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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에 속지 마라 - 과학과 역사를 통해 파헤친 1,500년 기후 변동주기론
프레드 싱거.데니스 에이버리 지음, 김민정 옮김 / 동아시아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몇 년 전에도 비슷한 논조의 책을 읽은 기억이 난다.
어쨌든 나는 헤게모니 장악을 위해 명분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혐오하기 때문에 환경을 빌미로 3세계의 공업화를 막는 것은 절대 반대다.
어쩌면 저자의 말대로 일정 수준의 경제력에 도달해야 비로소 환경 보호를 시작할 수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아프리카 기아 문제는 좀 더 많은 기부를 하고 NGO 들이 노력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에서 해방되는 분명한 가시적 성과가 있기 때문에 지지하지만, 내가 지구 온난화에 대해 미심쩍은 시선을 보내는 것은 이 책에 나온대로 정말로 화석연료의 사용이 기후 변동을 일으켜 해안선을 상승시키고 빙하를 녹게 하며 야생 동물을 멸종시키는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의 입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는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논쟁할 만한 근거를 완벽하게 갖추진 못했지만 어쨌든 중요한 것은 환경 보호라는 명분 때문에 3세계의 산업 발전을 막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거야 말로 정말 사다리 걷어차기가 아닐까 싶다.
유기농법을 쓰면 단위 면적당 생산량이 줄어들고 60억이나 되는 인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더 많은 개간지가 필요하다.
개간지의 확충은 야생 동물의 터전을 뺏고 삼림을 계속 줄인다.
살충제와 화학비료, 관개농법, 심지어 유전자 변형 작물들이 전 세계의 기아를 해결해 왔음은 너무 당연한 일인데 특정 명분을 위해 명백한 이득을 별 거 아닌 것으로, 혹은 잃어버린 것을 지나치게 확대시켜 과장하는 주장은 경계해야 한다.
농약 안 친 유기농이 훨씬 비싸고 (정말 유기농인지 어디까지를 유기농법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호하지만) 부자들만 사 먹을 수 있다는 사실만 봐도 일부 환경보호론자들의 극단적인 주장은 회의적인 눈으로 봐야 한다.
저자의 주장은 간단하다.
화석연료의 사용으로 인한 이산화탄소의 배출은 기후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고 현재의 지구 온난화는 대략 1500년의 주기를 가지고 변하는 자연적인 기온 상승이며, 더 중요한 것은 지구가 따뜻해지면 한랭기 보다 생물이 번성하기가 더 낫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얼어 죽는 사람이 더워 죽는 사람보다 많다는 얘기다.
이산화탄소가 많아지면 식물들의 광합성도 훨씬 쉬워지고 농작물의 생육 가능 위도도 올라간다.
생물들이 살 수 있는 환경의 범위도 커진다.
가뭄은 비단 온난기에만 오는 게 아니라 한랭기 때도 잦으며 오히려 소빙하기 때 날씨가 추워지면서 강수량이 부족해 가뭄으로 대흉년이 왔고 추워서 집단으로 모여 있다 보면 페스트 같은 전염병도 창궐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로마나 고대 중국의 번영은 1500년 전의 온난화 덕택이고, 중세 온난화 이후 소빙하기 때 농업 생산량이 급감하고 마야인들도 도시를 버리고 정글로 들어갔다고 설명한다.
미국이 교토 의정서에 서명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이 온실효과 이론의 헛점 때문임을 이해하겠다.
저자에 따르면 오히려 기후 변화는 태양의 흑점 변화 등에 좌우된다.
많이 비치면 기온이 올라가고 적게 비치면 우주 광선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막이 줄어들기 때문에 구름층 형성이 많아져 기온이 내려간다는 것이다.
날씨 변화를 아직도 정확히 예측하지 못하는 걸 보면, 미래의 기후가 어떻게 바뀔지를 너무 앞서서 내다보는 것도 크게 신뢰가 안 가기는 한다.
저자는 기후 변화 모델 자체가 엄청난 변수들을 다 수용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환경론자들은 이산화탄소 배출 때문에 화석연료의 사용을 줄이자고 하지만 정작 이산화탄소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 원자력 발전소 건설은 또 반대한다.
풍력이나 태양력 같은 대체 에너지는 효율성이 너무 떨어지고 엄청난 돈이 들 뿐더러 현대의 편리한 생활을 유지할 만큼 충분한 에너지를 생산해 내지도 못한다.
저자의 직접적인 표현대로 지구 보호를 위해 이틀에 한 번씩만 차를 타자고 하면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동참할 수 있을 것인가?
과소비를 줄이는 것과 기술 발전으로 인한 편리한 생활을 포기하는 것은 명백한 차이가 있다.
또 환경 보호를 위해 유해한 배기가스 등을 줄이는 것과 화석연료 사용 자체를 죄악시 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저자는 온실가스 이론 때문에 기후학자들이 엄청난 연구 기금을 타내고 있고 해양학자들은 반대로 온난화로 인해 해류 변동이 생기면 급격한 한랭화가 올 것이니 대비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을 달라고 요구한다고 지적한다.
환경단체와 언론 역시 이 명분을 위해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발언권을 높이고 많은 자금을 운영한다.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 에서 읽은 바대로 자선단체들은 성과를 명백하게 보여 줘야 한다.
환경단체 역시 가시적인 성과를 시민들 앞에 보여 줘야 하고 제약을 가했을 경우 반대로 그것 때문에 피해를 볼 수 있는 더 가난한 이들을 위한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막연한 공포를 조장해서는 안 되고 정말 과학자들이 공개적인 토론을 거쳐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얻는 것과 잃는 것을 냉정하게 따져서 이득이 되는 쪽을 선택해야 한다.
100% 다 좋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환경단체들은 전문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좀 더 귀기울여야 하고, 확실치 않은 미래의 일에 지나치게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야 한다.
정말 지구와 가난한 이들을 사랑한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