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의 장식그림
국립고궁박물관 엮음 / 국립고궁박물관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굉장히 인상깊게 본 책이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발견한 책인데 이 곳이 아니었다면 아마 모르고 지나갔을 것이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박물관에서 발간되는 도록들은 수준이 상당하다.
그저 학자들의 학설에 그치지 않고 실제 유물들을 보여 주면서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이론을 전개하기 때문에 더욱 신뢰할 수 있고 훌륭한 책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2009년도에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진행된 전시의 도록이다.
도판이 매우 섬세하고 확대된 그림들이 아주 선명해서 직접 전시를 보는 것보다 더 좋을 만큼 훌륭하다. 

지금까지 조선의 건축물은 단청이나 좀 화려할까 그 외의 구조는 밋밋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의 기능을 하는 창호지에도 그림을 붙였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사극에서도 문에 장식을 한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요즘 사극을 보면 한복이나 병풍 등이 매우 화려하게 나오던데 문 장식도 섬세하게 고려해 주면 시각적으로 보기 좋을 것 같다.
온돌 구조다 보니 아무래도 바람을 막기는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바람을 막기 위해 병풍을 치고 문에도 여러 창을 덧대서 방풍 기능을 했다.
밋밋한 흰색 창호지가 아니라 매우 화려하게 그림이 그려진 창호지가 왕실의 문을 장식하고 있으니 격조가 높아 보이고 시각적 즐거움이 상당하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소박하고 절제된 건축미는 사대부의 건축에나 적용되는 것 같고 왕실은 그 시대 최고의 부를 소유한 만큼 정말 화려하고 아름답게 장식을 했던 것 같다.
같이 실린 운현궁의 벽 그림을 보면 왕의 아버지로 10년 동안이나 최고의 권세를 휘둘렀는데도 상당히 소박하고 은은한 느낌을 풍긴다.
반면 대궐을 장식한 벽화나 문짝 그림을 보면 진채화로 사대부가와는 전혀 다른 매우 화려한 느낌을 준다.
특히 창덕궁의 희정당을 장식한 해강 김규진의 부벽화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지난 번 창덕궁에 갔을 때 얼핏 본 것 같기도 한데 벽 윗쪽에 설치된 그림이라 자세히 보질 못했는데 도록으로 하나하나 꼼꼼하게 짚어 보니 정말 뛰어난 그림 같다.
<금강산만물초승경도>로 직접 3개월 간이나 금강산에 답사를 다녀온 후 그렸다고 한다.
겸재 정선의 점잖은 담채화만 보다가 왕실의 화려한 진채화를 보니 느낌이 사뭇 다르다.
확실히 화원들의 화풍은 선비들의 문인화와는 상당히 달랐던 것 같다.
장엄하다고 표현을 해야 하나?
김은호의 <백학도> 나 경훈각에 그려진 이상범의 <삼선관파도> 등도 모두 궁궐 전통의 화려한 진채화로 그려져 왜 순종이 서양식으로 궁을 꾸미면서도 장식화는 화원들의 그림을 원했는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청록산수화라는 명칭답게 초록색 계열을 많이 써서 자연의 푸른 느낌을 잘 표현했다.
조선 화원들의 품격이 느껴지는 그림이라고 해야 할까? 

이런 화려한 궁궐 문화를 생각하면 근대화에 실패해 결국은 식민지로 끝이 나고 만 조선 왕조의 운명이 참으로 안타깝다.
왕실 부활이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에는 반대지만서도 이런 궁궐 문화가 사라져 가는 걸 보면 가끔 왕조의 몰락이 안타깝고 현대에까지 잘 전수됐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쉽다.
특히 급속한 근대화를 거치면서 우리 옛 것들이 대부분 파괴되다 보니 남아 있는 것들이 많지 않아 이제 좀 살만해서 우리 것을 돌아 보려고 해도 한계가 너무 분명해 안타깝기 그지없다.
문화란 부유함과 강대함 속에서 나온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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