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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 마네 ㅣ Taschen 베이직 아트 (마로니에북스) 24
질 네레 지음, 엄미정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6년 4월
평점 :
뮤지엄 샵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좋아하는 화가들을 시리즈로 연이어 읽어 봐야겠다 마음 먹고 있던 차에 도서관에서 발견한 후 첫 타자로 마네를 골랐다.
가장 근대적인 화가, 도시적이고 인상파의 시작을 알리며 무엇보다 색체 그 자체로 말하는 강렬한 평면성과 명암 대비의 일인자!
검은 색이 주는 놀라운 신비로움을 이렇게도 명확하게 보여주는 화가가 또 있을까.
마네는 정말로 딱 내 스타일의 화가다.
한가람 미술관에서 작년에 열렸던 인상파 展 에서 봤던 <피리부는 소년>의 감동이 잊혀지지 않는다.
오르셰 미술관이 하필 휴관일일 때 파리에 가는 바람에 위대한 프랑스의 근대 화가들을 보지 못했던 게 그 때처럼 아쉬울 때가 또 있었을까.
이 책은 프랑스인 큐레이터가 직접 쓴 책이라 그런지 막연한 찬양과 에피소드 대신 정말 작품 위주의 간결한 논평으로 구성됐다.
자잘한 에피소드 대신 정말 작품에 대한 해설을 위주로 설명하기 때문에 약간 현학적이라는 느낌도 들고 지루한 부분도 있었으나 일단 분량이 워낙 짧기 때문에 집중해서 금방 읽을 수 있다.
무엇보다 도판이 너무 아름답다.
덜 알려진 그림들도 많이 실려서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괜찮은 시리즈 같고 다른 관심있는 화가들도 읽어 봐야겠다.
한 가지 궁금했던 점은 마네와도 친했던 여류화가 베르트 모리조가 많은 구혼자를 물리치고 외젠 마네와 결혼했다는데 그녀는 정략적 결혼이라 여겨 불행했다고 한다.
이 깊고 그윽한 눈을 가진 우아한 여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테라스에서 햇빛을 받으며 눈부시게 하얀 원피스를 입고 앉아 있는 그녀의 초상화는 정말 사람의 마음을 흔든다.
마네는 수정도 별로 하지 않고 한번에 쓱 붓 가는대로 그렸다는데 나중에 그의 제자가 된 에바 곤잘레스는 수백번을 고쳐 그리고 또 그렸다고 한다.
그는 말 잘 듣는 에바를 총애하여 베르트가 질투했다고 하는데 그림의 분위기로 봐서는 감히 베르트와는 비교가 안 된다.
크게 확대해서 본 그림 속의 베르트는 정말로 우수 가득한 눈망울을 가졌고 때이른 죽음과 연관되어 더욱 비극적이고 슬퍼 보인다.
나는 그녀의 초상화들이 정말 마음에 든다.
마네의 아버지는 직위가 높은 판사였고 어머니는 외교관 딸이었다고 한다.
성공한 부르주아 상류층 계급이었던 셈.
해군 학교를 가려고 했으나 낙방하는 바람에 재능을 보이던 미술로 돌아섰고 올랭피아 등으로 화단에 충격을 주면서 살롱에 입선하는 대신 원하지 않던 인상파의 우두머리라는 칭호를 얻게 된다.
당대의 댄디이자 멋쟁이 신사였다는 저자의 표현이 마네의 이미지와 딱 들어맞는다.
시골 풍경을 그리기 좋아했던 모네와는 달리 (이름도 비슷해 마네는 불쾌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마네는 철저하게 도시인이었고 풍경은 그저 인물을 드러내기 위한 배경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또 인물 주변에 있는 정물화에 매우 공을 들여 또다른 미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가 자신에게 우호적이었던 에밀 졸라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함께 묘사한 방의 집기들은 놀랄 만큼 세밀하고 그가 정물화에도 뛰어난 재능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나중에는 모네에게 이끌려 아르장퇴유 같은 곳으로 장소를 옮겨 배를 타고 본격적으로 외광회화를 시작한다.
강렬한 태양빛에 반사된 새파란 바다색은 당시 기준으로 보면 너무나 직설적이고 천박했을 것 같지만 21세기의 관객에게는 가슴이 뛰는 색체의 美를 선사한다.
초기의 얌전한 인물화들도 좋지만 후기로 가면서 더욱 대담해진 색채 감각과 거친 붓질은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 같은 명작을 남긴다.
그가 매독으로 다리를 절단한 후 그 해에 죽었다는 사실은 90 가까이 산 모네나 르느와르, 피카소, 마티즈 등에 비하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명성을 얻으면서 주변에 여자가 많았다고 한다.
마네의 아내는 동생과 자신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던 네덜란드인 과외 선생, 수잔 렌호프였는데 오랜 시간 동안 동거를 하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결혼했다는 얘기를 다른 책에서 봤었다.
무척 아름답고 착하고 교양있는 여인이었다는데 큰 아들이 사생아로 마네의 아들로 알려졌으나 확실치 않다고 한다.
그 아들이 등장하는 그림도 그가 입고 있는 검은 양복과 대비되어 무척 인상적이었다.
렌호프와의 결혼 얘기가 책에 안 나와 아쉬웠다.
얼마 전에 재밌게 읽었던 김광우씨의 모네와 마네를 비교한 책을 다시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