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수업이 연기됐는데 나만 모르고 청량리까지 꾸역꾸역 갔다가 허망하게 돌아오는 길에 본 영화다.
비도 추적추적 내리고 명동 CGV에서 극장 찾느라 헤매다가 정말 우여곡절 끝에 봤다.
디지털이라 그런가 화면이 생생하고 색감이 좋았다.
조승우와 수애의 모습도 무척 예쁘고.
그러나...
결정적으로 시나리오가 너무 약하다.
참, 어떻게 저런 걸 시나리오라고 썼을까 싶을 정도로 유치찬란하고 개연성도 없고 애틋한 러브 스토리도 없고 정말 실망스럽다.
조승우는 여전히 매력적인 웃음을 날리고 있지만, 대체 뭐가 아쉬워 이런 영화에 출연했는지 모르겠다 싶을 만큼 완성도가 떨어졌다.
민비로 나오는 수애는, 단아하고 고운 얼굴이 잘 어울리기 했지만, 영화 속에서 비중이 너무 작아 과연 주인공인가 싶을 정도다.
임오군란 때 민비를 업고 충주까지 달린 무장이 있는데, 이 사람과의 로맨스가 드라마 <명성황후>에서도 나온 바 있다.
아마도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 같다.
마지막에 조승우가 쓰러지지 않기 위해 칼을 자신의 발에 박고 말뚝처럼 서 있는 장면은, 왕비를 지키려는 충성심과 애정으로 보이는 게 아니라, 아무리 총을 맞아도 쓰러지지 않는 모습이 코믹하기까지 했다.
이런 영화에 비하면 <쌍화점>은 오히려 완성도가 높은 영화다.
대원군으로 나온 천호진은 내가 좋아하는 배우라 스크린에서 얼굴을 보니 반가웠다.
맨날 유동근만 보다가 다른 사람이 연기하는 대원군을 보니, 신선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대원군이 군사를 이끌고 궁궐로 쳐들오 오는 장면은, 진짜 코메디 같았다.
예전에 <황후화> 볼 때 중국놈들, 진짜 뻥도 세다, 아무리 영화라 해도 어느 정도 현실성이 있어야지 싶었는데 우리가 딱 그 짝이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대충 그리면 영화가 되는 건 아닌데 말이다.
을미사변 때 대원군의 수하가 처음에는 일본 앞잡이가 됐다가 무명이 궁전 앞을 홀로 지키고 있는 걸 보고, 칼 끝을 돌려 일본군에게 휘두르다 죽는 장면은 가슴이 절절했다.
민비가 시해당하지 않았으면 아마도 나라 망하게 한 요부로 기록됐을 것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40대의 나이에 왕비의 몸으로 칼맞아 죽었다는 사실은 너무나 비극적이다.
어쩌면 임오군란 때 잡혔더라도 성난 폭도들에게 그런 꼴을 당했을지도 모르지만.
<스캔들> 처럼 화려한 볼거리라도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순전히 컴퓨터 그래픽에만 의존하고 너무 돈을 안 썼다.
진정 재밌는 영화란 이렇게도 귀하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