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서 영원으로 : 수퍼비트 (dts) - 할인행사
소니픽쳐스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언젠가 TV에서 한 걸 본 기억이 있는데 막연하게 군대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상사가 덮어 준다는 내용으로 기억했다.
그런데 막상 다시 보니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살인 사건도 분명히 일어나고, 워든 중사가 탈영한 프로이를 상부에 보고하지 않는 것도 사실인데, 그게 핵심 줄거리가 아니다.
아마도 어렸을 때 볼 때는 흑백 영화라서 제대로 집중하기 힘들었던 것 같다.
이 영화는 책으로 다시 보고 싶다.
마침 열린책들에서 예쁜 표지로 출간되서 영화를 보기 전부터 읽고 싶던 책 중 하나였다.
영화는 좀 미묘한 분위기인데 줄거리 보다는 매지오나 프로이, 워든 등의 등장인물 캐릭터에 초점을 맞춘 느낌이 든다.
책 해설을 보니 당시 미 육군의 군대 폭력 실상을 고발하는 책이라고 한다.
그만큼 리얼하고 하층 계급의 언어도 가공하지 않고 그대로 글로 옮겨 상당히 논란의 대상이 됐다고 한다.
번역이라는 어쩔 수 없는 한계 때문일까?
대사만 가지고는 도저히 당시 군인들의 상황을 짐작할 수 없다.
다만 이탈리아인이라고 모욕을 주는 뚱보 상사에게 분노할 뿐.
옛날 명배우들을 만나는 즐거움은 있었다.
프랭크 시나트라가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 조연상을 받았다고 하는데 얼굴을 모르니 누굴까 영화 보는 내내 궁금했다.
프로이 역의 몽고메리 클리프트는 얼굴을 아니까 아닐 것이고, 워든 중사는 조연이 아니라 거의 주인공이니 아닐 것 같고, 설마 매지오?
그런데 바로 그 매지오가 프랭크 시나트라였다.
너무 못생기고 왜소해서 처음에는 좀 실망스러웠다.
워든 중사는 버트 랭커스터라고 들어 본 배우인데 꽃미남 스타일의 자그마한 몽고메리 클리프트 보다는 체격도 건장하고 더 남성답게 나온다.
이 사람은 왜 장교가 되는 걸 싫어할까?
영화만 가지고는 솔직히 이해가 잘 안 된다.
누구보다 리더쉽이 뛰어난 사람인데 말이다.
홈즈 중대장이 프로이를 괴롭힌 게 상부에 발각되어 진주만 기습 직전에 불명예 제대하는 장면은 정말 통쾌했다.
이런 점도 한국의 현실에 비춰 볼 때 앞서가는 인권의 한 장면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어찌 됐든 병사를 괴롭힌다 할지라도 최소한 구타는 없었다.
1940년대의 군대가 말이다.

프로이의 나팔 소리는 정말 구슬프고 멋있었다.
특히 매지오가 죽은 후 혼자 연병장에서 나팔을 불 때 가슴이 찡했다.
밑바닥을 전전하는 자신을 받아주고 나팔을 가르쳐 준 군대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프로이!
일본군의 진주만 기습 후 탈영병에 살인범이라는 위험한 신분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한 사람의 힘이라도 보태기 위해 군대로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은, 죽음을 예고하는 마지막 장면이라는 암시를 충분히 줄 만큼 비장하고 비극적이었다.
불안정한 신분의 사병과는 결혼할 수 없다는 애인 엘마가 당신이 하자는대로 하겠다고 울면서 말렸기 때문에 더욱 그것이 마지막임을 알 수 있었다.
어처구니 없이 일본군도 아닌 아군의 총에 첩자로 오인받아 죽고 만 프로이.
정말 끔찍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영창에서 죽고 만 매지오처럼 전쟁과는 별 상관없는 군대 내 부조리의 결정타가 아닐 수 없다.
그러고 보면 인생은 예측할 수 없는 작은 사건 하나가 전체의 삶을 결정하는 방향타가 되곤 한다.
만약 외출하던 날 매지오가 조금만 더 일찍 준비해서 프로이와 함께 나가 버렸다면, 헌병의 눈에 띄어 보초를 서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그랬다면 괜히 도망가서 술집에 있다가 붙잡히지도 않았을 것이고, 또 그랬다면 영창에 갈 일도 없으니 뚱보 중사의 구타를 당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매지오가 죽을 일도 없고, 프로이가 그의 복수를 하기 위해 중사를 죽일 일도 없고, 그랬다면 그토록 사랑하는 군대를 탈영할 일도 없고, 적어도 아군에게 오인받아 죽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최소한 일본군 총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적의 총에 맞아 죽는 것과, 같은 편 군인의 총에 오인 사살되는 건 명예와 삶의 의미 면에서 하늘과 땅 차이가 아닌가?

워든 중사의 연애는 아슬아슬한 면이 많다.
누구보다도 남자답고 군인답게 나오는 그가 왜 상관의 아내를 탐냈을까?
불행한 결혼 생활 때문에 피폐해져 가는 그녀가 안타까웠을까?
이 매력적인 여배우의 이름은 말로만 듣던 데보라 카이다.
짧은 금발이 매혹적이고 몸매도 자그마 하지만 꽤나 글래머다.
두 사람의 해변가 파도 위 키스씬이 유명하다고 하는데 솔직히 흑백이라 그런지 에로틱 하지도 않았고 난 좀 지루했다.
그녀는 매우 바람끼가 다분한 여자로 나온다.
실제로는 정숙한데 바람둥이로 주변에 알려져 그녀를 사모하는 워든에게 주변 사람들이 충고한다.
워든은 정말로 이 여자를 사랑한 것 같은데 장교가 되지 않겠다는 이유로 헤어진다.
대체 왜?
이 부분은 책으로 확인해 봐야겠다.
그러고 보면 영화가 책을 뛰어넘기는 참 힘든 것 같다.
영상으로 이미지를 만들어 내다 보면 인간의 심리 상태를 압축할 수 밖에 없고 어쩔 수 없이 사건 위주로 간다.
그 안에 생략된 함축적 의미들을 제대로 알아채기란 참 어렵다.
그런 면에서 영화 역시 하나의 예술 장르란 생각이 든다.
무려 세 권으로 출간됐던데 꽤 분량이 되는 책인가 보다.
하여튼 원작이 있는 책은 두 가지를 비교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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