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 Black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블랙, 재밌다는 얘길 듣고 기대를 했는데 정말 실망시키지 않았다.  
시간이 안 맞아서 볼까 말까 하다가 봤는데 정말 보길 잘했다.
지난 번 <슬럼독 밀리어네어>도 정말 재밌었다.
헐리우드와는 다른 스타일, 빠른 전개, 강렬한 음악과 영상.
사실 인도 영화는 제대로 보지도 않았으면서 막연하게 수준이 낮아도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로 몇 편을 보고 나니까 정말 헐라우드 영화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무엇보다 영화와 음악의 어우러짐이 정말 환상적이다.
이번 영화에서도 음악을 어쩌면 그렇게 잘 표현했는지,  큰 극장에서 스테레오 빵빵 틀어 놓고 보는 맛이 났다.
실화라고 알려졌는데 알고 봤더니 헬렌 켈러와 앤 셜리번 선생의 이야기를 각색한 거라고 한다.
헬렌 켈러는 그냥 막연히 장애를 극복한 사람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 보니까 단순히 대단하다, 이런 선에서 끝날 사람이 아니었다.
어둠의 세계,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깜깜한 블랙의 세계.
나처럼 활자 중독인 사람에게 볼 수 없다는 건 어떻게 상상을 해 볼 수 조차 없는 그런 세상일 것이다. 

미셸이 처음으로 단어의 의미를 깨달았을 때 이건 정말 온 우주가 진동하고 광명이 찾아온 천지가 개벽한 날이었을 것이다.
입모양을 흉내내서 드디어 엄마와 아빠를 인식하고 발음했을 때 부모가 그녀를 끌어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순간은 나도 모르게 탄식이 흘러나왔다.
어머니는 강하다고 했던가.
모성애는 정말 아무리 찬양을 해도 부족한 것 같다.
오직 장애아 딸만을 위해 살아온 어머니, 배우의 연기도 정말 뛰어났다.
여태까지 인도 사람들에 대해 경제력이 낮다고 한 수 아래로 생각했던 점, 정말 후회한다.
영화를 통해 이렇게 문화적 편견이 수정될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미셸이나 선생님 역을 맡은 배우는 인도 최고의 배우라는데 정말 연기 잘 한다.
그 선생님 역의 배우가 <슬럼독 밀리어네어>에서 주인공이 싸인을 받으려고 했던 바로 그 배우라고 한다.
인도인들에게 영화배우의 위상은 대단하다고 한다. 

2시간에 걸친 상영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고 기승전결도 정말 잘 만들어졌고 최근에 안 졸고 본 드문 영화가 됐다.
어떤 영화평에서 이것보다 <오아시스>가 났다고 하는데 영화를 이끌어 가는 서사 구조의 힘은 오히려 <블랙>이 훨씬 위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에 대학을 졸업하면서 미셸이 했던 수화 연설은 정말 최고였다.
어둠에 함몰되지 않고 빛의 세계로, 지식의 세계로 세상과 대화하면서 신이 주신 삶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고 사는 그녀.
한 가지 안타까웠던 점은, 미셸이 여자로서 사랑의 욕구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선생과 제자의 사랑은 불가능한 것일까?
네티즌 평을 보니 이 부분이 오버라고 지적한 사람들이 많던데, 장애아도 충분히 욕구를 느낄 수 있고 그 부분에 대해서도 세심하게 배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건드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닐까?
별 결론없이 선생님이 떠나는 걸로 처리해서 아쉬웠다. 

또 하나 꼭 기록하고 싶은 것은 미셸 집의 그 엄청난 부유함이다.
저택이 얼마나 크고 화려한지 정말 감탄했다.
영화 내용과는 별개로 저렇게 크고 화려한 집을 가지려면 대체 얼마나 돈을 벌어야 하나 감이 안 잡힌다.
<어둠 속의 댄서> 라는 영화에서는 한 여공이 시력을 잃어가면서 그나마 있던 사회적 지위와 재산마저 다 뺏기는 처참한 과정이 그려진다.
미셸은 비록 태어나면서부터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지만 부모의 경제력 때문에 장애를 극복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자신을 지켜 줄 완벽한 부모와 재산이 있다는 사실이 장애와는 별개로 얼마나 큰 축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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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09-09-06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단을 보면서, 쓸쓸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 집안이 부유하지 않았다면, 저런 헌신적인 선생님을 만날 기회조차 못 잡지

않았을까 해서....

marine 2009-09-09 0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일단 돈이 있어야 선생님을 모셔 오든지 말든지 하죠. 어쩔 수 없이 돈이 핵심이라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