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보급판 문고본)
올리버 색스 지음, 조석현 옮김 / 이마고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문고판으로 된 귀여운 책.
보통 문고판이라고 하면 깨알같은 글씨를 상상하기 마련인데 이 책은 두꺼운 대신 글씨가 커서 읽기 편하다.
무게도 가볍고 핸디 사이즈라 들고 다니기 딱이다.
나도 지하철에서 오가며 부담없이 읽은 책이다.
이런 문고판이 많이 출간되면 좋겠다. 

학교 다닐 때 신경학에 관심이 많아서 신경학자가 되면 어떨까 생각한 적이 있다.
그 때 주변에서 하는 말이 신경과 의사는 아는 건 많지만 실제로 고치는 건 별로 없다고 했다.
뇌에 대한 연구가 굉장히 흥미롭지만 아직까지는 환자에게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기 어려운 수준인 것 같다.
책에 나온 사례들을 읽으면서 그동안 교과서에서 얼마나 피상적으로 지식을 접했는지 새삼 느끼게 됐다.
얼굴인식불능증이나 기억상실증 환자들의 사례를 보면서 자신을 잃어 버리고 심지어 인격마저 황폐화되어 내가 누구인지 자아 정체성이 모호한 환자들의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나란 존재는 과거의 기억의 연속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동안 쌓아온 나의 이미지, 행동들, 친구들, 하는 일 등이 내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지 않다면 대체 지금 여기서 글을 쓰고 있는 나란 무엇이란 말인가?
심지어 저자는 그들에게 영혼이 있을까라고 묻기까지 했다.
TV에서 기억상실증은 흔히 다뤄지는 소재이고 책에 나온 사례만큼 고통스럽게 다뤄지지 않는다.
그저 낭만적이고 드라마틱한 사건의 소재로써 이용할 뿐이다.
진짜로 기억상실증에 걸린 환자들의 가족이 본다면 분노할 것 같다.
시각을 담당하는 후두엽에 장애가 생겨 눈은 멀쩡하게 보지만 머리에서 영상을 인지하지 못한다.
특히 사물은 비교적 잘 통합시키는데 얼굴은 부분 부분으로 인지할 뿐 하나의 인물로 통합하기 어려워 얼굴인식장애라는 진단명이 따로 생겼다.
책에 나온 환자는 음악 선생인데 목소리를 들어야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기억해 낸다.
알콜 중독에 의해 유두체가 변성되면 코르사코프 증후군이라는 기억상실증에 걸린다.
단순계산은 곧잘 하지만 복잡한 계산은 하는 도중에 앞서 하던 걸 잊어 버리는 식이다.  
책에 소개된 환자의 경우 1945년에 기억이 멈춰 있기 때문에 해군 통신병 출신답게 과학에 해박하면서도 달에서 지구 모습을 찍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는 유리 가가린이 우주를 유영하기 전에 기억이 상실됐기 때문이다.
TV에서는 재밌게 봤던 기억상실증이 실제의 환자 case로 접해 보니 너무나 안타깝고 가여웠다.
인격의 황폐화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다. 

흥미로운 소재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고 무엇보다 그저 하나의 병에 불과한 것들을 실제 환자들의 경우로 치환시켜 생생하게 그려낸 점을 높이 산다.
질병이야 말로 우리를 평생 따라다니는 가장 근본적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상 범주에 들기 때문에 기능이 손상됐을 때의 고통을 인지하기 어렵다.
책에 나온 사례들을 접하다 보면 일반적인 의미의 건강은 물론이고 신체의 기능 손상 없이 지각하고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다.
1985년작이라 좀 더 최신작들을 읽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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