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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상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4
제임스 미치너 지음, 윤희기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정말 오랜만에 읽은 책이다.
결혼 준비하랴, 논문 쓰랴 나름 바빴던 관계로 요새 통 책을 못 읽고 있다.
시간이 없다기 보다는 마음의 부담감 때문에 편하게 활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 책은 M양이 선물한 건데 지하철에서 혹은 자기 전 침대에서 짬짬이 읽었다.
소설의 묘미는 바로 이런 잠깐의 여유 시간에 읽는 게 아닐까 싶다.
제목이 특이해 예전부터 무슨 내용일지 궁금했었다.
독특하게도 작가, 편집자, 비평가, 독자 이 네 사람의 관점에서 기술을 했다.
상권만 읽은 상태라 아직 비평가와 독자 편은 못 읽었는데 내가 독자이기 때문인지 독자의 관점에서 본 소설이 제일 기대된다.
현대 소설을 읽으면 오래된 고전과는 다르게 현실의 묘사나 심리분석이 탁월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아무래도 같은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일 것 같은데, 고전소설 보다 더 묘사에 정성을 쏟는 느낌이다.
루카스 요더와 베노 레트너의 극명한 대비.
두 사람의 가운데 편집자로 끼어 있는 이본 마멜.
내가 여자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소설가 보다는 독자의 입장이기 때문인지, 요더 보다는 이본 쪽이 훨씬 더 와 닿았다.
더 서사적이기도 해서 읽기 쉬운 면도 있었다.
근면성실한 노동자와도 같은 루카스 요더는 첫 네 작품은 독자의 관심을 끌지 못하지만, 오랜 인고의 시간 끝에 드디어 베스트셀러 작가 대열에 들어선다.
그 후 네 작품은 연속으로 히트를 치고, 대가의 반열에 오른다.
반면 번득이는 재치와 분석력, 놀라운 언변을 가진 베노는 잘생긴 외모와 뛰어난 지성을 한 편의 완성된 글로 풀어내지 못하고 루카스의 성공을 질투하면서 결국은 식칼로 목을 찔러 죽고 만다.
베노의 자살은 서술 초기부터 여기저기 암시되었기 때문에 결국은 이런 파국으로 끝날 줄 알고 있었다.
어쩐지 메릴 스트립이 주연한 <소피의 선택> 의 상대역을 보는 느낌이었다.
우리 속담으로 표현하자면,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해야 하나?
부유한 베노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지나친 확신 때문에 진득하게 글쓰기에 몰두하지 못하고 무위도식 한다.
편집자인 아내 이본이 퇴근했을 때 쇼파에 어질어진 신문의 낱말 맞추기 조각들과 술에 취해 잠든 남편의 모습을 봤을 때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이본은 그녀의 삼촌이 경계했던 여인상, 방탕한 남자의 구원자가 되고 만 것이다.
이본 마멜, 혹은 셜리 마멜스타인의 성공기는 일견 감동스러운 부분이 있다.
가난한 공장 노동자의 딸로 태어나 겨우 대학 1학년 중퇴 후 출판사의 비서로 취직해 밑바닥부터 정상의 편집자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 노력과 열정은 어쩐지 미국이 기회의 땅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요더의 작품이 네 편 씩이나 연달아 실패를 거듭하는데도 끝까지 그를 후원할 수 있었던 것도 그녀의 놀라운 지성과 번뜩이는 감각 때문일 것이다.
그녀에게는 마치 재앙과도 같았던 베노와의 사랑.
아마도 1970년대에서 80년대에 이르는 배경 같은데 결혼하지 않고 아이도 같지 않은 채 십 여 년 째 동거하는 관계가 용인되는 미국 사회가 부럽기도 했다.
루카스 요더와 아내 엠마 역시 아이를 같지 않았다.
그들은 그렌즐러 8부작이 바로 자식이라고 생각한다.
결혼과 자식을 개인의 자유대로 선택할 수 있는 사회의 너그러움이 부럽다.
한 편의 소설이 탄생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 소설이다.
비평가와 독자의 입장은 또 어떠한지 궁금하다.
펜실베니아로 이주한 독일인 제세례파의 이야기는 마치 우리나라 대하소설 <토지>나 <아리랑> 등을 보는 느낌이었다.
같은 문화권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정서와 공감 같은 것들.
결국 모국어로 쓰여진 소설만이 올바로 100% 이해될 수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루카스 요더가 보여주는 독일계 조상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깊은 애정이 감동적이었다.
더불어 아미쉬와 메노파가 바로 루터의 종교개혁 영향으로 생겨난 재세례파였다는 걸 알게 된 것도 소득이다.
단추를 달 것인지 말 것인지, 멜빵을 맬 것인지 말 것인지 등을 두고 형제간의 의를 끊고 갈라서는 이들의 모습에서, 18세기 조선의 예송논쟁을 떠올렸고 어떤 종교나 학문이든 인간의 삶을 잡아먹는 교조주의는 배척해야 마땅하며 의식과 관념에 대한 집착은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문득 <토지>를 다시 읽어 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