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것은 싫다
조홍식 지음 / 창비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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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온지 꽤 된 책이라 아직 유럽연합 얘기도 없다.
정치적인 면에서는 시의성에서 떨어지는 편이다.
외국 생활 몇 년 한 다음에 마치 유학생 와이프처럼 신문도 잘 안 읽고 그저 미국 유치원은 어떻더라, 동네 아줌마들은 어떻더라, 이런 수준의 체류기는 정말 신물이 나기 때문에 가급적 선택을 자제하는데, 이 책은 일단 창비라는 출판사가 믿음직스러웠고 저자가 프랑스에서도 정치학을 전공한 사람이라 신뢰감을 가지고 골랐다.
전체적인 느낌은 썩 만족스러운 건 아니지만 그런대로 읽을 만 했다.
저자의 후기에도 나오는 바지만 객관적인 근거를 가지고 공평하게 한 문화를 바라본다는 건 참 어려운 일 같다.
그래도 저자는 학문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인지 비교적 공정하게 비판적으로 프랑스 사회를 분석하려고 애썼다는 느낌이 든다.
외국인이 한국 사회를 분석한 글을 읽으면 수박 겉핣기다, 혹은 정형화된 편견에 사로잡혀 그 틀에 맞춰서 본다, 이런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는데 역시 타 문화권에 대한 책도 선진국일 때는 동경을, 후진국을 때는 한 수 아래로 접어서 동정과 연민을 남발하게 된다.
따지고 보면 한 사회를 전체적으로 아우른다는 시도 자체가 무모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분위기 정도는 잡아낼 수 있다고 본다.
이를테면 책에 나온대로 한국인은 체면을 중시하고 프랑스는 양심을 우선시 한다.
체면과 자본주의의 천박한 결합이 바로 오늘날 한국사회의 고질적 병폐가 아닌가?

프랑스인의 기질 중 가장 호감이 가는 것은 바로 취향의 다양성이다.
남들 하는대로 따라 하면 중간은 간다는 우리 속담과는 다르게 이들은 몰개성을 가장 두려워 한다.
확실히 한국은 집단 문화가 대세인데 비해 유럽 쪽은 개인주의가 훨씬 발달한 느낌이 든다.
벨기에에서 온 여대생이 주간지에 기고하기를, 한국인들은 동성애자를 혐오한다는 발언을 공개 석상에서 노골적으로 한다고 비난했다.
누구나 자기 신념에 맞춰 좋고 싫고가 있을 수 있지만, 공개적으로 드러내느냐 여부는 적어도 사회가 통용하는 정의감의 기준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성애를 싫어할 수 있지만 공개적으로 그들을 비난하고 여론몰이를 한다는 건 개인의 인권과 자유라는 더 큰 원칙에 위배된다.
이런 걸 좀 더 지키는 쪽이 프랑스 같다.
선진국이란 경제적 부도 중요하지만 정치적 자유도 있어야 하며 개인의 삶이라는 작은 틀로 볼 때는, 간섭받지 않을 권리, 취향을 존중받을 수 있는 권리라고 생각된다.

프랑스의 엘리트주의에 대해서는 솔직히 반신반의다.
저자의 말마따나 명분과 현실 사이의 거리를 당연시 하여 입으로는 평등 외치면서 실제로는 불평등을 가장하는 한국 사회도 문제가 있지만, 그렇다고 스무 살 때 입학한 대학으로 평생이 결정되는 프랑스 사회도 뭔가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스무 살은 과연 그 사람의 평생 능력을 결정지을 가장 중요한 순간일까?
유럽 사회가 안정되어 있기 때문에 계급 상승이 어렵다는 말은 종종 들었다.
반면 한국 사회는 여전히 노력하면 상층부로 올라갈 수 있는 역동적인 사회라고 한다.
그래서 무시무시한 치맛바람과 미친 사교육 열풍이 난립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계층 이동이 어려운 사회는 뭔가 이건 아닌데, 싶다.
엘리트가 이끄는 사회, 일견 능력주의로 당연한 것 같은데도 심정적으로 완전히 공감하기 힘들다.
마치 인간의 기본권이 점차 향상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듯 이런 엘리트주의, 능력위주 원칙도 진보될 여지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방법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때때로 선진국을 부러워 하는 것은, 그들이 누리는 경제적 여유와 자유로운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뭔가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일종의 희망을 제시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왕정 시대에 미국의 민주주의가 진보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처럼 더 나은 사회 제도와 분위기가 있다는 가능성, 그것을 먼저 현실로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희망을 갖게 된다.
그래서 가장 진보됐다고 알려진 미국 사회가 무너지는 걸 보면 한숨이 나온다.
대체 우리가 사표로 삼아야 할 모델은 그저 머릿속에나 있단 말인가?

300 페이지 정도로 분량도 짧고 내용도 평이해 쉽게 읽을 수 있었다.
경제력은 미국이나 일본에 뒤질지 몰라도 여전히 프랑스는 문화 대국이고 개인의 자유나 인권 등의 문제에서 앞서 가는 나라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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