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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를 만든 경종의 그늘 - 정치적 암투 속에 피어난 형제애
이종호 지음 / 글항아리 / 2009년 3월
평점 :
도서관에서 그냥 못 지나치고 집어든 책.
제목이 왠지 자극적이고 인위적인 냄새가 나서 지나칠까 하다가 그래도 저자 약력을 보니 사학 전공하신 분이라 읽기로 했다.
지나치게 영조와 경종의 우애 이 쪽으로 포커스를 마주려다 보니 무리한 전개가 곳곳에 보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혀지기 쉬운 경종 시대를 조명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고, 암살설은 말도 안 되는 헛소리임을 명확히 밝혔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겠다.
게장과 감이 상극인데 영조가 둘을 진상해서 경종이 먹고 급체해서 죽었으니까 독살이라는 어떻게 보면 코메디 같은 얘기를 지금도 버젓히 학설입네 주장하는 이덕일 같은 사람들이 있는 이 시점에서 더욱 의의가 있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저자의 설명처럼 차라리 몸이 허한데 평소 즐겨 찾던 음식이 나와 간만에 기력 회복하고자 무리해서 먹다가 탈났다는 게 더 현실적으로 들린다.
문제가 되는 인삼차도 저자의 설명처럼 영조가 훗날에도 두고두고 애용하던 나름의 보양식이었으니 형 경종에게 권했다고 해서 하등 이상할 게 없다.
이미 즉위 당시부터 세제로 책봉되어 차기 대권 주자로 인정받았고 대비나 노론 세력의 지지도 있으며 경종 역시 오늘 내일 하고 있는 이 마당에 독살이라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무리수란 말인가.
오히려 경종의 죽음을 계기로 몰락한 소론측에서 흘린 일종의 음모론이라 봐야 맞을 것 같다.
특별한 증거도 없이 게장과 감이 상극이네 하는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암살당했다고 하는 얼치기 사학자들이 문제다.
경종은 강팍했던 어머니 장희빈과는 달리 유순하고 소심한 스타일이었던 것 같다.
하나뿐인 동생 영조를 아끼고 집권 세력의 공격으로부터 지켜냈으니 과연 형제간의 우애가 남달랐으리라.
불같은 성격의 아버지 숙종은 형 경종보다는 오히려 동생 영조가 더 닮았던 것 같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80을 넘긴 것도 그렇고, 큰 아들을 낳아 준 여자를 죽은 것처럼 영조도 하나 뿐인 친아들을 죽였으니 과연 비슷한 구석이 많다.
경종이 말을 더듬어 심리적 충격에 의한 실어증이라 해석한 것은 좀 무리가 있어 보이지만, 어쨌든 열 네 살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서도 국정을 꽉 장악했던 아버지 숙종과는 달리 신하들에게 끌려 다니고 만만해 보이는 면이 없지 않았던 것 같기는 하다.
책의 설명처럼 경종이 유약한 성격이 아니었다면 즉위 첫 해에 벌써 세제 책봉론이 나올 수가 없다.
서른 중반에 사망할 때까지도 자식이 없었던 걸 보면 확실히 경종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 같기는 하다.
형수가 되는 어대비는 시동생 영조를 증오했다고 하는데 이 책에는 오히려 사이가 좋은 걸로 나와 약간 의아했다.
연산군처럼 왕위에 오른 후 어머니의 복수를 할 수도 있었을텐데 신원 회복은 커녕 오히려 신하들에게 그 문제로 공박을 당할 정도였으니 카리스마 있는 왕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어찌 보면 재위 4년만에 죽은 건 당시 조선의 상황으로 봐도 차라리 잘 된 일 같기도 하다.
정종을 윽박질러 2년 만에 퇴위시키고 왕위에 오른 태종도 있는데, 영조는 본인의 힘으로 세제가 된 것이 아니어서일까? 책의 내용으로 봐서는 오히려 권력의 자리를 극구 사양하고 목숨을 부지하려고 한다.
그러고 보면 군사력을 장악했던 왕조 초기와는 많이 다른 상황이었던 것 같다.
관심이 덜 가는 경종 시대를 조명해 줬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는 책이고 비교적 재밌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