유혹하는 연애 서적은 자기 계발서와 더불어 널리 퍼져 있다

이 책이 그런 뻔한 내용을 담았다면 700페이지 씩이나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상투적인 말도 있지만, 풍부한 역사적 문학적 예화들과 인간의 심리 분석이 돋보이는 책이다

그렇지만 솔직히 훌륭한 책은 아니다

 

저자의 주장대로 현대 사회는 이성만을 유혹하는 게 아니다

유혹은 도처에 널려 있다

특히 매스미디어에 의한 광고가 일반화 되고, 선거를 통한 대중 정치로 바뀌면서 우리는 끊임없이 유혹을 당하고, 또 남을 유혹해야 한다

유혹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느낀다면 요즘 유행하는 "설득"이라는 단어로 대치할 수 있다

"유혹의 기술"을 다른 말로 바꾸면 "설득의 심리학"이 될 것 같다

저자는 함께 사는 사회에서 효과적이고 바람직한 인간 관계를 맺기 위해서라도 유혹의 기술을 익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얼마 전에 읽은 "이미지와 환상"에 완전히 대치되는 책이다

부어스틴은 이미지에 현혹되지 말고 실체를 간파하라 충고하는데,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을 이미지로 둘러싸 상대가 나의 실체를 보지 못하도록 감추라고 말한다

사회적 현상, 즉 정치라든가 매스 미디어에서는 부어스틴의 말을 참고하고, 개인적인 관계에서는 이 책을 참조하는 게 현명할 것 같다

 

여러 가지 유혹의 전략, 혹은 인간의 심리에 대해 설명하지만 기본 조건은 본인이 매력적이어야 할 것이다

또 매력의 가장 큰 부분은 외모다

현대 사회가 외모 지상주의라 걱정하지만, 비단 오늘날의 문제는 아님을 보여 준다

다만 과거에는 남자가 지닌 권력을 나눠 갖기 위해 여자에게만 중요했던 외모가, 이제는 남녀 모두에게 중요해졌다는 게 차이다

날씬한 몸매와 아름다운 외모는 지적 수준과 더불어 개인의 가치를 높히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물론 경제적인 능력이야 두 번 언급할 필요조차 없는 기본 조건이다

 

유혹의 기술들을 살펴 보면, 헤어질 때는 과감하게 이별을 고하든가 아니면 상대가 집착하는 것 이상으로 매달리라고 한다

그러면 상대는 금방 질려서 도망갈 거라고 한다

이것은 반대로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여 준다

사랑을 지키고 싶다면 집착이나 소유욕은 절대 금기라는 얘기다

인간이 유혹에 곧잘 넘어가는 이유는 권태 때문이라고 한다

기본적인 생존 욕구가 해결되면 가장 견디기 힘든 감정이 바로 권태감일 것 같다

흔히 배부른 소리라고 하지만 사는 게 재미없고 지겨워지면 하루하루가 끔찍해진다

이 때 짠 하고 나타나 색다른 즐거움을 주면서 유혹하면 대부분은 쉽게 넘어간다고 한다

그러니까 유혹자가 명심해야 할 것은 절대 평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연인 관계가 일상화 되면 곧 관계는 깨지기 쉽다

현실이란 늘 지루하고 따분한 것이므로 또다른 유혹을 기다리는 게 인지상정이다

저자는 관계 지속을 원하면 재유혹 하라고 충고한다

재유혹이란 색다른 환경을 말한다

여행이나 축제 등의 공간적 변화일 수도 있고, 질투를 유발시키는 삼각 관계일 수도 있다

 

루이 15세의 정부였던 퐁파뒤르 부인은 변신의 천재였다고 한다

그녀는 단 한 번도 같은 드레스를 입은 적이 없고, 처소에 온갖 희귀한 물건들을 장식했으며 (중국 도자기나 비단 같은), 나중에는 아예 극장을 지어 매주 새로운 공연을 선보였다고 한다

사냥에 몰두하던 루이 15세가 문화에 관심을 가진 계기가 바로 그녀의 공연이었다고 하니, 왕의 기대감이 얼마나 컸는지 알 만 하다

그야말로 천일 동안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 주면서 왕의 관심을 유지한 셰헤라자데에 비견될만 하다

(퐁파뒤르 부인은 나이가 들자 젊은 여자를 왕에게 공급하는 방식으로 관심을 유지했다고 하니, 권력을 원하는 약한 여자의 가엾은 발버둥 같기도 하다 장녹수 역시 왕에게 제공되는 여자를 직접 고르는 식으로 연산군의 관심을 유지했다)

 

흥미있는 예화는 "위험한 관계"에 등장하는 발몽과 투르벧 부인이다

이 소설은 "조선남녀상열지사-스캔들"이라는 우리 영화로 만들어진 바 있는데, 정숙한 여인이 바람둥이에게 넘어가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바람둥이는 정숙한 여인의 내부에 잠들어 있는 일탈 욕구와 (인간의 본성이라 할 수 있다), 상대를 비참하게 만들고 있다는 죄책감을 이용한다

당신 때문에 괴롭다고 자학적인 모습을 보이면 마음이 약한 정숙한 부인은 자비와 연민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이뤄진 사랑이 과연 행복할 것인가?

"말죽거리 잔혹사"에서도 한가인과 이정진의 사랑이 곧 깨지듯 (이정진은 비오는 날 그녀의 집 앞에서 주먹으로 벽을 내리치는 자학적인 행동으로 사랑을 얻는다) 바람둥이에게 유혹이란 그저 게임 에 불과하다

 

여러가지 전략과 기술들을 서술해 놨지만, 이 책의 미덕을 찾자면 상대의 입장에 서서 그가 뭘 원하는지 들여다 보라는 발상의 전환이 새롭다

윤리 교과서에 나오는 "역지사지"나, "대접받고 싶은 만큼 남을 대접하라"는 성경의 문구가 인간 관계의 황금률임은 익히 알고 있으나, 이 책은 새로운 방식으로 그 진리를 강조한다

인간은 누구나 나르시시즘에 빠져 살기 때문에, 자기 말을 성실하게 들어 주고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 관심을 표명해 주면 상대에게 호감을 느끼기 마련이라고 한다

즉 내 관점에서 보지 말고, 상대의 관점에서 보라고 한다

쉬운 말 같으나, 참 하기 어려운 충고다

진정한 유혹자는 상대의 부족한 부분을 꿰뚫어 채워주기 때문에 상대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반드시 남을 유혹하려는 경우가 아닐지라도, 상대의 입장을 배려해 주는 마음가짐은 모든 인간 관계에 필요한 핵심 상항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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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 2004-12-11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글이었습다..마지막에 '진정한 유혹자는 상대의 부족한 부분을 꿰뚫어 채워주기 때문에 상대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이부분이 맘에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