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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대왕과 친인척
지두환 지음 / 역사문화 / 2001년 3월
평점 :
지루한 가계도 나열일까 봐 몇 년 전부터 도서관에서 눈으로만 보다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왕의 후궁이나 공주, 왕자들의 삶은 어땠을까 궁금증이 생겨 빌리게 됐다.
여러 왕이 있었는데 숙종이나 영조처럼 너무 알려진 왕은 흥미가 좀 떨어지고, 요즘 한창 열심히 보고 있는 추노의 배경이 되는 인조 시대가 궁금하기도 해서 그 아들인 효종을 골랐다.
효종은 소현세자의 동생이기도 하니 관련 내용이 한 둘은 나오지 않을까 싶었다.
인조는 반란으로 왕이 됐으면서도 두 번이나 호란을 맞는 와중에 아버지 추숭 사업이나 하면서 세월을 보낸 게 도무지 정이 안 가는 인물이라 싫었다.
나에게도 정통성을 갖지 않고 왕위를 잇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갖는 정서가 있는 것 같다.
마치 추노에서 봉림대군 대신 끝까지 소현세자의 갓난쟁이 어린 아들을 왕으로 받드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내용은 생각보다 훨씬 재밌었다.
역사에 관심이 많아 어느 정도 시대적 배경을 알고 있으니 더욱 흥미롭게 읽히는 것 같다.
조선 후반기로 올수록 적장자가 왕위를 잇는 경우가 드물어 어쩐지 조선 시대 왕들은 정실 부인과는 공식적인 관계만 갖기 때문에 자식이 없었을 것 같다는 편견이 있었는데 따져 보면 대체적으로는 다들 중전과도 사이가 원만했던 것 같다.
숙종이나 영조, 정조 등이 좀 특이한 경우였지 자식을 많이 낳은 중전들도 많았다.
여기 나온 효종의 부인 인선왕후 장씨도 1남 6녀의 많은 자식을 둔 다복한 여인이었다.
열 여덟에 낳은 가엾은 큰딸 숙신공주는 심양에 볼모로 끌려갈 당시 세 살의 어린 나이로 궁녀의 등 위에서 사망하고 만다.
한 나라의 왕자로 태어나 (나중에는 왕이 될 존귀한 몸이) 오랑캐라고 얕보던 야만인의 나라에 끌려가는 것도 기가 막힐 노릇인데 그 여정에서 큰딸까지 잃었으니 효종 부부의 당시 심정이 얼마나 비통했을지 짐작이 간다.
이 두 부부는 볼모로 끌려가서 동지적 관계를 유지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타국 땅에 볼모 생활을 하고 있으니 의지할 곳은 부부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효종은 심양 땅에서 현종을 비롯 1남 3녀를 얻는다.
그러니 조선 역사에서는 전무후무 하게 현종은 남의 나라 땅에서 태어난 왕인 셈이다.
(하긴 몽골 여자와 결혼하고 몽골 어머니를 둔 고려 후반기 왕들도 있으니 놀랄 일은 아니구나)
다섯째 숙정공주는 세자로 책봉된 직후 아직 궁으로 들어오기 전 사가에서 낳았고 막내 숙녕옹주는 안빈 이씨가 낳았다.
이 여인은 효종 시대가 좀 더 조명되고 나서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도 좋을 것 같다.
<이산>의 성송연처럼 말이다.
그녀는 효종의 유일한 후궁이었는데 볼모로 효종이 끌려갈 때 남장을 하고서 따라 나설 만큼 충성스러웠다고 한다.
살아 생전 작위는 숙원에 불과하여 아들 현종이 민망해 품계를 올려 주라 청했으나 나중에 네가 베풀어 줄 은혜를 아껴 둔 것이라고 했다.
북벌을 이루기 위해 금욕적인 삶을 산다고까지 한 왕이니 확실히 효종은 기개가 굳고 점잖은 사람이었을 것 같다.
실록이나 행장에 좋은 말만 써 있는 게 당연하겠지만서도, 효종과 인선왕후 모두 심양에서 세자 내외를 받들어 모시고 세자가 된 후에는 아버지 인조에게 효도하였으며 어머니 사망 후 계비로 들어 온 어린 장렬왕후에게도 효성을 다하였다고 하니 부부가 정말 모범적이다.
현종은 아버지의 후궁 숙원 이씨를, 임금이 된 후 숙의에 봉하고, 손자 숙종은 마침내 안빈이라는 작호를 내린다.
숙종 때까지 살았던 걸 보면 출생 연도는 모르나 꽤나 장수했던 것 같고 현종이 庶妹 에게 매우 자상했으며 남편의 사후에 아들과 손자에게 빈의 칭호까지 받았으니 정말 복된 삶을 살았을 것 같다.
이런 일이 순탄하게 이뤄진 걸 보면 정비 인선왕후와도 사이가 좋았을 것 같다.
사위인 금평위 박필성에 관해서는 특별히 언급을 해야겠다.
유일한 혈육인 숙녕옹주는 불행히도 마마에 걸려 20세에 사망하고 만다.
그런데 사위 박필성은 무려 96세까지 장수해 효종의 현손인 영조에게 궤장을 하사받기까지 한다!
96세라니, 의학이 발달한 현대에도 드문 나이인데 그 옛날 조선 시대에 이런 장수 노인이 있었다는 게 참 신기하다.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수명이 아닐 수 없다.
안타까운 것은 11세에 네 살 위의 숙녕옹주와 혼인하였는데 그녀가 결혼 5년 만에 천연두로 사망하는 바람에 16세에 혼자 되어 무려 80여 년을 혼자 살았다는 점이다.
비공식적인 소실은 있었겠지만 재혼 삼혼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조선 시대에 공식적인 부인 없이 홀로 지내야 했던 이 분의 삶이 안타깝다.
둘 사이에는 딸이 하나 있었다고 한다.
역시 24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한 다섯째 딸 숙정공주의 남편 동평위 정재륜은 외아들마저 사망하자 대를 잇기 위해 숙종에게 재혼을 허락받는다.
그러나 대간들의 반대로 무산되면서 아예 의빈은 재혼할 수 없다는 법규가 생겼다.
정재륜은 76세까지 혼자 산다.
공주와 결혼하면 얻는 것도 많으나 그만큼 감내해야 할 고통도 있었던 것 같다.
한 가지 의아한 점은, 그동안 알고 있었던 것과는 달리 소현세자가 청나라의 문물을 받아들여 인조의 미움을 사 죽은 게 아니라 친청파인 김자점의 모함으로 급서하고 아들 대신 봉림대군이 왕위에 올랐다는 것이다.
소현세자가 정말로 인조가 던진 벼루에 맞아 시름시름 앓다가 침 잘못 맞고 죽은지는 모르겠으나 하여튼 그가 죽고 난 후 당연히 세자위는 원손 이석철에게 가야 할텐데 종법을 어기면서까지 (그래서 예송논쟁의 발단이 되면서까지) 동생 봉림대군이 세자위에 오른 것이다.
원손의 나이가 이미 10세였으니 왕세자가 되고도 남을 나이다.
예종이 일찍 죽었을 때 원손인 제안대군이 너무 어려 조카 성종에게 왕위가 넘어 간 것과도 다른 일이다.
이 책에 따르면 역시 저주 사건에 휘말려 시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한 강빈의 아버지 강석기는 반청파였다.
그러므로 세자 내외는 반청파로 분류되어 귀국 후 친청파인 김자점의 음모로, 원손 대신 친청파 장인을 둔 봉림대군이 세자가 됐다는 것이다.
봉림대군의 장인은 장유다.
청나라 문명을 받아들이려고 한 소현세자는 장인 때문에 반청파로 분류되고, 반대로 즉위 후 북벌론을 주장한 효종은 역시 장인 때문에 친청파로 분류되어 선택을 받았다는 게 참 아이러니 하다.
소현세자가 왜 갑자기 죽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젊은 나이에 느닷없이 죽은 옛날 사람들은 하도 많아 음모론적 시각으로 보면 한도 끝도 없다) 여하튼 그의 사후 원손이 유배되고 아내가 사형을 당했던 것은 확실히 소현세자를 위험하게 봤던 친청파 김자점이 한 몫 했던 것 같다.
김자점은 인조의 딸 효명옹주의 시아버지인데 여전히 명나라를 받다는 사대부들 사이에서 강빈의 옥사 이후 비난을 받게 되고 결국 효종 즉위 후 사형당한다.
당시 정황에 대해 좀 더 알야봐야겠다.
효종은 인조와 다섯 살이나 어린 계모 장렬왕후에게 매우 효성스러워 칭찬을 많이 받았다는데 그래서 더욱 아버지의 선택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손자들과 며느리까지 죽이는 아버지를 보면서 봉림대군 내외가 세자 시절 얼마나 몸을 낮추고 두려웠을지 짐작이 간다.
그러고 보니 인조도 영조 못지 않게 괴팍한 구석이 있었던 것 같다.
재미없는 제목과는 달리 무척 재밌게 읽었다.
실록이 이렇게 흥미진진한지 새삼 느낀다.
앞으로 이 시리즈를 다 읽어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