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구운몽을 무척 재밌게 읽은 기억이 난다. 그런데 등장인물이 많아 <사씨남정기> 보다 더 복잡하고 마음에 확 와 닿지는 않았다.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구운몽도라면 중앙박물관에서 병풍으로 구경한 적이 있다. 고전문학을 전공한 저자가 민화의 형태로 남아 있는 구운몽도를 분석한 책인데 분량이 적고 내용도 평이해 금방 읽을 수 있다. 오히려 이 책을 읽고 나니 구운몽을 다시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조가 이 소설을 재밌게 읽고 나서, 문장이 출중해 볼 만 하다고 평가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당대의 석학이었던 서포 김만중의 작품이니 대화가 오죽 격조 있었겠는가? 대부분의 소설들이 작가 미상이고 유명한 홍길동전마저 작가가 의심되는 실정이고 보면, 저자의 말대로 구운몽의 작가가 확실히 전해 오는 것은 매우 기록할 만한 일 같다. 김만중은 막연히 유복자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그의 아버지는 호란 때 피란가다 죽은 게 아니라, 화약 창고에 불을 지르고 순절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과거에 일등으로 급제한 촉망받는 신예였고 할아버지가 이조참판이었으며, 증조부가 예학의 대가 김장생이다. 외가 또한 외증조부가 선조의 부마였으니 외증조모가 바로 선조의 고명딸 정명공주였던 것이다. 외5대조는 임진란 때 영의정을 역임한 윤두수니 외가 역시 당대 명문이었다. 이런 집안의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김만중의 조카, 곧 형 김만기의 딸이 숙종의 비로 뽑힐 수 있었을 것이다. 유복자이긴 하지만 아버지가 다른 것도 아니고 오랑캐와 싸우다 순절했으니 과부가 된 윤씨 부인이 이를 악물고 자식들을 교육시켰다는 말이 과연 실감난다. 김만중의 효성은 유명하여 유배지에서 어머니가 적적하실까 봐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구운몽의 환상적인 서사 구조를 생각하면, 또 사씨남정기의 흥미진진한 처첩대결을 떠올려 보면, 단지 근엄한 유학자가 아니라 창작에도 빼어난 능력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조선 시대 선비들은 오늘날로 말하면 상당한 교양인들이었던 것 같다. 관리들이 기본적으로 유학을 공부하는 문인들이었고 김정희나 강세황처럼 그림과 글씨에도 능했으며 김만중이나 허균처럼 소설 창작에도 솜씨가 있었던 걸 보면, 산업화 되기 전의 전근대 사회에서는 문인관료라는 상당히 이상적인 인간상을 구현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