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불화 -실크로드를 품다 - 우리문화읽기1
김영재 지음 / 운주사 / 2004년 4월
평점 :
절판


꽤 어렵게 읽고 있다.
일단 너무 피곤해서 책상에 앉아 한 시간은 꾸벅꾸벅 졸았고 깨서도 정신이 몽롱해 제대로 집중해서 읽은 건 한 시간이 될지 모르겠다.
피곤이 좀 풀리고 어느 정도 책에 익숙해지면 그 다음부터는 갑자기 집중도가 높아지면서 일산천리로 읽어 내려간다.
그런 것도 칙센트미하이가 말하는 일종의 flow가 아닐까 싶다.
평론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사변적이고 어쩐지 작위적 해석이라는 거부감이 종종 들어 더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이를테면 산해경을 동이족의 경전이라 단정짓고 또 그 동이족은 한국인의 조상이다 이런 식으로 도식적 틀에 맞춰 무리해서 연관성을 끼워 맞춘다는 느낌이 들어 저자의 해석에 100% 동의하기가 힘들었다.
대부분의 역사책에서는 단군 왕검을 고려 시대 대몽항쟁을 겪으면서 생겨난 평양 지역의 전승 설화로 보는데 이 책의 저자는 단군 왕검 신화를 기둥으로 삼아 이런저런 중국과 서역 전설들을 접목시킨다.
그런 점들이 책을 읽는데 방해가 됐다.
또, 미륵이 언제 올지를 두고 태양의 나이가 50억년이니까 이 태양계가 소멸할 때 쯤이라는 식으로,  비유적 표현을 실제적 산술치로 환산하는 유치한 놀이를 하시더니, 서력의 기원이 실제 예수 탄생 보다 4년이나 차이가 나니까 그런 부정확한 연대로 미륵 신화의 시작을 계산할 수 없다면서 BC 대신에 CE를 쓰겠다, 뭐 이런 식이다.
비잔틴 양식의 이콘화는 도상적이고 딱딱해 판에 박은 듯 다 똑같은 반면 고려 불화는 생명력 넘치는 살아있는 그림이다, 이런 식의 자기 중심적 해석도 눈에 거슬렸다.
얼마 전에 읽은 러시아 미술사에 따르면 이콘화야 말로 중생들을 긍휼히 여기는 진정한 자비의 성모상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게 찬사를 보냈는데 말이다.
책을 쓰다 보면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자료들을 해석하려는 강렬한 욕구에 빠지는 것 같다.
결론을 내리고 모든 자료를 거기다 끼워 맞추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 몇몇 문장들을 제외하고는 그런대로 괜찮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불교라는 종교에 대해 기본적인 개념이 생긴 것 같아 기쁘다.
저자의 말대로 불화는 기본적으로 개인의 창조성을 드러내는 행위가 아니라 신심을 나타내고 공경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한 일종의 聖畵 다.
이콘화처럼 불화도 숭배의 간접적 표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화가 전형적인 양식을 갖는 건 미술사적 눈으로 보면 태생적 한계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해서 불화가 미학적으로 평가받을 수 없는가, 그것은 절대 아니다.
저자는 오히려 조선의 수묵화를 중국의 아류작으로 치부했고 18세기 이후에 나타나는 진경산수화나 풍속화 마저도 청나라 실학의 영향을 받았다고 평가절하한다.
반면 불화는 중국과 비교했을 때 고려불화만의 독특한 예술성과 미적 특성을 지니기 때문에 한국 미술의 독립적인 위상을 가질 만 하다고 주장한다.
일견 동의하는 부분도 있다.
요즘 수묵화에 관심이 많이 생겨 그 맛에 푹 빠져 있긴 하지만 한발짝 물러서서 생각해 보면 과연 평론가들의 주장처럼 조선의 수묵화가 중국의 것과 특별하게 감별될 독특함을 지니고 있는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작품 하나하나가 올바른 평가를 받아야 함은 물론이지만 전체를 놓고 봤을 때 과연 한국의 수묵화를 중국의 범주에서 벗어난 독자적인 양식으로 볼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저자는 고려불화의 원류를 중국 대신 서역에서 찾는다.
인도에서 돈황 등을 거쳐 중국으로 수입된 불교는, 북위 시대 전성기를 맞아 막고굴 등에 수많은 벽화를 남긴다.
저자는 서역에서 시작된 여러 불교의 도상들이 중국을 통해 한국으로 건너와 어떻게 재창조 됐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선뜻 동의하기 힘든 무리한 해석들도 가끔 보이긴 하지만 고려불화는 화엄종과 선사상이 합쳐진 화엄선에 사상적 뿌리를 두고 있음은 확실히 이해하겠다.
고려 말 이후는 선종이 유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나한도 등의 수묵화 대신 고려불화의 극채색주의가 유행했던 까닭을, 저자는 선사상이 화엄종과 결합했기 때문으로 본다.
화엄종은 아미타 부처가 있는 서방정토로의 극락왕생을 추구하는 종파다.
한반도에서는 의상을 시초로 한다.
고려불화는 아미타여래, 관음보살, 지장보살 이 셋이 주를 이룬다.
저자는 컴퓨터 그래픽으로 정교하게 복원한 불화를 보여준다.
과연 색이 바래기 전, 처음 그렸을 때의 모습은 선명하게 윤곽선을 그리고 섬세하게 채색을 했으니 정교하고 화려하기 그지 없었을 것 같다.
맨날 박물관의 어두컴컴한 전시실에서 빛바랜 불화만 보다가 깔끔하게 복원된 확대 사진을 보니 선 하나하나의 묘사가 정말 섬세하고 채색 역시 정교하기 짝이 없다는 감탄이 나온다.
저자가 말하는 고려불화의 놀라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다만 수월관음도나 아미타삼존여래도처럼 거의 똑같은 도상들이 반복되니 지루한 느낌은 어쩔 수 없었다.
작품 하나하나를 감상하는 건 좋은데, 전체로 취합해 보면 도상학적 반복이라는 생각이 들어 매력이 감소하는 느낌이다.
저자는 이러한 극채색주의를 북송의 영향으로 본다. 

불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어느 정도는 불교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마치 서양의 종교화를 감상하려면 성경을 좀 알아야 하듯 말이다.
이 책 역시 불교의 경전이나 교리 소개에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워낙 기초지식이 없어 굉장히 지루하게 어렵게 읽었다.
비슷한 주제를 가진 다른 책으로 한 번 읽고 이 책을 재독한다면 좀 더 이해가 빠를 것 같다.
관음보살의 여성화라든가, 불교의 밀교화 등은 새롭게 접한 내용들이다.
불교를 모르면 한국의 전통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힘든 만큼 (특히 신라와 고려 시대는 더더욱) 공부를 좀 해 보고 싶다.
도판이 무척 화려하고 볼만 하다.
다만 불화의 도상들을 친절하게 다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
개별적인 불화 보다는, 고려 불화가 갖는 미술사적 의의와 그 뿌리를 밝히는데 역점을 둔, 어찌 보면 일종의 역사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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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09-11-10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고 싶군요. 단청에 관한 책을 언뜻보다가 무늬으 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분이 있어, 불화에 대한 관심이 생기는데, 글을 보니 곁가지는 빼고 말씀하신대로 읽고 싶군요. 따로 챙겨둬야겠네요.

marine 2009-11-11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일독할 만합니다. 도판이 일단 화려해서 보는 즐거움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