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의 사기꾼들 - 노벨상 수상자의 눈으로 본 사이비 과학
조르주 샤르파크 외 지음, 임호경 옮김 / 궁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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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도서관에서 본 책, <신비의 사기꾼들>
솔직히 아주 재밌지는 않았다.
저자들의 저술 솜씨가 주제 못지 않게 중요함을 새삼 느끼게 한 책이다.
편집도 좀 그렇고...
그렇지만 이 책의 주제에는 120% 공감하는 바다.
유리 겔러의 사기 행각이야 만천하에 공개된 바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텔레파시니 염력이니 하는 것의 실체가 얼마나 어처구니 없고 허망한지를 이 책은 잘 보여준다.
저자들의 말마따나 개인의 정신 수양을 위해 종교와 기타 다른 명상법을 이용하는 것은 얼마든지 환영하고, 과학이나 사회가 전혀 관여할 바가 못 된다.
그러나 그것을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주변에 영향력을 미치려고 한다면 우리는 단호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대체 왜 성경은 과학이라고 주장하는가?
성경을 경전으로, 상징으로, 신앙생활의 지침서로 이해한다면 종교과 과학이 대립될 일이 없을 것이다.
초자연적인 현상들을 과학의 이름으로 포장하여 과학의 권위를 빌어 대중들에게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행태를 보고 있으면 기독교라는 종교 자체에 대해 회의가 든다.
다행히 가톨릭은 책에 나온 바대로 진화론을 받아들이고 과학과 대립하는 관점에서 탈피했으나 여전히 개신교의 비과학적이고 비이성적이며 교조주의적인 관점은 과학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개인의 체험은 근거가 될 수 없음을 저자들은 명확하게 지적한다.
왜냐면 체험은 사건으로서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기억으로서 작용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꿈을 꾸면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듯 우리는 부분부분 이미지로 기억되는 잔상들을 모아 줄거리를 구성한다.
망막에 남아 있는 잔상 효과가 이미 알고 있는 것들로 전체를 구성하는 역할을 하고 이것이 정지되어 있는 화면을 빨리 넘기면 움직이는 영상이 되는 영화의 원리이기도 하다.
대체 외계인은 왜 항상 직립보행을 하고 팔다리가 있고 인간과 그렇게도 비슷하단 말인가?
결국 칼 세이건이 지적한 바대로 인간의 상상력의 한계가 바로 자연계 내에 있기 때문이다.
염력 등은 과거에 비해 강도는 크게 줄어들고 있으나 (옛날에는 큰 거상을 옮겼다면 현대에는 겨우 숟가락 구부리는 정도) 대신 미디어의 힘을 빌어 엄청난 파급 효과를 갖는다.
저자들은 미디어의 역할과 폐단에 대해 따끔한 일침을 놓는다.
시청률 때문에 중립성의 위치를 포기하고 검증되지 않은 흥미 위주의 사건들을 마치 확인된 사실인양 보도하는 행태는 도덕성의 해이라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전생을 본다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왠 주술사가 등장해 연예인들에게 최면을 걸고 당신의 전생을 말해 보라고 하자 다들 술술 잘도 풀어 냈으나 결국 다 거짓말이었음을 몇 년 지나서 고백했다.
미스테리 극장 어쩌고 하는 것도 그저 개인들의 체험을 모아서 적당히 신비롭게 포장해서 방송하는데 이 초자연적인 체험이란 것들이 정말로 자연계의 일반 법칙을 벗어나는 신비로운 것이 아니라, 실상은 개인의 상상력과 인지 능력, 지각의 변이가 합쳐저 생긴 현상에 불과하다.
문제는 이런 것들을 이용해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려고 하는 집단이 있다는 것이다.
사이비 교주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역술가니 예언가니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저자의 말대로 자연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놀라운 경이를 보여 주고 있고 초자연이라는 단어 자체가 어쩌면 자연의 능력을 제한하는 건방진 표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저자들의 그 연대의식이 마음에 든다.
환경오염의 해결책은 빈곤한 국가들에 대해 연대의식을 가지고 기아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함께 노력할 때 해결책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빈곤의 종말>에서도 주장한 바대로 기아에 허덕이는 3세계 국가들의 공장 굴뚝 연기를 대체 무슨 거창한 논리로 막을 수 있단 말인가?
유전자 변형 식품에 그렇게 벌벌 떨면서도 막상 3세계 국민들의 식량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해결책을 가지고 있는지?
환경단체의 자정 노력이 필요함을 인정하면서도 일부 단체들의 말 뿐인 말, 해결책 없이 헤게모니 장악을 위해 무조건적인 발전 저지, 옛날로 돌아가자, 자연으로 돌아가 유기농만 먹자, 이런 작태를 보고 있으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인구가 곧 90억을 넘을 거라고 하는데, 핵처리물의 폐기가 위험하다는 이유로 원자력 에너지 발전을 저지하려고 하지만, 3세계 국가의 국민들도 소비문화를 즐기고 싶어 한다.
물의 비등점 조차 아들에게 설명하지 못하는 위인이 핵폐기물 처리법이 어쩌고 주장하는 행태를 비웃는 저자들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된다.
환경오염의 선행조건은 3세계 국가들에 대한 연대의식임을 깊이 공감하는 바고, 지적독재를 피해야 하나 그것이 일부 자격없는 선동가들에게 헤게모니 장악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서는 안 됨은 너무나 당연하다.
교육이야 말로 독재를 막는 가장 중요한 수단임을 새삼 확인하는 바다.
과학자들을 두려워 할 게 아니라, 선동가들의 교묘한 술책을 파악하기 위해 더 애써야 할 것이다.
왜냐면 그들은 대중에게 공포심을 줘서 개인적인 이득을 챙기려는 족속이기 때문이다.

 
노벨상 수상자라는 명성에 걸맞게 단호하고 직접적인 어조로 사이비 과학, 의사과학, 선동가들에 대한 독설을 날리고 근거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으나 전체적인 완결성은 떨어지는 편이다.
확실히 글을 잘 쓰는 것은 학문적 완성도와는 별개의 능력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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