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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에도 과학이 있는가
박성래 지음 / 교보문고(교재) / 1998년 10월
평점 :
품절
나온지 좀 오래 된 책이라 그런지 요즘 책과는 다른 약간 촌스런 느낌을 준다.
일본인을 일본어 표현 대신 한자로 부른 것도 그렇고 논지를 전개하는 형식도 세련되지 못하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어쩌면 저자의 최근 작품은 좀 더 발전된 주장을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정통 물리학을 공부한 사람이니 단지 민족주의에 치우져 민족 과학을 주장하는 건 아닐 것이다.
저자의 정의대로라면, 민족과학이란 서구의 과학 지식을 받아들여 우리 식으로 소화해 내자는, 국내 과학 발전 추구인 것 같다.
일본이 네덜란드로부터 난학을 받아들여 자체적으로 과학 기술을 양성해 낸 것처럼 말이다.
일본의 개방적인 태도는, 어쩌면 중국 문화권으로부터 상당히 떨어져 있었고, 성리학 수준이 조선보다 떨어졌기 때문에 성리학의 위상이 일본 내에서 조선만큼 절대적이지는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무인정권이 수백년 통치했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조선처럼 학자가 관료가 되고 왕이 되는 게 아니라 칼을 잡은 사람이 권력자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한문을 거의 알지 못했다고 한다.
성리학의 상대적인 약화가 난학을 보다 빨리 수용하게 된 배경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 근대사에서 읽은 내용들이 종종 등장해 반가웠다.
특이한 점은 도쿠가와 막부 역시 쇄국정책을 유지하고 기독교를 박해했으면서도 나가사키의 한 항구는 열어줘 계속 통상을 했다는 사실이다.
과학과 종교의 구별을 확실히 했던 셈이다.
반면 조선에서는 서학을 기독교와 서양 기술 등으로 뭉뚱그려 정치적 박해를 가했으니 아쉬운 대목이다.
아마도 일본이 조선과는 달리 오래 전부터 중국 뿐 아니라 동남 아시아 등과 교역을 해 온 역사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 같다.
완전한 농업 국가였던 조선과는 상당히 다른 사회구조를 가졌고 이런 점들이 고대 사회에서는 한국에 뒤지는 결과를 낳았으나 시대 조류가 바뀌면서 흥기할 기회를 잡은 것 같다.
측우기와 자격루, 첨성대 등은 대체 언제부터 민족과학의 상징으로 등장하게 됐을까?
저자는 유길준을 그 시조로 본다.
그 전에는 과학기술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누구도 그것을 자랑의 근원으로 삼지 않았다.
조선이 망해가면서 특히 나라를 잃은 후로는 박은식 등에 의해 보다 적극적으로 자부심의 원천으로 과거의 발명품들을 동원했다.
이른바 민족의 혼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을 봐도 20세기 초부터 서양 과학기술에 대한 사회적 동경이 형성됐던 것 같다.
비록 저자의 한탄처럼 분위기만 잡아갔지 실제적인 교육이나 투자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왜 세종 때만 과학기술이 발달했을까?
사실 나도 이 점이 항상 궁금했고 남들처럼 왕이 워낙 똑똑해서였다고 생각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저자의 시각에 따르면 세종 때 기틀을 잡아서 다음 시대부터는 별다른 혁신 없이 쭉 그대로 해 나갔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시대만 유난히 과학이 발달한 게 아니라 그 시대에 기반을 다져 놓은 걸 그 다음 시대에도 똑같이 유지했으므로 특별히 언급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일리있는 말 같다.
사회 자체가 워낙 정적이었으므로 특별한 변화나 혁신을 필요로 하지 않았을 것 같다.
적어도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종이 보여 준 그 놀라운 천재성은 적어도 한글 창제 하나만 가지고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데, 책에 소개된 여러 기술적 혁신들을 보니 더욱더 세종이라는 인간과 당시 사회적 분위기에 놀라게 된다.
확실히 그는 개방적이고 창의적인 사람이었을 것 같다.
조선 시대 화포의 발달은 꽤나 주목할 만 하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의 침입을 막을 수 있었던 것도 명군의 지원도 있었지만 전적으로 화포 덕분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연전연승을 이룬 이순신의 전선은 조총 같은 화승총에 의존한 일본군에 비해 월등한 화력을 자랑했다.
화력의 위상은 임진왜란에서 특히 빛난다.
최무선에 의해 처음 화포가 제작된 후 여러 번 개량이 이뤄졌다.
근대적인 무기 발달로 나가지는 못했으나 서구 세력의 침략 이전에는 충분히 한 나라를 방어할 만 했을 것이다.
일제 식민 시대에 고등교육이 형편없었다는 자료들이 속속 들어나 안타깝기도 했다.
실제로 한국 내에서 종합대학을 졸업한 과학 기술자는 거의 없었고 외국에서 학위를 받는다 해도 개인적인 인맥에 의존해서지 시스템 적으로는 뒷받침이 전혀 안 됐다고 한다.
어차피 식민지야 자국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니 일본인에게 그런 정책적 관용을 기대하는 건 무리겠으나 식민지의 역사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참으로 안타까운 손실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