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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왜 바흐를 좋아할까?
차윤정 지음 / 지오북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원하는 방향의 책은 아니었다.
먼저 읽은 <식물의 역사>와는 전문성 면에서 상당히 떨어지고 식물을 주제로 한 일종의 인문 에세이 같다.
처음에는 거부감이 많이 들었다.
저자의 어설픈 사회 비판이나 감수성에 동조하기가 힘들었다.
식물의 생활사에 인간상을 대입하는 것은, 흥미를 유발한다기 보다는 오히려 인간의 관점으로 자연을 보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특히 거부감이 들었던 문장은, 출산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무통분만 등을 시도하는 것을 두고 엄마로서 자격이 있네 없네 따지는 부분이었다.
아마도 저자는 본인이 두 명의 아이를 출산했기 때문에 더 당당하게 그런 말을 할 수도 있겠으나, 역시 임산부인 나로서는 극한의 고통을 느낀다고 해서 여성이 겪는 출산의 신비로움과 가치가 훼손되는 것도 아니고, 무통분만이라는 시술이 말처럼 통증을 완전히 없애 주는 것도 아니다.
약간 다른 맥락이지만, 에이즈가 동성애에 대한 신의 징벌이라는 일부 보수주의자의 주장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하여튼 저자의 감수성과 생각에 쉽게 젖어들지가 않아 처음에는 읽는데 힘들었으나 뒤로 갈수록 예쁜 꽃 사진과 식물의 다양한 생활상을 읽으면서 그런대로 즐거운 독서를 할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움직이지 않는 식물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고 특별히 예쁘다는 생각도 해 본 적이 없다.
그저 장미 정도나 이름을 알까, 구분할 수 있는 식물도 거의 없었다.
그런데 안면도에서 열린 꽃박람회를 다녀온 후 식물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온갖 자태를 뽐내는 화려하기 그지없는 원예작물들을 보면서, 자연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에 완전히 빠져 들었다.
그 뒤로 식물에 대해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됐고 기회가 되면 직접 키워 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왜 사람들이 화분을 가꾸고 수목원에 가고 식물도감을 보는지 알 것 같다.
그저 들꽃이라고만 불리는 야생화들도 정말 아름답다.
이런 꽃의 아름다움은 인간의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을 수분시켜 줄 새와 곤충들을 유혹하기 위해 존재한다.
새는 그렇다 쳐도 곤충이 시각적 미를 느낄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보통 새는 붉은색에 민감하기 때문에 조매화는 붉은 계열의 꽃을 피우고, 곤충은 푸른색에 반응하므로 충매화는 푸른 계열의 꽃을 피운다.
향기로운 냄새도 다 곤충을 유혹하기 위해서인데, 파리가 매개하는 일부 꽃은 역한 냄새가 난다고 한다.
열매도 종자를 퍼뜨려 번식하기 위한 전략의 하나다.
특히 새가 열매를 따 먹을 수 있게 탐스럽고 맛있는 과육을 만들어 내는 덕에 인간이 달고 맛좋은 과일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나무의 생활사 중 가장 신기하는 것은 수십 미터의 높이까지 지하의 물을 펌핑해 올라가는 시스템이다.
햇빛을 독차지 하기 위해 나무는 끝없이 몸을 위로 뻗는데 이 엄청난 몸통을 유지하려면 뿌리도 그만큼 지표면에 넓고 안정적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동력도 없이 어떻게 중력을 거스르고 그 엄청난 높이까지 물과 영양분을 공급하는지, 생각할수록 신기하고 놀랍다.
식물에는 동물에 없는 세포벽이라는 게 있는데, 세포가 죽고 나면 세포막과 벽 사이가 목질 섬유로 채워져 나무의 줄기를 형성한다.
그러므로 키 큰 나무들의 대부분은 실은 죽은 세포인 셈이다.
실제 세포분열을 하는 층은 매우 얇다고 한다.
재밌는 것은, 바나나 나무나 야자 나무 같은 경우는 나무라기 보다는 오히려 풀에 가까운데, 그 까닭은 이들의 줄기가 목질섬유로 채워지지 않고 잎자루로 몸통을 감싸는 풀과 같다는 것이다.
억새풀 같은 경우 잎자루로 줄기를 감싸기 때문에 바람에 잘 흔들리고 안은 텅 비어있다.
식물에 대해 하나씩 알아가니 무척 재밌다.
식물도감을 한 번 볼 생각이다.
이제 밖에 나가면 한 번쯤은 저 식물의 이름이 뭘까 생각해 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