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차악의 선택 - 자살의 성찰성과 소통 지향성
박형민 지음 / 이학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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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나 역시 죽음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어느 정도는 충동성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 대체 어떤 심리 상태에서 자살을 선택하는지 궁금하던 차에 연구서가 나와 반가웠다.
자살을 병리학적으로 보기 보다는, 유서의 분석을 통해 개개인의 심리 상태를 분석한 책이라 그만큼 객관성도 있고 이론만 내세우는 오류를 저지르지도 않았으나 대신 명확하게 수렴되는 주제의식이 약한 편이다.
그러나 주변에 자살을 주제로 한 책이 드물기 때문에 충분히 일독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보통 자살은 정신과 의사들의 연구 주제라고 생각했는데 저자는 사회학자의 관점으로 자살을 해석했다.
특히 유서를 남긴 사람들을 연구했기 때문에 책 제목대로 자살은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책으로 자살자들에 의해 선택된, 충동적이거나 병적인 행위가 아닌, 명백히 의식적인 행동이라고 주장한다.
소통이나 해결의 한 방법이라고 해야 할까?
사실 유서를 남기는 이유는, 자신의 삶을 정리한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대부분 수신자가 있고 그것을 읽는 사람이 뭔가를 해결해 주길 바라고 (꼭 문제 해결이 아니라 할지라도 감정적인 부분에서라도) 쓰게 된다.
빚을 많이 진 사람은 자신의 죽음으로 빚이 탕감되길 바랄 것이고, 억울함을 호소하려고 죽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자기가 죽어 가족들이 병원비에서 벗어나길 바라기도 한다.
혹은 내가 죽음으로써 사랑했던 사람이 조금이라도 나의 고통을 이해해 주길 바라기도 하고 분노 때문에 죽은 사람은 자신의 죽음을 통해 그 상대가 괴로워 하길 바라기도 한다.
저자가 지적한 것 중 하나가, 문제 상황 그 자체 때문에 자살을 한다기 보다는, 오히려 문제를 인식하는 자살자의 태도 때문에 자살을 선택한다고 한다.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평가하느냐에 따라 자살자가 내리는 결정은 달라질 수 있다.
보통 우울증이 있는 경우 자살 확률이 높아지는데 그 까닭은, 우울증이 있는 사람은 타인 대신 자기 자신을 공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건강한 자아상을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거식증에 걸리는 사람 역시 왜곡된 신체 이미지 때문에 충분히 날씬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여전히 뚱뚱하다고 인식하여 음식을 거부하다 죽게 된다. 
이런 점에서 보면 허망한 말장난 같은 긍정의 힘이라는 것도 나름 의미있는 말 같기도 하다. 

나는 항상 독립적인 사람이 되고 싶고 주변에 휘둘리지 않는 강인한 인간상이 늘 꿈꾸는 모델이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결국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매우 사회적인 생명체임을 깨달았다.
사막 한 가운데 홀로 살아가는 사람마저도 주변의 것과 감정 교류나 의사 소통을 원한다.
무인도에 억류된 로빈슨 크루소가 앵무새 하고 말하고, 톰 행크스가 배구공을 친구로 삼듯 말이다.
인간에게 있어 타인의 평가란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모르겠다.
자살자들 역시 문제 상황 그 자체보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크게 좌우된다.
한국처럼 성공과 실패에 유난히 민감한 사회에서 자살은 증가할 수 밖에 없는 문제 같다.
주변의 평가에 궁극적으로 자유로운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 같다.
누구나 주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듣고 싶어 하고, 관심과 애정을 받길 원하며 또 내가 관심쏟을 상대를 원한다.
이런 욕구가 충족되지 않았을 때 자살자들은 최선이 아닌 다음 선택으로, 혹은 최악의 경우를 막기 위해 차악의 선택으로 스스로를 죽음으로 내몬다.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빚이 있다거나 살해 위협에 시달리는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라 할지라도, 그 용기로 살 것이지, 이런 말이 나오는 상황에서도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심리 상태를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안락사가 허용되야 한다고 주장하며 자살한 어떤 사람의 유서처럼, 스스로 선택하여 목숨을 끊는 행위가 사회적으로 적대시 되고 남은 가족들이 피해를 보는 분위기는 분명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겠으나, 자살자들이 기대한 것처럼 과연 사회가 한 사람의 죽음을 계기로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뀔 수 있을지는 매우 의문스럽다.
가끔 분신자살을 통해 사회적 이슈를 불러 일으키는 경우도 없지 않으나, 대부분의 경우는 그런 거창한 문제 해결은 물론이고 심지어 개개인의 감정 변화에도 남의 죽음이 과연 얼마나 환기를 불러 일으킬지 회의적이다.
상대방이 내 죽음으로 자책감을 느끼고 괴로워 하길 바라는 마음에 죽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가진 사람들은 금방 잊어버리고 만다.
문제 해결을 바라고 죽는 경우 역시, 이미 죽은 사람의 말에 누가 제대로 귀를 기울이겠는가?
자살자들의 소통에 대한 욕구는 충분히 이해를 했으나 그 성과는 매우 미미하다는 게 책을 읽고 난 후의 결론이다.
그러므로 좀 더 효율적인 방법적 접근이 필요할 것 같다.
마지막 장에서 자살을 막기 위해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을 간단히 나열했는데 실제로 지역사회에서 직접적인 도움을 주긴 어려울 것 같고, 잘못된 사태 인식을 바로잡기 위한 도움 정도는 주변에서 받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내가 생각하기에 정신과도 좋은 상담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읽으며서 결론은 아이러니 하게도 더 열심히 살자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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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ㅅㅇ 2011-08-15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감사합니다!!!
정말 조사중에
느낌표 15개!!!!
정말 고마워요 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