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포토 다큐 세계사 3 - 러시아의 세기
브라이언 모이나한 지음, 애너벨 메럴로.세러 잭슨 사진편집, 김남섭 옮김 / 북폴리오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원래 사진 보다는 글을 더 좋아하는지라 이런 포토집은 썩 내키지가 않는다.
사진이 많으면 상대적으로 텍스트가 소홀해져 전체적인 글의 내용이 빈약해진다.
이 시리즈 중 처음에 나온 중국 편을 사 놓고도 선뜻 못 읽었던 것도 그런 이유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현대사를 밝히는 드문 사진들이라는 점에서, 특히 중국이나 러시아, 독일처럼 현대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국가들의 사진이라는 점에서 한 번은 읽어야 할 것 같았다.
표지로 실린 저 스탈린의 가족 사진을 봐도 흥미가 솔솔 생긴다. 
결과적으로 러시아 편은 아주 만족스럽다.
러시아의 20세기를 큼직큼직한 사진들과 충실한 본문으로 대강의 개요를 잡아준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번역의 문제인지 아니면 저자 자신이 비유를 많이 써서인지 의미 전달이나 표현이 명확하지 않은 느낌이 많았다.
역주를 보니 영국 출신의 저널리스트라 하던데 기자 출신이라 어떤 현상을 정면으로 설명하기 보다는 압축해서 우화 등을 통해 좋게 말하면 촌철살인 식으로 짧고 강한 표현을 쓰는 것 같다.
그리고 책을 읽는 내내 스탈린이 얼마나 나쁜 놈이고 소련 체제가 얼마나 크게 실패를 했는지 충분히 이해가 가는데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비꼬고 조롱한다는 느낌을 피할 수가 없었는데 역시나 번역하는 사람도 그 점을 지적했다.
결국 모든 것은 결과로 말하는 것인가.
스탈린의 잔인한 숙청은 피해망상자에, 히틀러 보다 더 나쁜 놈이라는 분노가 들끓면서도 너무 희화화 시키고 극적인 표현을 많이 써서 약간의 반동이 일기도 했다.
그 뒤를 잇는 흐루스쵸프나 브레주네프, 고르바쵸프, 옐친 등의 러시아 현대사도 정말 재밌게 읽었다.
특히 고르바쵸프 시대가 나오자 개혁, 개방으로 대표된 놀라운 소련의 변신, 혹은 거대한 연방의 해체, 몰락 등을 90년대부터 내가 직접 뉴스로 보고 들었던지라 더욱 생생한 느낌이 들었다.
소련이 무너지다니, 이른바 냉전 시대의 학생이었던 나로서는 굉장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미국과의 군사 경쟁 때문에 실생활의 수요를 희생하여 군수품에 투자할 수밖에 없었던 소비에트 연방의 딜레마.
계획경제가 그 거대한 나라를 제대로 돌아가게 만든다는 목표 자체가 어쩌면 불가능 했을지도 모르겠다.
제정 시대로 아니고 이렇게 급변하는 최첨단 자본주의 시대에 말이다.
지금의 북한처럼 결국은 비효율적인 생산 시스템과 무리한 군수업체 투자가 거대 연방의 몰락을 가져왔고 형제애가 사라진 대신 각 지역의 민족주의와 인종주의가 발흥하여 체첸이나 그루지야 등의 소요가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러시아에서도 마약이나 마피아, 포르노 산업 등의 어두운 분야가 활개를 치고 보드카에 불행한 삶을 맡기며 출산율과 평균수명은 계속 떨어져 가고 있다.
차라리 기강이 잡힌 스탈린 시대가 낫겠다는 푸념이 섬뜩하면서도 불행한 러시아의 현실을 정확히 보여주는 기분이 든다. 

영화 <프라하의 봄>에서 보여준 동유럽의 반란이 브레주네프 시대였고, 파스테르나크가 노벨상을 거부하고 유리 가가린이 우주 비행에 성공한 것이 흐루시초프 시대였다는 것 등의 에피소드가 독서의 흥미를 돋웠다.
유리 가가린의 자서전을 읽었을 때의 내 감동과 마찬가지로 이 책에도 가가린의 성공은 부르주아 귀족 계급에 대한 노동자 층의 승리라고 묘사되어 있다.
이제 평범한 강철 공장의 노동자 아들도 최고의 교육을 받고 러시아의 영웅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만큼 세상은 평등해졌다.
흐루스초프 시대의 특징은 잔인한 스탈린 시대의 숙청을 청산하고 공포로부터 해방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뒤를 잇는 브레주네프는 당의 고위 간부들의 일상적인 부패, 특권 의식 등으로 대표된다.
흥청망청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시베리아 등지에서 개발된 금광과 석유 덕분이다.
국가의 발전 대신 또다른 특권층을 양산해 부패 공화국으로 전락한 소련의 몰락이 안타깝다.
뒤를 이은 고르바쵸프 역시 개혁과 개방을 통한 체질 개선을, 연방의 해체 없이 순탄하게 끌고 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뉴스에서 고르비의 몰락을 듣고 정말 의아했는데 책에서 쿠데타와 그것을 진압하고 정권을 잡은 옐친의 이야기가 간략하게 나온다.
그 후에 푸틴 시대는 실리지 않았다.
어쨌든 역자의 말대로 제정 러시아에서 시작된 20세기는 공산주의라는 전대미문의 거대한 실험을 거쳐 결국은 실패로 끝났고 21세기를 맞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이에 소련이 이룩한 평등이나 복지제도 등의 성과는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바지선을 끄는 인간 짐말이라 표현된 노동자들의 표정은, 정말로 레핀이 묘사한 딱 그 표정이었다.
<쿠르스크 현의 십자가 행렬> 역시 신앙에 특별한 복종심과 존경심을 갖고 있는 러시아 민중의 모습을 너무도 잘 표현했다.
이런 위대한 그림들이 여전히 덜 알려지고 명성이 덜 한 걸 보면, 서방 세계에서도 러시아는 변방이라는 느낌이 든다.
러시아에 대한 관심이 새록새록 생긴다.
러시아정교라는 독특한 신앙심과 사회주의 체체야 말로 러시아를 이해하는데 필수 요소가 아닐까 싶다.
이 흥미로운 거대한 나라에 대해 좀 더 많이 알아보고 싶다.
다큐 포토 세계사의 다른 시리즈도 봐야겠다.
러시아 못지 않은 전제주의 국가 중국 편도 흥미롭고 히틀러의 나라 독일 편도 괜찮을 것 같다.
감자 대기근으로 대표되는 아일랜드 편도 뭔가 찡한 사연들이 많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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