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메를 고쳐매며
이문열 지음 / 문이당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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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은 껄끄러운 작가다

그의 문학적 위상이 이제는 현실 정치판에까지 미쳐 (한나라당 공천 심사 위원으로 위촉될 정도) 대표적인 보수 논객으로 수많은 분열과 논쟁을 일으키고 있다

작가의 정치적 발언은 누가 됐든지, 그 작품을 사랑하는 독자로서는 부담되는 일이다

작품과 작가를 완벽하게 분리하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니까

홍위병 발언이라든지, 반페미니스트적인 논쟁 등으로 칼럼 등에 실리는 그의 발언들을 편하게 대하기 어렵지만, 역시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보여주는 산문집이다

 

이문열은 글을 참 잘 쓰는 작가다

또 그 작품에 깊이가 있으며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 작가라는 걸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수려한 그의 문장들을 읽으면서 문장 자체에 감동할 때가 참 많았다

특히 중편 정도의 분량 밖에 안 되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금방 읽는 게 아까워 한 자 한 자 정성들여 읽었던 기억도 있다

"영웅 일기"라든가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혹은 그의 여러 단편들을 읽으면서 읽는 재미에 푹 빠지곤 했다

"선택"도 반페미니스트적이고 가부장적인 사고 방식으로 논란이 많은 작품이지만 앞부분의 몇몇 구절만 빼면 재밌는 소설이었다고 기억된다

특히 사라져 가는 우리 문화에 대한 (주로 가부장적이고 조상 숭배 얘기지만) 안타까움은 여러 단편들을 통해 잘 그려져 읽을 때마다 마음이 찡하곤 하다

 

이번 그의 산문집은 주로 칼럼에 기고한 얘기들로 구성됐다

현실적인 정치 얘기도 많고 (주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당선자에 대한 비판들) 경박한 인터넷 문화에 대한 비판도 많으며, 반미 감정에 대해서도 어이없어 한다

미국이 물러나면 안보는 어찌 할 것이냐는 식의 전형적인 보수 논리가 주를 이룬다

내 생각과는 다른 부분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감동적으로 글을 읽은 것은 미려하고 아름다운 문장들, 또 문학에 대한 깊은 애정, 그의 풍부한 학식 덕인 것 같다

나는 늘 고전을 읽지 않는 것에 대해 약간의 죄책감을 갖고 있는데, 이문열처럼 고전을 열심히 읽고 감동하는 사람을 보면 기가 죽는다

요즘은 세상에 읽어야 할 책들이 얼마나 많은데, 나는 내 수준에 맞는 책이나 부지런히 읽고, 훌륭한 고전은 직업적으로 읽어야 할 작가들에게나 맡기자는 심정으로 조금 편해지긴 했다

어쨌든 그의 독서 노트 부분을 보면서 다시금 고개가 숙여진다

직업적인 작가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 정도 수준의 책들은 읽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역시 제일 감동적인 글은 산문집의 제목처럼 "신들메를 고쳐매며"라는 부분이었다

처음에 제목만 보고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안 갔는데, 무척 감동스런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

이제 그의 나이는 60을 바라보고 있다

괴테나 톨스토이 등은 말년에 "파우스트"나 "부활" 같은 대작들을 썼지만, 그건 아주 특별한 천재들의 예외라는 것이다

자신이 천재가 아님을 고려하면 글쓰기 수명은 대부분의 직장인들처럼 65세가 정년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고, 그렇다면 글을 쓸 수 있는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자각해야 한다

다작하는 작가라고 알려졌지만,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거장들에 비하면 형편없는 수준임도 알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제는 남은 기간 동안 필생의 역작을 쓰는데 온 역량을 쏟아 부어야 할 때라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이제 햇빛이 얼마 남지 않았고 가야 할 길은 아직 멀다

그 동안 문학 밖의 여러 난잡했던 일들은 잊어 버리고 (보수와 진보 논쟁에 휩싸였던 일) 신들메를 고쳐매고 부지런히 남은 길을 해가 떨어지기 전에 가야 할 때라고 말한다

노년을 바라보는 작가의 결연한 다짐이 그대로 전해져 온다

 

그가 정말 여러 복잡한 논쟁들로부터 벗어나 자신을 문학사에 길이 남게 해 줄 위대한 작품을 쓰게 되길 바란다

여전히 마지막 다짐 후에도 사회 현상에 대한 자신의 보수적인 시각을 드러내는 일과 젊은이들을 훈계하길 게을리 하지 않으나, 어찌 됐든 다른 무엇보다 자신의 말처럼 이제는 문학에만 전념하여 고전으로 남을 소설을 쓰게 되길 바란다

작가도 퍽이나 분노하고 괘씸하게 여긴 책 장례식 같은 사건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음 좋겠다

그들의 취지는 이해하나 소설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어리석은 대중의 무지를 보여 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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