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노가리 - 일본 속의 고대 한국
국립중앙박물관 엮음 / 그라픽네트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정말 의외의 소득이었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도록들을 찾던 중 그냥 무심코 제목에 눈길이 가서 고른 책인데, 청동기 시대의 발전상과 일본과의 교류에 대해 굉장한 지식을 얻게 됐다.
도록을 보면 유물 자체 보다는 뒷쪽에 실린 논고가 굉장한 도움이 된다.
막연히 청동기 하면 벼농사 시작, 이렇게만 생각했고 일본에 청동기와 벼농사를 전해 줬겠지 이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요시노가리라는 마을 유적을 통해 한국과 일본의 청동기 시대에 대한 엄청난 정보들을 얻게 됐다.
깊이가 있는 도록이다.
아쉽게도 이 전시회 역시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도록으로라도 접할 수 있게 되서 기쁘다. 

솔직히 말하면 부여 송국리 유적지가 청동기 유적인줄도 몰랐다.
그냥 막연히 유명한 마을 유적이다라고만 생각했는데 얼마 전에 끝난 중앙박물관의 청동기 시대 마을 재현 전시회에서 비로소 그 존재를 알게 됐다.
부여의 송국리 유적은 청동기 중기를 구분짓는 매우 중요한 유적이고 이 문화가 비로소 일본에 전해져 일본의 청동기 시대인 야요이 문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송국리식 토기라면 청동기 중기를 뜻한다.
알려진 것처럼 빗살무늬 토기하면 신석기 시대이고, 공렬토기와 각문돌대문토기로 대표되는 역삼동 토기와 가락동 토기는 청동기 초기이며, 송국리 토기가 중기, 점토대토기가 후기를 대표한다.
청동기에도 초기, 중기, 후기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막연히 빗살무늬는 신석기, 무문토기는 청동기 이렇게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토기의 변화나 벼농사의 도입을 외부 이주민들의 한반도 전래 때문으로 보고 있다.
이것은 큐레이터와의 대화에서도 학예사들의 설명으로 이해했었던 부분이다.
결국 어떤 지역에서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문화가 시작되려면 외부 유입이라는 필수적인 과정을 겪는 것 같다.
일본 역시 한반도에서 건너 온 이 도래인들에 의해 벼농사가 시작되고 청동기가 제작됐다. 

벼농사, 그 중에서도 밭이 아닌 논에 물을 대로 심는 수도작의 중요성은, 청동기 시대 마을을 탄생시킨 매우 중요한 변화이다.
신석기 시대에 농사가 시작된 이래 밭에 벼를 심기도 했지만 벼농사로 인한 본격적인 농경 사회의 시작은 신석기의 수렵 이주민들이 아닌 청동기 시대의 정착민들부터다.
이 점이 매우 중요하다.
알려진 것처럼 논농사를 지으려면 관개가 필수이고 노동집약적 과정이기 때문에 모여 살아야 한다.
또 목제 농기구를 만들기 위한 석제 도구들의 발달도 필수적이다.
농촌에서 흔히 보는 낫이나 호미 같은 철기 농기구가 나오기까지 정말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소모됐던 것이다.
돌칼은 이삭을 따고 돌낫으로는 벼를 베고, 따비로 땅을 일구었다.
마제석기가 이런 농기구를 만들었다.
벼농사를 지으면서 식량의 잉여 생산과 저장이 가능했기 때문에 송국리 주거지에는 저장 시설이 따로 존재했고 토기도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된다.
이런 잉여 생산물 덕분에 계급이 생기고 취락과 분묘에 위계질서가 생기며, 생산물을 지키기 위해 주거지에 도랑을 파는 환호형 마을이 생겼다.
목책과 망루를 설치하여 공동 수비를 했고, 지배 계층의 위세품을 만들기 위한 전문 장인 집단도 생겨나 공방이 운영되기도 했다.
농경사회의 시작은 말하자면 현재 인류 문화의 기본을 다진 셈이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것 같다. 

기원전 9세기 무렵부터 본격적인 벼농사라고 할 수 있는 송국리형 문화가 시작됐고 기원전 5세기 무렵 낙동강에서 일본 북부 규슈 지방의 사가현으로 한반도인들이 이주해 가서 일본의 청동기 시대인 야요이 문화가 시작됐다.
일명 도래인의 이주를 증명하는 유물로는 세형동검, 중국 동경을 본뜬 소형방제경, 마제석기, 무문토기, 다뉴세문경 등을 들고 있고 이런 유물들이 한 취락에서 한꺼번에 발견됐다는 점을 들어 도래인이 청동기 문화를 이식했다고 보고 있다.
또 일본에서는 중국제 동경이나 소환두철도 같은 위세품들이 발견되는 것으로 봐서 중국 한나라와도 직접적으로 교역했다고 보고 있다. 
재밌는 것은 중국에서는 동경이 진짜로 거울로 쓰인 반면, 그것을 받아들인 한국과 일본에서는 위세품으로 사용됐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동경은 꼭 청동방울 등의 무속품과 같이 발견된다고 한다.
일본 북부의 규슈는 한반도와 가장 가까운 지역으로 문화 전파에 매우 유리했다.
또 사가 평야등의 넓은 농지가 있고 배가 드나들기 좋은 하구가 있어 고대로부터 대륙의 문화가 들어와 내륙 지방으로 전파되는 관문 역할을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역시 일본과 활발하게 교류한 곳이 바로 낙동강 근처의 남서부 지역이다.
김해평야를 중심으로 한 변한 지역의 문화가 일본과 직접적으로 교류했다고 본다.
그 먼 옛날에도 배를 띄워 바다 건너 미지의 땅으로 갔다는 사실이 정말 신기하다.
인간의 이주 욕구는 본능적인 것 같다.
중국 장강 유역에서 시작된 벼농사는 天鳥舟 신앙을 갖는데 이것이 한반도와 일본에도 전해져 공유한다고 한다.
하늘을 숭배하고 새를 인간과 하늘을 잇는 신령한 동물로 보는 것은 익히 알고 있지만 (새모양 토기나 솟대 등을 통해) 배에 대한 신앙은 처음 들었다.
일본의 요시노가리 유적에서는 이 배 모양 의례품들이 다수 등장한다고 한다.
지난 번 큐레이터와의 대화에서 벼농사가 어디서 유래했느냐는 걸로 설왕설래가 있었는데 이 책에 따르면 세가지 신앙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벼농사는 강남 지방에서 이식된 걸로 보는 것 같다.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청동기 시대와 일본과의 교역에 대해 많은 지식을 얻게 된 유익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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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요시노가리 특별전에 대해서...
    from 뿌리아름역사도서관 2010-09-07 03:13 
    일본에서는 이 요시노가리 유적이 굉장히 특별하게 취급받고 있죠.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부여 송국리 유적이나 울산 검단리 유적이 그에 준하는 대우를 받고 있고요.  실제 요시노가리 유적을 가 보면 취락 전체를 복원해놨는데, 대단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복원과정에서 고증의 문제가 걸리겠지만, 그렇게 꾸며놓았다는 것이 일단 대단하거든요.  실제 요시노가리 유적을 가 보지 못한 분들에게 그 특별전은 큰 의미가 있었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