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구는 푸른빛이었다 -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의 우주로 가는 길
유리 알렉세예비치 가가린 지음, 김장호.릴리아 바키로바 옮김 / 갈라파고스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이소연씨의 우주비행 때문에 우주 여행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난 것 같다.
국민의 혈세로 남 좋은 이벤트나 하고 있다고 한탄하는 목소리도 많지만 (특히 SBS 방송을 보면 더욱 한심스러워진다) 어쨌든 우주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다는 점에서는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유리 가가린은 인류 최초의 우주 비행사다.
나도 역자처럼 백과 사전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ㄱ 항목 맨 처음에 등장하니까 닐 암스트롱 보다도 더 자주 봤던 것 같다.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는 하루키의 소설로 더 유명해지기도 했다.
200페이지 정도 되는 얇은 자서전인데 이소연씨 바람을 타고 번역이 된 모양이다.
특이하게도 역자의 아내가 러시아 사람이라 번역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괄호 안에 당시 사정이나 러시아 전통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많다.
책 자체는 특별히 문장이 뛰어나거나 우주 개발의 역사를 개략한다거나 하는 거창한 시도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한 인간이 인류 최초로 우주에 보내진 역사적인 순간을 소박하게 잘 그려내고 있다.
자칫 공산주의에 대한 찬양으로 오인될 소지도 있다고 역자는 염려하지만, 내가 느끼기엔 유리 가가린이라는 사람 자체가 순박하고 열성적인 코뮤니스트 같다.
올림픽 때 금메달을 따면 북한 선수들이 울면서 김일성 수령에게 감사한다는 말을 한다.
그럼 우리나라 기자는 북한의 주체 사상이 얼마나 억압적인지를 꼭 코멘트 한다.
나 역시 무슨 광신주의를 보는 것처럼 한심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 자서전을 읽고 보니, 어쩌면 김일성에 대한 북한 사람들의 숭배 의식은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온 것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발적이라고 해야 할까?
가가린은 레닌과 공산주의에 대한 열정을 끊임없이 드러낸다.
그는 혁명투사도 아니고 다만 평범한 젊은이일 따름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열정은 순수하고 일견 아름답게 느껴진다.
러시아 사람들, 아니 정확히 소비에트인들에게 있어 레닌은 단순히 지도자가 아니라,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찾아가서 참배하고 결심을 다지는, 사상적 지주였다.
그런 레닌 동상이 공산주의의 몰락과 함께 철거되고 말았으니 시대의 변화가 참 무섭다.
유리 가가린은 소박하고 순수한 러시아인 코뮤니스트 같다.
그는 국가나 체제가 선사한 기회를 마음껏 이용하고 그것에 무한한 감사와 자부심을 느낀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주물공장에서 용접하던 견습생이 사관학교에 진학하고 우주인이 되어 민족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과정을 보면, 적어도 그의 사례에서라면 공산주의가 가난한 이들에게는 하나의 꿈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꾸밈없고 소박한 그의 애국심을 보면, 첫 우주인으로서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이 위대한 영웅은, 불행히도 비행훈련 때 사망한다.
30대 한창 나이에 말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끔찍한 사고로 끝난 아폴로 13호 우주인들의 귀환을 가족들이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을 때, 인류 최초로 달을 밟은 닐 암스트롱이 그들을 위로하는 장면이 영화에 삽입됐다.
노인이 되서 우주로의 도약을 지켜볼 수 있었던 암스트롱은 행복한 사람 같다.
젊은 나이에 사망한 유리 가가린의 짧은 생애가 안타깝다.
이번 책을 계기로 소비에트 연방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됐고 스탈린과 대숙청, 수용소로 얼룩진 나의 기억도 어느 정도는 희석됐다.
더불어 우주 개발이나 천문학에 대해서도 좀 더 관심을 가져 볼 생각이다.
정말 인류의 위대한 도약이고, 지구는 푸른 빛의 아름다운 행성이다.