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궁전
루이스 만도키 감독, 수잔 서랜든 외 출연 / 유니버설픽쳐스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로맨틱 하면서도 독특한 분위기가 나는 영화다.
수전 서랜든이라면 <Deadman walking>에서 무척 인상깊게 본 지적인 여배우인데, 역시 나이 앞에서는 빛이 죽는 것 같다.
열 네살이나 어리게 나온 남자 주인공에게 한참 뒤져 정말 퇴기처럼 보인다.
그래서 더욱 사실적이다.
임성한이 쓴 드라마 <아현동 마님>에서도 여자가 남자볻 열 두 살 많은 설정이 있는데, 실제로는 한 살인가 밖에 차이가 안 나는 여배우라 도대체가 현실 감각이 없었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정말 열 네 살이라는 나이를 보는 내내 실감할 수 있을 정도로 리얼했다.
열 네 살 어린 남자와 같이 사는 기분은 어떨까?
그것도 남자는 중산층의 잘 나가는 카피 라이터고 음악도 대중음악 대신 오페라를 들을 정도로 지적이고 교양있다.
반면 여자는 나이만 많은 게 아니라,  햄버거 가게 종업원에 사는 곳도 가난한 동네이고 청소라고는 안 하는 지저분한 여자이며 술 담배를 진창 해댄다.
정말 완벽한 부조화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맥스는 여자에게 푹 빠진다.
당신과 떨어져 있으면 비참해져, 함께 있으면 다른 의미로 비참해...
맥스의 이런 독백이야 말로 그의 심리 상태를 가장 잘 표현해 주는 것 같다.
함께 있지 않으면 비참하다는 말, 정말 최고의 사랑 고백이 아닐까?
또 함께 있으면 문화적 차이와 사회적 계급차로 모든 게 엇갈리고 여자는 차라리 떠나라고 종용하니, 또다른 의미로 비참해진다.
스물 일곱의 지적인 남자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현실 같다.

<명랑소녀성공기>의 양순이나, <너는 내 운명>의 장새벽, <별난 남자 별난 여자>의 종남이, 양국화 등등 드라마에 나오는 가난한 신데렐라들은 죄다 어리고 착하고 예쁘다.
누구하나 문화적 차이로 고민하지 않는다.
부자 남친이 옷만 비싼 걸로 입혀주면 그 때부터는 어느 귀족 아가씨 못지 않게 자연스럽게 우아한 여자로 바뀐다.
옷차림만 바뀌면 그게 다일까?
그래서 드라마는 어쩔 수 없이 전형적이고 진부하고 또 유치한 것 같다.
왜 현실에서는 당연히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화적 차이를 간과하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나라는 계급차가 심하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동등하다는 생각이 유난히 강한 나라니 말이다.

영화의 강점은 중산층과 노동자 계급의 문화적 차이를 현실적으로 그려낸 점이다.
맥스와 노라의 집은 두 계급 사이의 건널 수 없는 강을 리얼하게 보여준다.
어쩌면 중산층과 상류층의 차이보다 중산층과 노동자 계층의 차이가 더 클지도 모르겠다.
중산층은 상류층에 비해 돈만 없을 뿐 적어도 교육 수준이나 문화적 교양 면에서는 오히려 더 우월할 때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부르디외의 주장처럼, 혹은 <희망의 인문학>처럼 인문학적 또는 문화적 측면의 지원이 계급 격차를 좁히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맥스 역을 맡은 배우 제임스 스파이더는 정말 꽃미남이라는 수식어가 딱 들어맞는 굉장한 미남이다.
수잔 서랜든이 빛을 바랠 정도로 말이다.
이렇게 잘생긴 남자가 죽은 아내를 그리워해 몇 년 째 정조를 지키고, 대중음악 대신 오페라를 듣고 담배도 안 피운다.
모든 게 너무 완벽하지 않은가?
잘 생겼는데 바람둥이도 아니라니, 더구나 교양있고 지적이기까지 하다니!
영화 속의 노라는 대체 무슨 복으로 이런 남자를 꿰찼는지 모르겠다.
사실 둘은 성적 궁합이 기막히게 잘 맞는다.
단지 섹스를 위해서였다면 맥스는 노라를 자기 삶 속으로 들여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맥스는 문화적 차이와 계급 차이에 대해 괴로워 하면서도 그녀를 용감하게 자신의 일상으로 받아들인다.
노라를 친구들에게 소개하고 그녀가 자격지심으로 떠났을 때 직장마저 팽개치고 안정된 기반을 버린 채 그녀를 찾아 나선다.
마지막 결말이 약간 비현실적이긴 했지만 하여튼 나이차와 계급차, 문화차이 등을 뛰어넘는 사랑을 현실적으로 잘 그려낸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