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자항아리 - 조선의 인과 예를 담다
강경남 지음 / 국립중앙박물관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정말 오랜만에 간 박물관.
큐레이터와의 대화에 꼭 참석하고 싶었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올해는 거의 못 갔던 것 같다.
오랜만에 전시실을 둘러 봤더니 많이 바뀌어 있었다.
박물관의 좋은 점은 관람을 한 후 뮤지엄샵에 들러서 이처럼 좋은 도록을 살 수 있다는 것.
가격도 9000원으로 착한 편이고, 내용도 알차다.
도록에 대한 욕심이 많아 가능하면 구매하는 편인데 사진이 많다 보니 대부분 3만원을 호가하기 때문에 선뜻 집어들지 못한다.
그래도 테마전시로 이렇게 싸게 나온 도록이 있으면 가능하면 구매하는 편이다.
이 책도 전시된 유물에 대해 상세하게 해설을 하고 있고 조선의 백자호가 갖는 의의와 역사에 대해 세심하게 알려 준다.
요즘 책값으로 봤을 때 9천원이라는 가격에 비하면 정말 알찬 책.
중앙박물관에서 펴낸 책들은 대체적으로 속이 꽉 차 있다. 

사실 도자기에 대해서는 그동안 관심이 전혀 없었다.
고려청자라는 것도 너무 많이 회자되다 보니 어쩐지 한국 문화하면 고려청자, 이런 식으로 도식화된 느낌이 들어 그다지 눈길이 가질 않았다.
그런데 역시 직접 봐야 그 맛과 멋을 알게 되는 것 같다.
박물관에 들락날락 하면서 옆눈으로 슬쩍 둘러 봤는데 왠걸, 그렇게 멋지고 우아하고 예쁠 수가 없는 거다.
청자는 리움미술관에 있는 작품들이 정말 수준급이었고 백자는 중앙박물관도 훌륭하다.
특히 의궤 같은 데 실려 있는 그림을 보면 자기들이 어떻게 실생활에 쓰였는지 알 수 있어서 더욱 실감이 난다.
작년에 박물관에서 했던 전시회 중, 조선 왕실 잔치를 모형으로 제작한 것이 있었다.
거기서 커다란 용준과 화준에 꽂혀진 종이꽃들을 보면서 그 미의식에 완전히 반해 버렸다.
화려한 용그림과 어울어진 꽃들이 생화 못지않게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책에 보면 왜 조선에서 자기를 그렇게 중요시 했는지 잘 나와 있다.
예의 실천을 중요시 했던 왕실에서는 의례를 통해 그것을 구현하려고 했고, 이 때 꼭 필요한 것이 바로 공예품, 즉 도자기였던 것이다.
제사 때 필요한 청동기 외에도 여러 의식 때 실제적으로 음식과 술을 담고 장식을 하기 위해 자기는 매우 중요한 공예품이었다.
또 우리나라에서는 구리 생산이 적어 청동기 의기 대신 청자로 만들기도 했다고 한다.
5월에 스페인에 가서 톨레도 지역 박물관을 방문했는데 거기에도 도자기가 많아 깜짝 놀랬다.
자기 하면 중국이나 한국인 줄 알았는데 유럽에도 자기 문화가 꽤 발달했다.
그런데 동양의 자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수준이 낮은 편이었다.
그래서 더욱 많이 수입했던 것 같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그렇게 자기 생산을 중요시 했다면 왜 장인들을 대우하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관에서 장인들을 관리하고 관요를 운영했지만 일이 워낙 힘들고 보수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아 결국 19세기 말에 민영화 되고 말았다고 한다.
도공들의 처우를 국가에서 보장해 줬다면 국가 산업으로서 자기가 훨씬 더 생명력을 갖지 않았을까?
편견인지 몰라도 백자는 역시 청화 안료로 그린 것이 제맛인 것 같다.
임진왜란 이후 코발트 안료 구하기가 어려워 철화 안료를 많이 썼는데 맑고 투명한 푸른색을 따라 갈 수가 없다.
차라리 철화 백자보다는 아무 것도 없는 순백자, 달항아리가 더 자기의 맛이 살아 있는 느낌이다.
달항아리의 경우 워낙 지름이 크기 때문에 위아래를 따로 제작해 붙였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완전한 좌우 대칭을 이루지 못했다고 하는데, 국가에서 생산하는 최고의 도자기들인데 비례대칭이 맞지 않는 게 상당히 많아 그 점은 좀 의아하다.
후기로 갈수록 자기의 입구가 높아지는 경향을 보이는데 나는 오히려 초기의 낮은 입구가 더 마음에 든다. 

뒷편에 보면 명기에 대해 나온다.
순장 대신 기물을 넣는 것으로 바뀌면서 명기 셋트도 일종의 도식화가 이루어진 모양이다.
정조와 관련있는 사람들의 명기가 많이 발견되어 흥미롭다.
먼저 정조의 형인 의소세손.
혜경궁 홍씨와 사도세자의 첫 아들인데 겨우 세 살의 나이로 사망했고 의령원에 묻혔다.
한중록을 보면 세손이 죽어 비통하나 다행히 두 번째 아이, 즉 정조를 임신하고 있어 윗전에 덜 민망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정조의 여동생인 청연군주의 명기도 나온다.
68세까지 살았으니 당시로 보면 꽤 장수한 셈.
정조의 첫번째 후궁인 홍국영의 누이동생 원빈 홍씨의 명기도 실렸다.
겨우 열 네 살의 나이로 사망한 불행한 여인이었던 것 같다.
최고의 권력자 오빠 탓인지, 아니면 일찍 죽은 어린 아내에 대한 애닲은 심정 때문인지 조선 왕으로서는 유일하게 정조가 직접 행장도 지어줬다고 한다.
이들 여인들의 명기에는 화장품 등이 들어 있어 흥미롭다.
후대에 발굴되는 이런 유물들이 아니면 역사 속에 묻혔을 인물들인데 발굴을 통해 한 번쯤 되돌아 보니 새삼 의미가 있다. 

정말 재밌게 읽은 책이고 앞으로도 좋은 전시가 있으면 놓치지 않고 가서 감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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