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여성생활사 자료집 8
김남이 지음 / 보고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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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완전 많이 하고 신간 신청을 했건만...
전혀 재밌지 않다.
순수한 이런 학술적 기획보다는, 전문가들의 보다 자세한 해설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이건 전공자를 위한 책 같다.
한자를 풀어 써서 읽는데 어려움은 없었으나 재미는 별로 없었다.
소득이라면 부인들도 남편의 벼슬에 따라 유인이니 숙부인이니 하는 작위를 받았다는 걸 확인하는 정도?
문중에서 글 잘 쓰는 친척이 여자들의 상을 치룰 때 제문을 썼던 모양이다.
딸의 죽음을 애통해 하기도 하고, 형수나 시집간 조카의 제문을 써 주기도 했다.
천편일률적인 칭찬 일색이라 지루하고 밋밋한 느낌이었다.
한가지 궁금한 것은, 남자들은 이름을 소중히 여겨 임금이나 부모가 아니면 함부로 부르지도 못하고 호나 자 등을 추가로 만들어 썼는데 왜 여자들에게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까?
그만큼 사회적으로 소외되어 남편이나 아들 뒤에 숨어 있어야 하는 존재였기 때문에?
누구누구의 처라고만 나오고 족보에도 딸의 이름 대신 사위의 이름이 오르니, 18세기 조선 여성들의 삶이 서글프다.
문자 배우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오히려 그런 재주를 숨기는 것을 덕으로 아니, 기생 같은 특수 계급이 아니면 시 한 수 짓기도 어려웠을 것 같다.
그런 걸 보면 윤지당이나 허난설헌, 빙허각 이씨 등은 매우 특수한 경우였던 것 같다.
모두 남편이나 남동생 등의 특별한 배려가 있어야 문집 출간이 가능했던 경우다. 

남편이 죽자 바로 따라 죽지 않고 대상까지 다 치룬 후에 굶어 죽은 여인의 이야기가 나와 가슴아팠다.
삶이라는 게 얼마나 절대적인 명제인데 이런 순절 풍습을 여자의 덕목으로 강요했을까?
심지어 영조의 딸이었던 화순옹주마저도 남편 김한신을 따라 굶어 죽은 예가 있다.
왕실의 여인부터 몸소 이 끔찍한 풍습을 정절이라는 이름으로 실천했으니 참으로 불행한 역사가 아닐 수 없다.
또 한 가지 의외의 경우는, 시집을 간 후에 시부모가 있는 상황에서도 친정에 와서 친정 부모를 봉양한 예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경우는 무려 6년 동안 친정에서 지내다 시부모는 살아 생전에 딱 한 번 보고 친정에서 죽은 예도 있었다.
친정 부모가 몸이 아프고 며느리의 봉양을 받을 처지가 아니었긴 하지만, 어쨌든 오늘날의 관점으로 봐도 좀 놀라운 사례다.
반드시 시집살이만 있었던 건 아닌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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