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의 선택 - [초특가판]
씨네코리아 / 2003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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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은 엄청나게 좋던데, 사실 나는 썩 재밌게 보지는 못했다.
두시간 반에 달하는 긴 분량도 그렇고, 한번에 쭉 보지 못하고 나눠 봤기 때문에 몰입하지 못했던 탓도 있다.
굉장히 기묘하고 독특한 느낌의 영화인데, 어떤 블로거의 평처럼, 나치 학살을 노골적으로 고발하는 <쉰들러 리스트>와는 매우 다른 느낌의 홀로코스트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메릴 스트립은 이 영화로 미국 내 다섯 영화제의 여우 주연상을 휩쓸었다고 한다.
1982년도 수상작이니 꽤 오래 전 영화다.
줄거리 자체로 보면 특별할 게 없는데 오히려 아카데미에서 이런 마이너 느낌의 영화에 여우주연상을 수여했다는 게 더 신기하다.
메릴 스트립은 원체 연기 잘하는 배우로 유명해서 솔직히 특별히 감동적이지는 않았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기억이 워낙 강렬해서 그런지 몰라도, 그 이후의 메릴 스트립은 모두 그 연기의 변형으로만 보인다.
갑자기 생각난 건데, <콜드 마운틴>의 니콜 키드먼도 메릴 스트립 못지 않은 강렬한 연기를 선보였다.
둘 다 창백한 금발 미녀라는 점에서 비슷하지 않나 싶다.

서구인들에게 있어 홀로코스트는 일종의 죄의식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흑인 노예제에 대해서는 이렇듯 철저한 반성과 죄의식이 없는 걸 보면, 아무리 차별받는 유대인이라 할지라도 결국은 백인, 유럽인이라는 동질성 때문에 일종의 동료의식으로써 더 깊은 죄책감과 책임감을 느끼는 게 아닐까 싶다.
또 유대인이 차별받는 소수 민족이라고 하지만, 오늘날 그들이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부강해졌고 메이저 그룹에 편입됐기 때문에 여전히 하류층인 집시 민족과는 다르게 더 큰 책임감을 느끼는 게 아닐까?
나치에 대한 서구인들의 증오심은, 비슷한 시기에 함께 행동했던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비난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 같다.
독일에서 나치즘은 뿌리를 내릴 수 없고 영원히 비판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동아시아에서 일본 제국주의는 누구도 발흥을 직접적으로 막기 어려운 문제라는 묘한 차이점이 느껴진다.
하여튼 나치와 일본 군국주의는 기묘하게 다르다.

스팅고라는 시골 문학 청년의 예술적 성장기라는 생각도 든다.
홀로코스트의 비극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면서도 영화는 줄곧 스팅고의 관점으로 진행되므로 크게 보면 이 순수한 시골뜨기 남부 청년의 성장기 같다.
배우도 비슷한 느낌의 얼빵한, 그러나 뭔가를 이뤄 보려고 애쓰는 느낌의 작달막한 남자를 골라 무척 잘 어울린다.
배우가 주는 느낌과 영화 속의 캐릭터가 대체적으로 다들 일치한다.
수용소에서 아들을 살리기 위해 딸을 가스실로 보냈다는 자책감을 안고 사는 소피가 자살을 기도하자 갑자기 나타난 흑기사 네이던이 그녀를 구해준다.
전체적으로 보면 소피는 딸을 선택적으로 죽였다는 죄책감에서 못 벗어나고 결국 미치광이 네이던의 자살 파트너로 생을 끝내고 마는 것 같다.
딸을 죽이고 대신 살린 아들 얀이 살아 있었다면 그것에 희망을 걸고서라도 죄책감을 이겨 낼텐데, 불행히도 얀 마저 죽고 만다.
어찌 보면 그녀는 인생을 반은 포기하고 있지 않았나 싶다.
절망적인 삶이,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네이든과 묘하게 어울려 마치 죽음 직전의 화려한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 같다.
그 시기에 스팅고를 만난 것이다.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스팅고의 초고를 읽은 네이든이 브룩쿨린 다리에 올라가 스팅고를 위하여, 를 외치며 잔을 들 때였다.
이 장면은 <타이타닉>에서 디카프리오가 배 위에 올라서서 <I'm king of the world> 를 외치는 것과도 흡사했다.
네이든은, 이 브룩쿨린의 다리가 휘트먼과 디킨스 등이 거쳐간 바로 그 다리라고 말하면서 이제 그대를 위해 건배를 들겠다고 한다.
아마도 스팅고는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처음으로 인정해 준 이 장면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만약 소피가 스팅고와 시골로 내려가 가정을 이루었다면?
어떤 상처든 시간이 지나면 줄어들기 마련이니 그녀는 과거의 고통을 잊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지 모른다.
네이든에게 돌아가 결국 동반자살로 끝맺은 선택은 정말 최악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소박하고 순수한 스팅고는 소피와의 행복한 삶을 잃은 대신, 문학가로서의 성장을 경험했다.
어쩌면 소피는 그가 감당하기 힘든 여자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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