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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 이야기 - 개정판
권동희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역시 나는 공간 개념이 약하다.
공간을 기술하는 것보다는 역사나 사회 같은 인문학 이야기가 훨씬 읽기 편하다.
가벼운 내용인데 집중을 쉽게 못하고 자꾸 뒷장을 들썩였다.
책을 읽을 때 제일 행복한 것은, 딴 생각이 안 들 만큼 완전히 빠져드는 것인데 (그래서 심지어 내가 여태까지 이런 것도 모르고 어떻게 살았을까 한탄할 정도로) 이 책은 대체 내가 왜 시간을 내서 이걸 읽고 있어야 할까 의문스러울 만큼 집중을 못했다.
인문학적인 지리 이야기일 줄 알았는데 앞부분은 자연과학적인 설명이 많다.
사진도 많고 개정판이라 그런지 디자인도 비교적 잘 되어 있는 편인데도 아주 흥미롭게 읽지는 못했다.
그러나 다른 관련 서적을 읽는다면 그 때는 이 책에서 얻은 지식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흥미로웠던 부분은 지리 변화가 문명의 흥망성쇠를 이끌었다는 가설이다.
따지고 보면 고대 문명이 큰 강 주변에서 일어난 것이나 곡식의 북방 한계선이 유목과 농경 사회 여부를 결정하는 것 등 주변 환경이 인간의 생활상을 결정해 왔다.
당장 우리나라만 해도 대륙과 해양 세력 중간에 낀 반도 국가의 숙명론 얘기가 나오지 않는가.
그런데 한 가지 재밌는 건 고대 4대 문명이 5500년 전에 일괄적으로 일어난 이유가 갑자기 불어닥친 한랭화 때문이라는 것이다.
갑자기 추워지니까 강수량이 줄어들고 주변이 건조화 되면서 농경지를 잃게 되니까 큰 강 주변으로 몰려 들었다.
이미 정착해서 살고 있던 집단은 새로운 유랑민들과 합심하여 국가를 이루었고 이들의 노동력으로 피라미드 같은 거대한 건축물을 만들었다고 한다.
한랭화와 고대 문명의 기원설은 좀 색다른 접근 같다.
크레타 문명이 3000 여년 전에 느닷없이 붕괴된 것도 갑작스런 화산 폭발 때문인데 이 때 화산재가 홍해까지 미쳐 모세가 이집트에 내린 열 가지 재앙이 일어났다는 학설도 제기한다.
모세의 출애굽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는 최소설을 지지하는 내 입장에서는 끼워 맞추기식 해석 같지만 하여튼 지리 변화가 문명의 흥망성쇠를 이끈다는 이론은 공감이 간다.
풍수에 대해서도 과학적으로 접근한다.
항상 헷갈렸던 좌청룡 우백호나 배산임수 등의 개념이 서울을 중심으로 찬찬히 설명하니까 약간 감이 잡힌다.
서울은 북쪽으로 주산인 백악산을 두고 동으로는 좌청룡 격인 낙산, 서로는 우백호 격인 인왕산, 앞으로는 안산인 남산을 두르고 있는 일종의 분지이다.
남산 바깥 쪽으로 한강이 동에서 서로 흘러 들어 안쪽으로 서울을 휘감아 다시 서에서 동으로 청계천이 흘러 나가는데 이 때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청계천이 바로 명당수다.
한양이 당시 어떻게 도읍으로 채택됐는지 이해가 된다.
경복궁이 풍수지리로 보면 탁월한 명당임을 알겠다.
띄엄띄엄 대충 훑어 본 책이라 제대로 못 읽은 것 같아 아쉽지만 다른 관련 서적으로 지리 이야기에 도전해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