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고대 - 아시아연대총서 5
이성시 지음, 박경희 옮김 / 삼인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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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왕비문에 대한 관심 때문에 다시 읽게 됐다.
220 페이지 밖에 안 되는 얇은 책이지만 내용은 알차다.
재일 사학자라는 저자의 신분 때문인지 일본과 한국 역사에 대해 상당히 객관적인 관점을 취한다.
궁극적으로는 일국사의 관점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고대사를 제대로 복원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누누히 언급되어 온 바지만, 민족이나 국사라는 개념이 생긴 것은 기껏해야 19세기 말이고, 일본은 서양에 대해, 조선은 일본에 대해 대립항으로써 자기 규정을 위해 민족과 국사를 개발해 낸 것이므로 21세기의 정체성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강변한다.
역사학이 국민교화에 이용된다는 어느 학자의 지적은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말 같다.
임지헌 교수가 고구려사를 변경사로 보자는 제안을 했는데 그에 대한 반론으로 만약 제 민족의 역사로 챙기지 않는다면 누가 그 역사를 의미있게 여기고 연구하고 발굴하겠냐고 현실적으로 무가치하다는 말을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국사를 넘어서자는 주장은 민족주의 역사관에서 한 단계 나아가는 방향임이 분명하다.

다시 한 번 확인한 바지만, 광개토대왕비문 조작설은 말 그대로 음모에 불과하다.
일본인 대위가 발견하기 전에 이미 먼저 뜬 탁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있지도 않은 주어와 목적어를 일부러 집어 넣어 고구려 쪽으로 유리하게 해석하려는 한국 학계의 시도에 반대한다.
오히려 비문의 전체적인 형식으로 봤을 때 당시의 위급한 상황을 강조한 다음, 이렇게 힘든데도 불구하고 왕이 직접 친정하여 적을 섬멸했다는 방식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왜가 한반도로 넘어와 침략한 것은 사실이고, 위급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왕이 친히 군사를 이끌고 남쪽으로 내려가 왜를 물리쳤다고 본다.
일본에서도 광개토왕에게 패한 것은 사실로 받아들이고 그 때문에 대륙 진출이 좌절됐다고 해석한다.
중요한 것은 왜가 한반도에 침임했다고 해서 그것이 한반도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의 증거가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이런 주장이야 말로 식민지 시대 내선일체를 주장하기 위해 억지로 만들어 낸 근대의 소산물에 불과하다.
또 저자는 고구려가 백제와 신라를 속국으로 삼았다는 주장도 억지라고 본다.
조공을 바치는 것은 강대국과 약소국의 차이 정도지, 정치적 지배력까지 가졌다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저자의 이런 해석이 제일 깔끔하고 무리가 없다고 본다.

저자는 수묘인들에 대해 자세히 논한 기사에 대해서도 고구려가 5부 체제를 완벽하게 극복하지 못한 예시로 든다.
이 점은 이종욱의 주장과 매우 다른데, 이성시는 계루부가 왕권을 계속 이어갔으나 끝내 부를 초월한 지배력을 갖기 못했다고 본다.
5부 체제설은 역사서에도 자주 등장하므로 합리적으로 생각해도 고구려의 절대 왕정제를 주장한 이종욱의 의견에 더 무리가 따른다.

동아시아 문화권의 책봉 체제에 대한 언급도 신선했다.
저자는 일본 학자의 동아시아 문화권 주장에 비판적이면서도 당시 한자와 한역불교, 유교, 율령 등을 매개로 베트남, 일본, 삼국 등이 책봉 의식을 통해 하나의 문화권으로 묶여 있었음을 지적한다.
책봉은 중국의 화이사상을 받아들여 예를 행함으로써 중국 문화권의 일원이 된다는 일종의 형식 의례였다.
이 때 중국 문화에 완전히 흡수되지 않음은 물론이고 오히려 수당 왕조의 권위를 빌어 각 나라들이 내부의 응집을 꾀했다고 본다.
그러므로 동아시아 문화권을 논할 때 요즘처럼 중국에 대한 굴욕감을 느낄 필요는 전혀 없다고 하겠다.
한자 역시 내부에서 글자 사용에 대한 욕구가 커져셔라기 보다는 중국과 혹은 외국과의 관계 정립에 필요했기 때문에, 즉 동아시아 문화권이라는 큰 세계에 편입하기 위해 도입한 걸로 본다.
이런 걸 보면, 고구려 역시 중국으로부터 책봉을 받아 동아시아 문화권의 일원으로 활약했음은 너무 당연한 사실이고 왜 이 점을 비틀고 왜곡해서 중국 측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해석하는지 모르겠다.

마지막에 나온 시바 료타로에 대한 비판은,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감상적 직관주의가 얼마나 허망한 얘기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막연하게 이럴 것이다, 혹은 당위성에 입각해 이렇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과연 일본이 유교 대신 법가를 취해서 가족주의를 극복하고 화폐경제를 발전시켜 개인주의와 합리주의에 의거해 오늘날의 근대화를 이뤘는가?
또 한국은 유교 문화에 함몰되어 가족주의 속에 개인과 상업을 억압하고 근대화에 실패했는가?
이런 관념론을 들을 때마다 이른바 지식인 내지는 방송인, 문화인 하는 사람들의 발언이 얼마나 무책임 한지를 새삼 느낀다.

한 가지 언급해야 할 사실은 발해에 대하여 말갈의 중요성을 부각시킨 점이다.
중국은 당의 지방 정권으로 생각하고 한국은 고구려 지배층을 강조한다.
저자는 지배층이 누구냐가 한 나라의 민족 정체성을 결정하는 일이냐고 반문한다.
또 고구려 계층이 일부 지배층에 편입될 수는 있었겠으나 기본적으로 발해는 여러 말갈 부족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성장한 나라이고 신라와는 적대적인 관계였던 반면, 당과 일본과는 활발한 교류 활동을 했다고 지적한다.
그러므로 현재 국사학계에서 남북국 시대 운운하는 것은 억지스럽다고 평한다.
과연 신라와 발해가 남국과 북국으로 나누어져 언젠가는 통일해야 할 한 민족으로 생각했을까?
그것이야 말로 현재의 남북한 분단 상황에 고대를 투영하는 비역사적인 관점이다.
나는 이 점에서 오히려 이종욱의 주장처럼, 고려는 명백히 신라의 인민과 문화를 계승했으며 신라의 통일이 갖는 의미는 훼손될 수 없다고 본다.
말갈족은 숙신, 읍루 등으로 불린 북부 말갈족과 예, 옥저 등에 살던 남부 말갈 등으로 나누는데 유목 집단이었던 만큼 다양한 부족이 있었고 후에 여진족 만주족 등으로 연결된다고 한다.
그러니 한 발 더 나가면 금나라도 한민족의 역사에 포함되야 한다는 주장도 나올 만 하다.
발해는 주로 남부 말갈 중심으로 성장했고 세력을 넓히는 과정에서 북부 말갈족, 즉 흑수 말갈 쪽을 통합해 갔다고 한다.

민족주의 역사관의 문제점은 모든 민족이 자민족 관점에서 특히 오늘날의 정세에 비춰서 당위적으로 고대를 해석하므로 통합적인 시야를 갖기 어렵다는 점이다.
근대에 투영된 고대사, 저자의 말마따나 일국사를 넘어서야 좀 더 입체적으로 고대를 복원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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