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열자, 조선을 습격하다 - 몸과 의학의 한국사
신동원 지음 / 역사비평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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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읽은 책인데 다시 읽어 봐야 할 것 같아 집어 들었다.
솔직히 지난 번처럼 의미있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일단 여기저기 발표한 글을 묶어서 내다 보니 통일성이 떨어지고 저자의 논점도 흐릿한 것 같다.
워낙 우리나라의 전염병 역사를 개괄한 책이 없다 보니, 그 점에서는 의의가 있는 책이지만 보다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할 것 같다.
윌리엄 맥닐의 <전염병의 세계사>를 재밌게 읽다 보니, 이 책의 수준이 더욱 한 수 아래로 보이는 것 같다.
그렇지만 심청전을 소재로 전국의 맹인 실태를 파악한다거나, 의녀와 의관의 실제 수를 추정하는 등의 시도는 신선했다.
광혜원에 대한 폄하는 솔직히 불편했다.
인간의 어떤 동기든 100% 순수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약간의 이기심과 목적이 없다면 누가 남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겠는가?
심지어 남에게 봉사면서 한 평생을 바친 사람에게조차 남을 도우면서 느끼는 그 기쁨을 얻기 위해 한 것이니, 즉 자기 자신의 만족을 위해 한 일이니 특별히 고마워 할 필요없다는 말을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선교사들이 서양 의료를 도입해서 여기저기 병원과 학교를 세워 근대화에 일정 부분 기여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민족주의적인 입장에서 지나치게 이 점을 깎아 내리는 것은 우리 민족의 위대함을 드러내기는 커녕 매우 옹졸한 처사로 밖에는 안 보인다.
실제적인 분석이 필요하긴 하겠지만 외국의 도움을 받았다는 점에 대해 특별히 부끄러워 하거나 자존심 상해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따지면 한의학도 마찬가지다.
현대의학을 서양의학이라고 부르는 것도 좀 우스운 일인데, 한의학을 마치 민족 전통의 고유한 것으로 이해해 애국심이나 민족의 자부심과 연결지어 생각하는 건 매우 부당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민주주의는 서양에서 왔고 왕조는 우리 전통이니 민주주의를 배격해야 한다는 말도 나올 수 있다.
질병의 치유에 있어서 왜 민족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의료야 말로 매우 보편적인 행위가 아니던가?

한의학의 접근법은 확실히 서양 의학, 혹은 현대 의학과 다르다는 걸 많이 느낀다.
현대의학의 기본은 감염, 즉 미생물에 의한 병인론이다.
심지어 간암이나 위암 같은 경우도 미생물이 일정 부분 기여한다고 알려졌다.
자궁경부암도 마찬가지다.
책에서 다뤄지는 전염병은 거의 100% 미생물에 의한 질병이다.
한의학은 관념적인 방법으로 질병에 접근한다.
그래서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없다.
왜냐면 사변적인 철학이니까.
증명을 하라고 하면 그 때부터는 왜 서구의 방식으로 자신들을 재단하려 하나고 공격한다.
입증할 수 없는 것을 대체 어떻게 믿어야 할까?
한의학의 효용성은, 경험의학적인 측면에서 생약과 어우러져 일정 부분 기여한다고 생각한다.
약학계에서 생약학이라는 측면에서 한의학을 포용하려고 하는 까닭을 알 것 같다.
세균이나 바이러스의 존재를 부인하면서 어떻게 전염병이나 치료의 개념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한의학과 현대의학의 대립을 불러 일으키는 시도는 매우 위험하다.
특히 민족 고유의, 이런 단어를 앞에 붙이면 이건 분명히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이다.
의학은 환자의 치유에 관여할 뿐, 민족의 자부심을 높히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두 번 읽기는 했지만 굳이 재독할 필요는 없는 책이다.
가벼운 환기가 됐다는 점에서는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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