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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가난 (반양장) - 새로운 빈곤, 오래된 과제
김수현.손병돈.이현주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아는 분 블로그에서 보고 제목이 impact 해서 관심을 갖고 보게 된 책이다.
굉장히 도발적이고 애둘러 가지 않고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을 제대로 짚어낸 느낌이 들어 기대를 많이 하고 봤는데 의외로 가독성도 높고 흥미진진했다.
우리 주변의 실생활을 리얼하게 그려내서인지 공감대가 확 오고, 아프리카의 절대 가난보다 훨씬 더 직접적으로 와 닿았다.
한국은 이미 잘 사는 나라 축에 끼어 있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선진 복지 국가라기 보다는 기아에 허덕이지는 않는다는 의미로) 우리 사회에서 진정으로 문제되는 것은, 부의 불평등, 소득 재분배, 부의 지위의 세습, 사회 안정망 결여와 같은 상대적 가난의 해소가 아닐까 싶다.
여전히 못 먹고 물이 없어 죽어가는 아프리카 대륙의 가엾은 빈곤층들을 생각하면 배부른 소리일 수도 있겠으나, 함께 부대끼고 살아가야 하는 공동체의 입장에서 보면 절대 빈곤 못지 않게 상대적 빈곤도 정말 심각한 문제다.
언젠가 주간지에서 쪽방에 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월세도 안 되서 일세를 내고 하룻밤을 보내는 사람들이 상상 외로 많았고 그마저도 안 되면 노숙자로 떠돌이 신세가 된다고 한다.
쪽방촌은 가 본 일은 없지만, 서울 시내에 널려 있는 열악한 환경의 고시촌은 나도 한 달 정도 살아본 적이 있다.
시험 준비할 일이 있어서 지방에서 올라와 잠깐 기거했는데 남녀 분리도 안 되어 있고 불나면 딱 타 죽겠다 싶을 만큼 열악한 환경 그 자체였다.
또 놀라웠던 게 나처럼 수험생들이 일시적으로 거주하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대부분이 직장인들이었다.
지방에서 올라와 보증금도 없고 월세 아끼기 위해 고시원에 거주하는 것이다.
서울의 주거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새삼 느꼈다.
서울로 서울로만 외치고 있으니 살만한 집을 찾는다는 건, 어찌 보면 일생의 가장 큰 목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책에서도 복지 국가의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주택 정책을 들었다.
북유럽 같은 경우, 공공임대주택이 굉장히 많아 집을 사기 위해 전재산을 쏟아 붓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없다고 한다.
스웨덴의 복지 정책을 자세히 연구한 책에서 본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 북유럽은 워낙 인구 밀도가 낮은 곳이기 때문에 서울 같은 대도시의 주택 정책과는 근본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일례로 영국 역시 공공주택을 많이 만들어 보급했다고 하지만, 런던 집값이 너무 비싸 보트에서 생활하는 사람도 있다는 기사를 읽었었다.
한국 같은 수도 중심 국가에서는 인구의 과밀을 해결한다는 게 참 어려운 문제 같다.
캐나다나 미국 등지에서도 땅은 넓지만 도시가 슬럼화 되어 살만한 환경을 찾아 교외로 나가기 때문에 출근할 때 도심으로 진입하기가 보통 힘든 게 아니라고 한다.
교통체증이 주거문제 만큼 심각하게 떠오른 것이다.
어쨌든 정부 차원에서 공공주택 사업에 더욱 매진해야 그나마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까 싶다.
요즘 보금자리 주택 때문에 집값이 떨어졌다는 얘기도 들리지만 여전히 유럽의 복지국가에 비해 공공주택 비율은 턱없이 낮다.
영국에서는 빈민촌을 정비하는 방법으로 지역 사회에 복지시설을 짓는 정책을 시행한다고 한다.
강제 철거나 도시 정비보다는 훨씬 더 인간적이고 실제 거주민을 배려하는 정책 같다.
북유럽에서 흔히 시행되는 주택 정책으로는, 주거비 보조 정책이 있다.
중산층 거주 지역에 서민층이 살 수 있도록 임대료를 지원해 주는 것이다.
이러면 자연스럽게 여러 계층이 섞이게 된다.
부자 동네, 가난한 동네의 뚜렷한 구분선을 흐릿하게 할 수 있는 좋은 방법 같다.
어떤 방법을 쓰든 결국 돈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조세 저항은 필연적으로 발생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가 날카롭게 지적한 바대로, 서민층의 가용소득이 높아져야 소비가 진작되고 내수 산업이 활성화 될 것이다.
유효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공공사업을 벌이는 것처럼, 사람들이 돈을 쓰게 만드려면 생활에 꼭 필수적인 비용들을 최대한 줄여서 여유돈으로 소비를 하게끔 유도하는 것이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기업들의 규제를 풀고 세금을 감면하라는 기업 쪽 주장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들린다.
남는 돈이 있어야 쓸 돈도 생길 게 아닌가.
사실 나는 대한민국 의료 정책이 잘 되어 있고 전국민 의료 보험 제도가 상당히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쪽인데 책을 읽으면서 무상의료가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실감했다.
사회적 계층이 하락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질병이라고 한다.
실직이나 가정해체 보다도 질병이 훨씬 더 가혹하게 작용한다.
미국처럼 잘 사는 나라도 의료보험에 가입하기 위해 반드시 직장에 나가야 한다고 한다.
완전한 무상의료는 불가능 하겠지만 의료비 지원은 생활 안정을 위해 매우 중요한 문제다.
같은 맥락으로 교육비 무상 지원도 중요하다.
사립 대학의 등록금이 천 만원대를 바라보는 이 시점에서, 고등교육이 상류층으로 가는 첩경인 우리나라의 경우 돈 없어 대학 못 가고 다시 가난해지는 빈곤의 악순환이 되풀이 될 수 밖에 없다.
벌써 공교육만으로는 좋은 대학에 못 가기 때문에 엄청난 사교육비를 쏟아 붓고 덕분에 부모의 경제력이 뒷받침 되야 명문대에 진학하는 어처구니 없는 풍경이 일상화 되고 있다.
생각해 보면 얼마나 부당하고 기막힌 일인가.
대학까지 무상교육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공교육 강화를 통해 사교육비를 줄이는 시도라도 활기차게 이뤄져야 할 것이다.
교육(특히 명문대 진학)과 부의 세습이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는 대한민국에서 공교육 강화는 필수적인 정책이라 하겠다.
그 외에도 결혼이주민이나 탈북자, 외국인 근로자 등의 문제들도 거론됐는데 다들 너무 중요한 사안들이라 잘 해결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엊그제 읽은 <십자가 초승달 동맹>에 나온대로 테러 위협 이런 문제들은 얼마나 자극적이고 흥미진진한 소재인가?
한국의 가난이라는 무거운 주제에 비하면 말이다.
정작 관심을 기울여 해결해야 할 문제는 제쳐두고 집권층의 국민 관심 돌리기용의 화제거리에 이용되고 있지는 않는지 감시의 눈을 부릅뜰 때다.
한국 사회의 양극화 현실을 정확히 짚어낸 수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