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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오브 시베리아
니키타 미할코프 감독, 줄리아 오몬드 외 출연 / 스타맥스 / 2003년 9월
평점 :
품절
오래 전 아마도 대학교 때,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봤었다.
3시간에 달하는 러닝 타임이 너무 길어 보다가 잤던 영화다.
그런데도 유독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었으니, 바로 안드레이가 기차를 타고 호송될 때 사관학교 동료들이 그가 탄 객차를 찾지 못하자 역에서 오페라의 한 곡조를 합창하던 장면이었다.
그 때 그 아리아가 어찌나 기억에 생생한지 한동안 대체 그 노래가 뭔가 무척 궁금해 했는데 이제 다시 들어 보니 <휘가로의 결혼>에 나오는, 제일 대표적인 아리아였다.
나도 모르게 따라서 흥얼거렸다.
이런 아리아를 원어로 따라 부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안드레이와 그의 동료들, 혹은 제인처럼 말이다.
그 때는 줄리아 오몬드가 너무 못생겼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꽤 귀엽고 활짝 웃는 모습이 전형적인 미국 아가씨답다.
안드레이로 나온 배우도 잘 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질투로 인생을 망치고 만 열정적이면서도 순수한 러시아 젊은이 역을 잘 소화해낸다.
비록 아무리 영화라 해도 스무 살 어린 생도로는 안 보일 만큼 나이가 먹었지만.
극장에서 볼 때는 대체 이게 뭔 영화인지 전혀 감동이 없었는데 이번에 DVD로 볼 때는 안드레이가 호송되는 역장면에서 많이 울었다.
동료들의 따뜻하지만 안타까운 배웅, 어머니와 그를 사랑하던 하녀 두리샤의 눈물, 그의 상관이었던 대위, 그리고 그를 죽음의 나락으로 밀어 넣고 만 아름다운 제인...
대체 삶이란 혹은 운명이란 뭘까?
황제의 암살범을 잡고 당당하게 황제 앞에서 임관을 한 이 젊은 장교는 왜 족쇄가 채워진 채 형벌의 땅 시베리아로 끌려 가는 것일까?
제인이 한 말, 행복할 때는 내가 인생을 지배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인생은 채워지길 기다리는 그릇 같은 거라는 말, 너무나 동감한다.
어떤 행복이 혹은 불행이, 슬픔이 또 기쁨이 올지 아무도 모른다.
삶이 우리를 이끄는 그 힘은 누구도 모른다.
다만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든 성실하게 살아내는 것 뿐.
하녀 두리샤를 왜 그렇게 자주 보여주나 했더니, 나중에 그는 시베리아 유형지에서 그녀와 결혼해 아이를 둘이나 낳는다.
사실 제인도 아이를 가진 채 그와 헤어졌다.
그는 러시아 여행이 금지됐기 때문에 그에게 그 사실을 전하기 위해 맥클레인과 결혼까지 한다.
그리고 10년 후 드디어 그 앞에 나타나려 했으나 그만 두리샤와 아이들을 먼저 접하고 만다.
그녀는 오열하면서 안드레이를 보지 않고 도망치나 10년의 세월 동안 안드레이가 혼자 살 거라 생각한 건 너무 자기 위주의 생각 아닐까?
사실 그 장면이 이해가 안 갔다.
왜 두리샤는 아이들과 함께 헛간으로 숨었을까?
강도라 생각해서?
제인은 아마도 그녀와 아이들의 존재를 알아 차린 듯 한데 역시 그녀는 못 본 체 도망치고 만다.
혼자서 아들을 군인으로 키워 낸 제인은 드디어 아들에게 출생의 비밀을 알려 주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휘가로의 결혼>을 배경음악으로 잘 활용한 멋진 영화였다.
러시아적인 풍습과 자연 배경도 종종 등장해 재밌었다.
안드레이가 제인에게 배신감을 느껴 숨을 몰아쉬면서 이성을 잃은 장면은 얼핏 보기에 간질 발작처럼 느껴졌다.
충동을 자제하지 못하는 안드레이는 다분히 위험 요인이 많은 젊은이였다.
한 번의 사랑에 인생을 걸고 만 이 치기어린 순진한 젊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