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 인명사전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남주 옮김 / 문학세계사 / 200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정말 독특한 소설이다

아멜리 노통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이렇게 개성있는 소설일 줄은 미처 몰랐다

사실 제목이 대체 뭘 의미하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신경숙의 소설 "풍금이 있던 자리"를 읽은 기분이다

제목과 소설 내용은 전혀 상관관계가 없는데도, 묘한 어울림을 주면서 시선을 끄는 그런 제목 말이다

책 디자인도 꽤나 개성적이다

원래 노통의 소설들은 길이가 짧은 편인데, 이 소설도 200페이지가 채 못되고, 글씨도 커서 동화책 읽듯 금방 읽어버렸다

소설이 짧으면 완성 구조를 갖기 힘든데, 그녀는 명성만큼 재치있는 결말을 낸다

 

가장 내 마음을 끄는 대목은 발레를 향한 플렉트뤼드의 집념이다

클래식 발레가 추구하는 가장 큰 이상이 바로 중력으로부터의 탈출이라는 사실은 놀랍다

저자의 서술처럼 마치 비밀을 캐낸 기분이다

언젠가 발레를 소개하는 책자에서 그녀들은 끊임없이 날기를 원한다는 문장을 접한 적이 있는데, 그 때는 그저 문학적인 표현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발레리나들은 진짜로 날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 혹독한 훈련들은 조금이라도 더 오래 공중에서 떠 있고 싶은 욕구 때문이라고 한다

아멜리의 표현대로 옆으로 길게 늘어 선 보조봉은 그녀들의 횃대다

 

플렉트뤼드를 통해 아멜리는 거식증에 빠지는 심리 구조를 잘 묘사한다

음식에 대한 욕구는 본능인데 대체 어떤 이유로 음식을 거부하고 죽어 가는지, 무척 궁금했다

그런데 플렉트뤼드를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발레리나가 되려면, 즉 공중을 날기 위해서 체중이 적게 나가야 한다는 건 필수 조건이다

발레 학교에서는 성장기 아이들에게 해골이 되라고 강요한다

날씬한 사람은 보통으로 간주되고, 정상인 사람은 뚱뚱한 암소로 비유된다

이런 상황이니 먹는다는 행위에 두려움을 갖는 건 이해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먹고 싶은 본능을 이기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참는 정도다

말하자면 굶는 것이 고통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거식증이 되면 먹는 행위가 오히려 고통이다

 

플렉트뤼드는 훌륭한 발레리나가 되고 싶은 욕망이 너무 강한 나머지, 학교의 규칙을 완전히 내제화 시켜 자발적으로 음식을 거부한다

칼슘 보충을 위해 유일하게 허용된 탈지 요구르트마저 그녀는 거부한다

결국 골다공증에 걸려 어느 날 다리뼈가 부러지고 만다

 

식욕을 이겨낸다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마치 배설의 욕구를 참는 것처럼, 목적을 위해서 음식의 욕구를 이겨 내는 일은 고도의 절제를 요한다

그런데 이루고자 하는 욕구가 너무나 강렬하면 음식 자체를 자발적으로 거부하는 거식증이 되고 만다

오히려 먹는 행위가 고통이 될 정도로 발레에 대한 그녀의 욕구는 절정에 이른다

이 정도라면 생명을 걸었다고 할 만 하다

그녀는 이제 뚱뚱한 사람들을 혐오한다

저 정도로 먹고 어떻게 맑은 정신을 유지하고 사는지, 혹은 저렇게 먹기만 하고 인생의 목표도 없이 사는 사람들을 불쌍하게 여긴다

 

사실 나는 하나의 목표에 집요하게 몰두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아마 대부분 이런 인물을 동경할 것이다

왜냐면 그들은 기본적인 욕구를 이겨내는 사람들이니까

또한 이런 사람들은 그 목표에만 매달리니까 성과도 훌륭한 편이다

그 절제력에 반하고, 다시 그들이 이룬 업적에 존경을 표할 것이다

위인전을 보면 대부분 놀라울 정도의 자기 절제를 통해 인생의 즐거움을 버리고 목표에만 정진하는 얘기들 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고, 사실은 끔찍한 일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플렉트뤼드는 결국 다시는 발레를 할 수 없게 됐지만, 만약 뼈가 부러지지 않았다면 발레리나로서 성공해 평범한 사람들의 감탄과 존경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사실 그녀는 자신의 모든 감정들, 심지어 먹고자 하는 본능마저 메말라 버린 건조한 인간인데 말이다

 

자기 절제가 사실은 자신에 대한 가학이라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절제는 찬탄받아 마땅한 덕목이지만, 하나를 얻으면 또 하나를 잃는 게 인생이다

그 뒤에 숨겨진 끔찍한 노력과 고통들, 그리고 감정의 메마름, 인간 관계의 단절 등도 늘 염두에 두면서 진짜 세상을 사는 이유가 무엇인지 항상 뒤돌아 봐야 할 것이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반전은 (사실 엄격한 의미의 반전도 아니지만) 마지막에 작가 아멜리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자살 직전, 첫사랑을 만나 구제받은 뒤 행복한 삶을 살려던 그녀에게 작가의 표현대로 "아멜리 노통이라는 끔찍한 불행이 찾아온다"

소설에 어떻게 자신을 등장시킬 생각을 했는지, 발상이 놀랍다

아마 그래서 겉표지에 나를 죽인 자의 이야기라고 소개를 한 모양이다

동화같은 이야기라 어떻게 끝을 맺을지 궁금했는데 (솔직히 제대로 결말을 낼 수 있을지 걱정했는데), 뒷통수를 치는 결말을 보여준다

아멜리가 각광받는 이유는 이런 비상투적인 결말 때문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플렉트뤼드의 어머니는 19세에 결혼한 후 아이를 임신하는데, 임신 9개월 무렵 남편의 무능력함에 화가 나 총으로 그를 죽이고 만다

그녀 역시 교도소에서 아이를 낳은 뒤 자살한다

아멜리는 플렉트뤼드에게 뱃속에서부터 살인을 관찰한 살인녀의 딸인 네가, 그동안 살인 충동을 어떻게 이겨왔는지 신기하다고 말한다

그녀는 계속 플렉트뤼드의 무의식 속에 살인 본능이 숨어 있다고 자극하고, 결국 플렉트뤼드 역시 어머니처럼 순간적으로 그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그녀를 죽인다

말하자면 소설 속의 주인공이 작가를 죽인 것이다!!

 

문장이나 구조가 뛰어난 소설은 아니지만, 발상이 신선하다

툭툭 끊는 듯 이어지는 서술 방식도 독특하다

배수아 소설을 보는 느낌도 든다

(그녀 소설보다는 훨씬 재밌다 배수아는 개성적인 듯 하면서도 사실은 아주 상투적인 이야기를 한다)

일단 분량이 짧아 읽기가 편하다

그녀의 기발한 발상들을 좀 더 들여다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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