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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선과 도자기 길 - 국립중앙박물관 명품선집 18
김영미 지음 / 국립중앙박물관 / 2005년 10월
평점 :
책을 쓴 김영미씨는 중앙박물관의 큐레이터로 그냥 보기에는 평범한 아줌마 같은데, 설명을 찬찬히 잘 하신다.
박물관에서 신안선에 대한 전시회를 여러 번 개최했기 때문에 몇 번 본 적이 있다.
배에 실린 만 점이 넘는 도자기들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는데 마침 도서관에 구비되어 있어 반갑게 읽었다.
잘 알려진대로 신안선은 원나라 시대 중국의 영파 항구를 출발하여 일본으로 가던 중 난파당하여 신안반도에 침몰한 것을, 1975년에 어부의 그물에 걸린 도자기를 보고 그 존재가 세상에 드러났다.
얼마 전에 발견된 태안선은 고려 시대 강진에서 개경으로 가던 도자기 수송배인 반면, 신안선은 원거리 교역을 하던 국제선이고 한국과는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고려청자가 7점 정도 발견됐고 당시 중국과 일본을 오가던 교역 실태를 알 수 있는 엄청난 발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제일 관심이 갔던 건 역시 도자기였다.
전시실에 가 보면 온갖 종류의 도자기들이 여전히 아름다운 빛을 발한다.
고려청자의 청아한 비색과는 다른 불투명하지만 너무나 선명하고 고운 분청색의 도자기들이 자태를 뽐내는데 이것은 용천요의 특징이라고 한다.
저장성 도자기인 용천요는 신안선 도자기의 60%를 차지할 만큼 그 수량이 많다.
막연히 도자기는 청자나 백자만 있는 줄 알았는데 복건성의 건요에서 만들어진 흑유자기나, 강서성의 길주요에서 제작한 백지흑화, 경덕진요의 청백자 등 다양한 종류의 자기가 있었다.
역시 도자기가 처음 시작된 나라이고 땅이 넓다 보니 개성도 정말 다양한 것 같다.
특히 송나라 휘종이 차를 즐겨 마셔 유명해졌다는 건요의 흑유자기는 검정색 잔이라는 독특한 미감을 뽐낸다.
북방자기로 유명했던 하남성의 균요를 모방한 철점요는 자주색을 띈다.
이 균요는 백탁유를 칠해 회색을 띄었다고 한다.
경덕진요에서 많이 생산된 백자나 청백자의 경우, 조선의 백자처럼 맑고 청아한 색이 아니라 유탁청유를 시유하여 투명도가 떨어지고 유층이 두툼해 조선백자와는 또다른 느낌이 난다.
이것은 점요의 상아색을 모방했다고 한다.
길주요의 백지흑화는 흰 바탕에 검은 색으로 그림을 그린 것인데 주로 민간 도자기를 만들었던 하북성의 자주요에서 시작된 수묵화 기법을 응용한 것이라고 한다.
조선 시대 백자에 청색 안료로 그림을 그린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기하학적 도형이 매우 개성적인 느낌을 준다.
우리나라의 고려청자는 남방청자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절강성의 월요에서 건너 온 도공들이 9세기 무렵 정착하면서 전해졌고 12세기에 이르면 고려청자만의 독특한 색인 비색을 얻게 되어 개성있는 미감을 뽐내게 된다.
대체적으로 중국 도자기의 느낌은 고려청자처럼 단아하고 우아하다기 보다는, 매우 화려하고 정교한 느낌을 준다.
도자기가 생활용품으로도 많이 쓰였겠지만 바다를 건너 오는 이런 상품 도자기들은 주로 귀족의 집안을 장식하고 불교 의식을 행하는 의례 용기로 쓰였다.
향로가 특히 많아 당시에 향을 피우고 차를 마시는 다도 문화가 유행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로 치면 향수를 뿌리고 커피를 마시는 모임이라고 할까?
가마쿠라 막부 시절 중국 문화가 대거 유입되면서 일본에서는 자기에 꽃을 꽂아 놓고 감상하는 花會나, 차를 마시는 다도 모임, 와카를 짓는 모임 등이 유행했다고 한다.
그래서 사원에서 뿐 아니라 귀족들의 자기 수요도 엄청났다고 한다.
어찌 보면 무사들이 이런 우아한 취향을 가졌다는 게 약간 의아하긴 한데 서양의 성주나 기사 계급 같은 전쟁을 수행하는 귀족 계층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중국 문물은 수집과 감상의 대상이었던 셈이다.
그 외에 덩이쇠나 자단목, 동전 등의 수입품도 많았지만 책의 범위를 벗어나는 부분이라 간략하게만 설명하고 넘어갔다.
신안선은 14세ㅣ 무렵 중국과 일본의 활발한 교역 상황을 알려 주는 실제적인 자료라는 점에서 가치가 매우 높다.
당시로서는 중국 문화가 최첨단을 달리는 세계적인 문화였을테니 고려나 일본에서 적극적으로 교류를 하고자 했던 사정이 이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