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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그린 그림
배병우 글.사진 / 컬처북스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기대했던 것만큼 만족했던 책은 아니다.
일단 도판 크기가 작아서 약간 실망했다.
나는 아마도 양쪽 페이지를 꽉 채우는 큰 사진을 원했던 것 같다.
덕수궁에서 열린 전시회를 못 간 게 아쉬워 서점에서 신간으로 나온 걸 보고 얼른 신청한 책인데, 도판만으로는 소나무의 매력을 제대로 알기 어려웠다.
창덕궁이나 알람브라 궁전의 정원 등은 무척 아름다웠다.
사실 사진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어떤 전시회에서 유네스코 지정 유적지를 찍은 걸 보고 건물 사진에 완전히 반해 버렸다.
아마 어떤 일본 작가였던 것 같다.
저렇게 큰 건물을 어쩜 저렇게도 완벽한 구도에서 건축 미학 포인트를 콕 짚어 내게 찍을 수 있을까 감탄했었다.
이번 사진집에서도 불타 오르는 듯한 붉은 단풍과 어우러진 창덕궁이 너무 좋았다.
신록이 우거진 선명한 녹색의 나뭇잎들도 얼마나 신선하고 가슴을 설레게 하는지!
눈덮힌 겨울은 어쩐지 스산해 보여 마음이 가질 않는다.
알람브라 궁전의 헤네랄리페 같은 선명한 채도의 초록과 연두빛으로 빛나는 여름의 풍경이 가장 아름답게 느껴진다.
스페인과 터키를 갔을 때 제일 좋았던 게 바로 올리브의 그 연두색 잎들이다.
실제 올리브 열매도 무척 맛있게 먹었고, 버스나 기차를 타다 보면 창밖 어디에서나 보이는 그 선명한 연두색의 올리브 나무들이 마음을 빼앗았다.
나무나 꽃 구분을 잘 못하는 편인데도 올리브 나무는 금방 눈에 띄었다.
저자 역시 올리브 밭의 아름다움에 대해 언급했다.
소나무 사진은 흑백이 많아 밋밋한 느낌이 들었다.
빛이 들어오는 소나무 숲 사진이 뭔가 철학적으로 보이긴 한데 도판만 가지고는 충분히 매력을 느끼기 어려웠다.
경주 왕릉을 지키는 소나무, 이런 테마는 참 좋다.
왕릉 옆에 서 있는 무인상들과의 조화가 아름답다.
지천에 널려 있는 소나무는 저자의 표현대로 한국의 전통적인 미학적 대상이 아닐까 싶다.
제일 마음에 들었던 것은, 새벽이 밝아올 때부터 시작되는 작업 태도였다.
저자는 빛의 중요성에 대해 자주 언급하는데, 나도 그 기분을 조금은 알고 있다.
여름날 해가 뜨기 직전, 주변이 파랗게 물들면서 공기가 청명해지고 어스름하게 밝아 오는 그 신선하고 상쾌한 대기의 느낌.
만약 내가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된다면 다른 어떤 것보다도 바로 그 순간을 카메라에 담고 싶다.
저자는 또 해가 질 무렵의 석양도 카메라에 자주 담는다.
빛이 번져가는 혹은 사라져 가는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작업 정신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뒷쪽에 보니 종묘 사진이나 창덕궁 사진, 알람브라 궁전 사진첩이 모두 따로 나와 있었다.
기회가 되면 이런 본격적인 사진집을 구경해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