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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 탐정들 - 세계 50대 유적의 비밀
폴 반 엮음, 김우영 옮김 / 효형출판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세럼이 쓴 <낭만적 고고학 산책>이 상당히 지루하고 집중도가 떨어졌던 반면, 폴 반이 쓴 <고고학 탐정>은 흥미진진하게 읽고 있다.
두 책의 차이를 들자면, 세럼의 책은 발굴자와 발굴 당시의 에피소드들에 대해 꽤 자세히 늘어 놓기 때문에, 문화적으로 상이하고 사전지식이 없는 나같은 먼 나라 독자들이 듣기에는 퍽 지루한 편이다.
마치 한국 고고학자가 신라 왕릉 발굴기라는 지엽적인 주제에 대해 쓴 책을 유럽인이 읽는 기분이랄까?
물론 여기 소개된 발굴들은 대단히 세계적인 것들이긴 하지만, 어쨌든.
반면 폴 반의 책은 내용이 가볍고, 복잡하거나 지난한 발굴 과정들은 죄다 생략해 버렸다.
그래서 일면 수박 겉핥기라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어쨌든 일반인이 읽기에는 훨씬 편하다.
문체의 차이도 있는 것 같다.
각 발굴지마다 딱 세 장에 국한된 압축된 설명이 책의 응집력을 높이기도 하지만, 대신 너무 가볍다는 생각도 간혹 든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상당히 잘 된 책이다.
아마 직업적인 고고학자라는 저력이 빛을 발하는 것 같다. (즉, 뒷꽁무니가 쫓아다니는 신문 기자 나부랭이가 아니라는 것)
역사학자들이 문헌을 중심으로 연구하는 반면, 고고학자들의 관심사는 유적과 유물인 것 같다
특히 선사시대 연구는 인류의 기원을 밝히는 흥미진진한 모험과도 같은데, 고고학자의 이미지를 가장 잘 대변해 주는 작업 같다.
인디애나 존스 박사처럼 온갖 신기하고 매혹적인 탐험을 한다기 보다는, 인내심과 끈기를 가지고 너른 벌판을 이잡듯 뒤지는 성실성과 지난한 작업들로 하나의 발굴이 이루어짐을 알게 됐다.
물론 기본적으로 보물 찾기와 같은, 호기심과 약간의 투기 심리와, 몽상적인 부분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말이다.
하여튼 과거를 밝히고자 하는 인간의 끝없는 호기심은 놀라운 지경이다.
비슷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이유로 조상 숭배의 전통도 고고학에 대한 열정과 통한다는 생각이 든다.
하여튼 이미 벌어진 일을 밝힌다는 점에서 보면, 섣불리 미래를 예측하는 것 보다는 과거를 정확히 알고자 하는 노력이 훨씬 더 성실하고 진지해 보인다.
책에 나온 다양한 유적지들은 워낙 유명해서 한 번씩은 들어 본 얘기들이다.
아쉬운 점은 영문 표기가 거의 없어 인터넷을 통해 더 자세한 정보를 얻기 힘들었다는 점이다.
요즘에는 구글이나 위키피디아가 워낙 발달해서 왠만한 지명이나 지식들은 인터넷에 널려 있다.
특히 문화가 다른 서구 사회의 지엽적인 지명이나 전통들은 저자의 각주만으로는 부족할 때가 많기 때문에 (또 그렇게까지 성실한 번역자도 드물고) 인터넷을 뒤지게 되는데, 원어 표기가 없으면 애를 먹는다.
한글로 번역된 단어를 치면 딱 그 책에 나온 인용문만 뜬다.
전혀 자료가 없다는 얘기다.
그러니 요즘처럼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에는 고유명사나 번역하기 애매한 단어들에 대해 꼭 원어표기를 함께 해 줬으면 한다.
인상깊은 발굴로는 역시 인류의 기원을 밝히는 호미니드들의 화석이 있겠다.
인류는 언제 영장류에서 갈라져 나왔는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호모 속의 분기점은?
루시는 정말 우리들의 이브일까?
유인원과 인간을 잇는 중간 고리는 과연 어디에?
인터넷을 참조하여 대강의 윤곽을 그릴 수 있었다.
덕분에 독서 시간은 한정없이 길어졌지만 말이다.
아프리카 평원에서 뼛조각 찾는 일을, 트럭에 뭉개진 계란 껍데기 맞추는 일에 비유한 고고학자의 한탄은, 인류의 진화 과정을 밝히는 것이 얼마나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일인지 잘 보여준다.
그러나 이런 노력과 열정들이 축적되어 언젠가는 (가능하면 내가 죽기 전에) 우리의 기원을 밝히게 되길 기대해 본다.
이스라엘 민족의 기원을 밝히는 발굴도 흥미로웠다.
성경이 사실이다고 믿는 쪽의 책을 읽다 보면 짜증이 나는 게, 일단 성경을 경전으로 보는 대신 역사서로 대하기 때문에, 그것도 오류가 전혀 없는 정확한 기록으로 보기 때문에 그 전제에 맞춰 발굴 결과를 해석한다.
다른 곳에서 반증의 증거를 찾는 대신, 성경의 기록에 맞는 증거물을 찾아다니는 식으로 말이다.
얼마 전에 읽은 이스라엘 고고학자의 책은, 폴 반의 입장과 거의 대동소이 하다.
아마도 역사학계가 아닌 고고학계에서는 어느 정도 일치된 의견이 아닌가 싶다.
솔로몬 궁전의 위대함은 발굴단이 찾기 힘들고 오히려 사마리아 왕국, 즉 북이스라엘이 훨씬 더 번성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속속 발견된다.
이스라엘인이 이집트에서 흘러 들어온 이주노동자 집단이었다기 보다는, 가나안의 토착민이었다는 설이 고고학적으로 입증된다.
물론 아직 정설로 확립된 것은 아니다.
하여튼 그렇게도 경멸하고 배척했던 가나안 토착민들의 풍습이나 건축 양식들이, 실은 이스라엘 역시 가나안의 한 부족으로써 공유했던 문화라고 하니, 유대인 역시 홀로 고립된 독창적인 집단, 종교적으로 말하자면 선택받은 신의 민족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어떤 민족이든 신으로부터 특별히 선택받았다는 선민의식이야말로 전형적으로 보여지는 종교의 특성 같기도 하다.
흥미롭게 읽은 책이고 폴 반의 또다른 역작인 <현대 고고학의 이해>를 읽어봐야겠다.
고고학은 정말 위대하고 흥미진진한 학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